캉유웨이는 대동서에서 왜 가족까지 없애자고 했을까
아이를 나라가 키우는 마을
어떤 마을을 하나 상상해 볼게요. 아기가 태어나면 마을 공동 육아원에서 함께 키우고, 자라면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일할 나이가 되면 각자 잘하는 일을 맡고, 늙으면 공동 양로원에서 보살핌을 받아요. '내 집', '내 재산',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아예 없어요. 모두가 모두의 식구인 셈이죠.
좀 이상하게 들리죠? 그런데 백 년도 더 전에, 중국의 한 학자가 이런 세상을 농담이 아니라 아주 진지하게 한 권의 책으로 그렸어요. 그 사람 이름이 캉유웨이고, 책 제목이 바로 대동서예요.
황제를 설득하려던 개혁가
캉유웨이는 1858년부터 1927년까지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가 살던 시절의 중국은 힘이 많이 빠져 있었어요. 서양 나라들과 일본에게 자꾸 밀리고, 전쟁에서 지고, 백성들은 가난했죠. 마치 오래된 큰 집이 여기저기 무너지는데 고칠 줄을 모르는 상태였어요.
캉유웨이는 '이대로 두면 나라가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898년, 젊은 황제를 직접 설득해서 학교를 새로 세우고 낡은 제도를 뜯어고치는 큰 개혁을 밀어붙였어요. 왕이 혼자 다 정하지 말고 헌법과 의회를 두자는 입헌군주제도 이때 내세웠죠. 영국처럼 왕은 있되 법이 나라를 움직이게 하자는 거였어요.
하지만 이 개혁은 백 일 남짓 만에 짓밟혔어요. 반대하던 세력이 황제를 가두고, 동료들은 붙잡혀 죽었어요. 캉유웨이는 간신히 외국으로 도망쳤죠.
공자를 다시 읽은 사람
재미있는 건, 캉유웨이가 새로운 사상을 서양에서 통째로 빌려 온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는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이 받들던 공자에게서 답을 찾았어요.
보통은 공자를 '옛것을 지키라고 가르친 어른'으로 봐요. 그런데 캉유웨이는 거꾸로 읽었어요. 공자야말로 세상을 바꾸려 한 개혁가였다고 본 거예요. 낡은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히듯, 같은 공자를 '지키는 분'에서 '바꾸는 분'으로 다시 읽은 거죠. 이렇게 유교 자체를 개혁의 무기로 삼으려 한 점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요.
대동, 천하가 모두의 것이 되는 날
대동이라는 말은 캉유웨이가 새로 지은 게 아니에요. 예기라는 아주 오래된 책의 한 대목에 나오는 말인데, '큰 길이 행해지면 천하가 모두의 것이 된다'는 구절이에요. 쉽게 말하면, 잔칫상에 음식을 차려 두고 '이건 내 거 저건 네 거' 따지지 않고 다 같이 나눠 먹는 자리 같은 거예요.
캉유웨이는 이 짧은 옛말을 가져다가 아주 자세한 설계도로 펼쳤어요. 대동서에서 그는 사람을 갈라놓는 아홉 가지 벽을 하나씩 허물자고 해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을 없애고, 신분의 높낮이를 없애고, 인종 차별을 없애고,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대하고,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까지 풀자고 했죠.
가족까지 없애자니 너무하다 싶죠? 그의 생각은 이랬어요. '내 자식'이라는 마음이 강하면 남의 자식을 덜 챙기게 되고, 거기서 차별과 욕심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모든 아이를 사회가 함께 기르면 누구도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손해 보지 않는다고 본 거죠.
좋은 줄 알면서도 숨긴 책
그런데 캉유웨이는 이 대단한 책을 살아 있는 동안 거의 공개하지 않았어요. 다 써 놓고도 서랍에 넣어 둔 셈이죠. 왜 그랬을까요?
그는 세상이 단번에 좋아질 수는 없다고 믿었어요. 세상은 세 단계를 거쳐 천천히 나아진다고 봤죠. 어지러운 시대에서, 조금 나아진 시대를 지나, 마지막에야 모두가 평화로운 대동 세상에 닿는다는 거예요. 아기가 걷기도 전에 뛸 수 없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그는 '지금 사람들에게 가족도 나라도 없애자고 하면 오히려 혼란만 온다'고 걱정했어요. 너무 이른 약은 독이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대동서는 먼 미래를 위한 꿈의 지도였지, 당장 따라 하라는 설명서가 아니었던 거예요.
정리
캉유웨이는 무너져 가는 나라를 살리려고 황제를 설득해 개혁을 밀어붙였고, 옛 스승 공자를 개혁가로 다시 읽었으며, 대동서에서 국경도 신분도 가난도 없는 세상을 그린 사람이에요. 가족까지 풀자는 그의 말은 차별을 뿌리째 없애려는 마음에서 나왔고, 그러면서도 그는 그 꿈을 먼 훗날의 목표로 아껴 두었죠. 그의 이상이 옳았는지 지나쳤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볼 수 있어요. 다만 백 년 전에 '모두가 모두의 식구인 세상'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상상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 한 가지는 기억해 둘 만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