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은 마음속 원칙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라 부른 에도 유학자 이토 진사이
"어질게 살아라"는 말,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요
어른들이 "어진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면 어쩐지 마음이 막막해져요. 어질다는 게 정확히 뭔지 잡히지가 않거든요. 화를 안 내는 걸까요? 무조건 참는 걸까요? 착한 척하는 걸까요? 마치 시험에 나오는 어려운 단어 같아요. 뜻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막상 오늘 점심시간에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안 보이죠.
옛날 동아시아 사람들도 똑같이 헷갈렸어요. '인(仁)'이라는 글자가 바로 그 '어짊'인데, 수백 년 동안 학자들이 이 한 글자를 두고 머리를 싸맸어요. 그런데 지금부터 300여 년 전 일본에, 이 어려운 글자를 아주 쉽게 풀어 버린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이토 진사이예요. 그가 내놓은 답은 놀랄 만큼 짧아요. 한번 따라가 볼까요.
교토 상인 집에서 태어난 공부 벌레
이토 진사이는 1627년부터 1705년까지, 일흔여덟 해를 살았던 일본 에도 시대의 유학자예요. 유학자라고 하면 높은 벼슬을 한 양반을 떠올리기 쉬운데, 진사이는 좀 달랐어요. 교토의 평범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거든요. 시장 가까이에서 보통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보며 자란 사람이었어요.
대신 그는 책을 읽고 또 읽었어요. 특히 공자라는 옛 스승의 말을 모은 '논어'를 손에서 놓지 않았죠. 나중에는 자기 집에 '고의당'이라는 작은 학교를 열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옛 책을 읽었어요. 글자 그대로 '옛 뜻을 찾는 집'이라는 이름이에요. 진사이가 닦은 이 공부법을 고의학이라고 불러요. 어려운 이론을 새로 지어내는 대신, 공자가 살아 있을 때 그 말이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로 곧장 되돌아가자는 거였어요. 마치 전해 듣고 또 전해 들어 엉켜 버린 이야기를, 맨 처음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러 가는 것과 비슷해요.
인을 너무 어렵게 만들어 버린 사람들
진사이가 살던 때,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던 설명은 '주자학'이었어요. 송나라 학자 주희가 정리한 건데, 여기서 인은 굉장히 거창하게 풀이됐어요.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이치'라는 식이었죠.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비유하면 이래요. 누가 "사랑이 뭐예요?"라고 물었는데, "사랑이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모든 따뜻함의 근본 원리란다"라고 답하는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닌데, 듣고 나도 여전히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더 어려워졌죠. 인을 이렇게 설명하면, 인은 책상 앞에서 골똘히 생각해야 겨우 닿는 높고 차가운 무엇이 되어 버려요. 진사이는 바로 이 점이 답답했어요. 가장 가까워야 할 가르침이 가장 멀어져 버렸으니까요.
진사이의 한마디, 그냥 사랑이에요
진사이는 옛 책을 거듭 읽다가 이렇게 정리했어요. "인의 덕은 크다. 하지만 한마디로 하면, 사랑일 뿐이다."
복잡한 이치도, 마음속 원리도 아니고, 그냥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것도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실제로 오가는 따뜻한 마음이에요. 배고픈 친구에게 빵을 나눠 주는 마음,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주는 마음, 늦게 들어온 가족을 걱정하며 현관을 살피는 마음. 진사이에게 인은 바로 그거였어요.
그는 인을 '자애'라고도 했는데, 어머니가 아이를 품는 것 같은 포근하고 끈끈한 사랑을 말해요. 멀리 있는 사람을 향한 멋진 구호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실제로 건네는 다정함이죠. 그래서 진사이는 사람을 떠나서는 인도 없다고 봤어요. 사랑은 혼자 방에 앉아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생기지 않으니까요. 누군가와 마주 앉아야 비로소 흐르는 거예요. 물이 한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흐르려면 그릇이 둘은 있어야 하듯이요.
철학을 책상에서 밥상으로 내려놓다
이게 왜 대단할까요? 진사이는 어렵고 높아 보이던 가르침을, 누구나 매일 할 수 있는 일로 바꿔 놨어요. 어진 사람이 되는 건 두꺼운 책을 통째로 외우는 일이 아니라, 오늘 옆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일이 된 거죠. 글자 공부가 아니라 마음 쓰는 연습이 된 셈이에요.
이렇게 인을 사랑으로 풀자, 유학은 학자들만의 어려운 학문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의 삶 가까이로 내려왔어요. 상인의 아들이 평생 관직 없이 동네에서 책을 읽으며 길어 올린 답치고는, 꽤 멀리까지 간 셈이에요. 진사이의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 읽혔고, 그가 연 고의당도 후손들이 대를 이어 꾸려 갔어요. 쉬운 말로 풀어낸 생각이 오히려 더 오래, 더 넓게 퍼진 거예요.
정리
인이라는 글자는 오랫동안 어렵고 차가운 원리처럼 다뤄졌어요. 이토 진사이는 옛 책으로 돌아가 그 말의 원래 뜻을 다시 찾았고, 인은 결국 사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사랑이라고 풀었어요. 그래서 어질게 산다는 건 멀고 높은 목표가 아니라, 오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구는 일이에요. 다음에 누군가 "어질게 살아라"라고 하면 너무 막막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건 그냥 "사랑하며 살아라"라는 뜻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