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주자가 풀어 준 공자를 외울 때, 이토 진사이는 교토 사숙 고의당에서 옛 공자를 따로 찾고 있었어요
남의 필기로만 읽은 책
학교에서 어떤 책을 배우는데, 정작 원문은 안 보고 선배가 정리해 놓은 두꺼운 필기 노트만 외운다고 해 봐요. 노트가 워낙 정교해서 다들 그게 곧 그 책인 줄 알아요. 그런데 한 사람이 "잠깐, 원문은 진짜 그렇게 말했을까?" 하고 처음부터 한 글자씩 다시 읽기 시작해요.
이토 진사이(1627년에 태어나 1705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 에도 시대의 유학자)가 한 일이 딱 이거예요. 그가 다시 읽으려 한 '원문'은 공자와 맹자가 직접 한 말이었고, 다들 외우던 '선배의 필기'는 그보다 1500년쯤 뒤에 나온 주자(주희)의 해설이었어요. 모두가 주자의 노트를 정답으로 받아들일 때, 그는 노트를 덮고 원문으로 돌아간 거죠.
교토 한복판의 작은 공부방, 고의당
진사이는 교토의 장사꾼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집은 목재를 파는 상인이었는데, 그는 가게를 잇는 대신 책에 파묻혔어요. 한동안은 몸이 아파 바깥출입을 끊고 십수 년을 조용히 공부만 한 시기도 있었고요.
서른여섯 무렵, 그는 교토 호리카와라는 동네의 자기 집에 작은 사숙을 열어요. 사숙은 나라가 세운 학교가 아니라 개인이 차린 공부방이에요. 이름이 '고의당'이었어요. '고의'라는 이름은 '옛 뜻'이라는 말이에요. 간판부터가 "옛날 본래 뜻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이었던 셈이죠.
이 공부방은 한 세대로 끝나지 않았어요. 진사이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이토 도가이가 이어받았고, 전해지기로 그의 문을 거쳐 간 제자가 평생 3000명 가까이 됐다고 해요. 자기 집 작은 방에서 시작한 공부가 교토를 대표하는 학풍이 된 거예요.
고의학, "옛 뜻으로 돌아가자"
진사이가 만든 공부법을 '고의학'이라고 불러요. 한 줄로 줄이면 이래요. "공자가 쓴 말은, 공자 시대의 뜻으로 읽자."
왜 이게 새삼스러웠을까요. 진사이 시대에 표준 교과서는 주자가 정리한 성리학이었어요. 주자는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진사이가 보기에는 공자의 말에 불교와 도교에서 빌려 온 추상적인 틀을 덧씌운 데가 많았어요. 마치 옛 노래를 자꾸 요즘 유행하는 편곡으로만 듣는 것과 비슷했죠. 원래 가락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안 물어보고요.
그래서 진사이는 사전을 만들 듯 핵심 낱말 하나하나를 옛 용례로 다시 정의했어요. '인'이 뭔지, '의'가 뭔지, 공자와 맹자가 실제로 쓴 문장 속에서 찾아낸 거예요. 그 작업을 묶은 책이 '어맹자의', 곧 '논어와 맹자에 나오는 글자의 뜻'이에요. 그는 논어를 두고 "우주에서 가장 으뜸가는 책"이라고까지 했어요.
차가운 '이치'보다 따뜻한 '사랑'
여기서 진사이가 가장 힘주어 다시 풀어낸 말이 '인'이에요.
주자식 설명에서 세상의 바탕은 '이치', 곧 만물에 깔린 보이지 않는 원리였어요. 말은 멋있지만 어딘가 차갑고 머리로만 굴리는 느낌이죠. 진사이는 고개를 저어요. 그가 찾은 '인'의 본래 뜻은 어렵지 않았어요. 바로 '사랑'이었어요.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친구가 친구를 챙기고, 사람이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그 마음. 진사이는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 저 멀리 하늘의 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 매일의 관계 안에 있다고 봤어요. 거창한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 옆 사람한테 잘하는 일상의 정(情)에 진짜 유학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가르침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움직였어요. 열두 살이 들어도 "남을 아끼는 마음이 출발점"이라는 말은 바로 와닿으니까요.
평생 교토를 떠나지 않은 선생님
당시 실력 있는 학자는 영주(다이묘) 밑에 들어가 봉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진사이한테도 그런 제안이 왔지만 그는 받지 않았어요. 벼슬자리로 가는 대신, 교토의 그 공부방에서 보통 사람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동네 선생으로 남았어요.
이게 왜 중요할까요. 진사이는 학문이 권력자의 장식품이 아니라, 장사꾼이든 농부든 누구나 자기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몸으로 보여 준 셈이에요. 그가 옛 뜻을 파고든 고의학은 뒤에 오규 소라이 같은 학자에게도 자극을 줬고, 일본에서 "남의 해설 말고 원전을 직접 읽자"는 흐름의 큰 물줄기가 됐어요.
정리
이토 진사이는 남이 정리해 준 공자가 아니라, 공자가 직접 한 말로 돌아가려 한 사람이에요. 교토의 작은 사숙 고의당에서 그는 핵심 낱말을 옛 뜻으로 다시 읽었고, 그 결과 '인'을 어려운 이치가 아니라 사람을 아끼는 '사랑'으로 풀어냈어요. 어려운 답을 멀리서 찾지 않고, 매일의 관계 속 따뜻한 마음에서 길을 찾았다는 것. 그게 우리가 기억할 진사이의 공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