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수에서 대통령까지, 라다크리슈난이 되살린 둘이 아니라는 생각
인도 철학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거라고요?
백 년쯤 전, 서양 학자들은 인도 철학을 이렇게 깎아내렸어요. "세상은 다 헛것이라며 눈 감고 명상이나 하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생각 아니냐"고요. 마치 어려운 시험을 앞두고 "어차피 다 부질없어" 하며 이불 속으로 숨는 친구처럼 본 거죠. 그런데 한 인도 사람이 차분히 나서서 말했어요. "그건 오해예요. 제대로 한번 들어 보실래요?" 그 사람이 바로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이에요. 인도 철학을 서양에 또박또박 소개한 학자이자, 나중에는 인도의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죠.
스무 살 청년이 들은 한마디
라다크리슈난은 1888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인도 사람이에요. 어릴 때 그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를 다녔어요. 거기서 자주 들은 말이 있었어요. "너희 인도 종교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이 없다"는 비판이었죠. 자기가 자란 집안의 믿음을 깎아내리는 말을 매일 듣는 기분, 좀 억울했겠죠?
그래서 그는 따져 보기로 해요. 스무 살 무렵, 대학을 마치며 쓴 졸업 논문 주제가 바로 "인도 베단타 철학에도 분명한 도덕이 있다"는 거였어요. 비판에 화를 내는 대신, 책을 파고들어 조목조목 답한 거예요. 이 한 편의 논문이 평생의 일이 됩니다. 인도의 오래된 생각을 오해 없이 설명하는 일 말이에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억울함에서 시작된 공부였다는 점이 재미있죠.
교실 선생님에서 대통령궁까지
그는 원래 철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였어요. 그것도 보통 교수가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16년 동안(1936년부터 1952년까지) 동양 종교와 철학을 가르쳤어요. 인도 사상을 못마땅해하던 서양 한복판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로 인도 생각을 풀어 준 거죠. 그가 쓴 두 권짜리 두꺼운 책 《인도 철학》은 서양 사람들이 인도 사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 읽을 수 있는 거의 첫 안내서가 되었어요.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에요. 이 철학 선생님이 나중에 인도의 대통령이 돼요(1962년부터 1967년까지). 그래서 지금도 인도에서는 그의 생일인 9월 5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해요. 대통령이 됐을 때 자기 생일을 축하하지 말고 차라리 선생님들을 기리는 날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해져요. 한 사람이 교실 칠판 앞에서 나라의 대표 자리까지 간 셈이니, 인도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짐작이 가죠.
파도와 바다는 둘이 아니에요
그가 평생 되살리려 한 생각이 '불이일원론'이에요. 이름이 어렵죠? 풀어 보면 쉬워요. '불이'는 '둘이 아니다', '일원론'은 '뿌리가 하나다'라는 뜻이에요. 합치면 "겉으로는 따로따로처럼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다 하나"라는 말이에요.
바다를 떠올려 보세요. 파도가 수천 개 일어요. 파도 하나하나는 모양도 크기도 달라서 "나는 너랑 달라" 하고 우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 같은 바닷물이에요. 큰 파도든 작은 물결이든, 부서지고 나면 결국 같은 바다로 돌아가죠. 파도가 바다와 둘이 아닌 거예요. 불이일원론은 너와 나, 그리고 세상 만물도 이 파도와 같다고 봐요. 겉모습은 제각각이어도 바탕은 하나라는 거죠. 그러니 "나 혼자 동떨어진 존재"라는 느낌은, 파도가 자기를 바다와 다른 무엇이라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는 거예요. 이건 라다크리슈난이 새로 지어낸 생각이 아니라, 8세기쯤 샹카라라는 인도 사상가가 정리한, 천 년도 더 된 오래된 가르침이에요. 그는 그 낡은 보물을 다시 꺼내 먼지를 닦은 사람이고요.
왜 그 오래된 생각을 다시 꺼냈을까
천 년 묵은 생각을 그는 왜 굳이 다시 꺼냈을까요?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두 가지 오해를 풀고 싶어서였어요.
첫째, "세상이 헛것이라면 다 포기하라는 거냐"는 오해예요. 그는 아니라고 했어요. 파도가 가짜가 아니듯, 우리 삶도 가짜가 아니에요. 다만 파도만 보다가 바다를 잊지 말라는 거죠. 바탕이 하나임을 알면, 오히려 옆 사람을 나처럼 아끼게 된다고 그는 말했어요. 남이 아프면 나도 아픈 게 당연해지니까요.
둘째, "종교가 다르면 싸울 수밖에 없다"는 오해예요. 바탕이 하나라면,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여도 결국 꼭대기는 같아요. 그는 서로 다른 종교를 이 여러 산길에 빗댔어요. 믿는 모양이 달라도 다들 같은 진리를 향해 올라가는 중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는 머리로 따지는 논리보다, 직접 겪어서 마음으로 아는 깊은 체험을 더 중요하게 여겼어요.
옛 생각에 새 옷을 입히다
라다크리슈난이 한 일을 한마디로 하면, 낡은 옷장에서 좋은 옷을 꺼내 요즘 사람도 입을 수 있게 손본 거예요. 그는 불이일원론을 신비롭고 어려운 주문처럼 두지 않았어요. 대신 누구나 일상에서 한 번쯤 느껴 본 마음, 그러니까 "사실 우리는 다 이어져 있는 것 같다"는 그 느낌과 이어 붙였죠.
그래서 그의 설명에는 인도 사람만을 위한 비밀스러운 구석이 없어요. 과학을 공부한 사람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활짝 열어 두었거든요. 모든 것이 결국 이어져 있다는 생각은, 세상 만물이 같은 재료로 되어 있다고 보는 과학의 눈과도 묘하게 통했어요. 그는 이 옛 생각을 굳이 신앙으로 믿으라 강요하지 않고, 한번 곰곰이 따져 보자고 권하는 쪽이었죠. 오래된 동양의 생각이 박물관 유리장 안 유물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꺼내 써도 되는 살아 있는 생각이라는 걸 보여 준 거예요. '현대적 부활'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죠.
정리
라다크리슈난은 "인도 철학은 현실 도피"라는 오해 앞에서, 천 년 된 불이일원론을 다시 꺼내 먼지를 닦았어요. 파도가 바다와 둘이 아니듯 너와 나도 바탕은 하나라는 이 오래된 생각을, 그는 서양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말로 풀어냈죠. 스무 살에 받은 한 번의 억울함이 평생의 공부가 되었고, 철학 선생님이던 그는 끝내 나라의 대표 자리까지 갔어요. 그를 어려운 사상가로만 기억하기보다, "우리는 생각보다 덜 떨어져 있어요"라고 다정하게 알려 준 선생님으로 떠올려도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