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다 있다면 길이 미어터졌을 거라 말한 왕충
천둥이 치면 사람들이 숨던 시절
약 2000년 전 중국에서는 천둥이 우르릉 울리면 사람들이 방구석으로 몸을 숨겼어요. 하늘이 화가 나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을 골라 벼락으로 벌을 준다고 믿었거든요. 가뭄이 들거나 별이 이상하게 움직여도 "임금이 뭘 잘못했나 보다" 하고 떨었고요. 하늘이 사람을 늘 지켜보다가 상과 벌을 내린다는 생각이, 그 시절에는 가장 당연한 상식이었어요.
그런데 후한 시대(서기 27년부터 약 97년까지 살았어요)에 왕충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렇게 물었어요. "정말 그럴까요?"
왕충은 누구였나요
왕충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책 살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시장 책방에 서서 책을 읽고 그 자리에서 외웠다고 해요. 요즘으로 치면 서점에 죽치고 앉아 공짜로 책 한 권을 통째로 머리에 담는 셈이죠. 벼슬은 작은 자리에 잠깐 머물렀을 뿐이라, 평생 가난했어요.
그렇게 모은 생각을 「논형」이라는 책에 담았어요. 제목을 풀면 "저울로 단다"는 뜻이에요. 떠도는 이야기들을 저울에 하나씩 올려 보고, 무게가 안 맞으면 가짜라고 말하겠다는 거죠. 이 책은 84편이나 되는 긴 글 모음인데, 거의 전부가 "다들 믿지만 사실은 아닌 것"을 따지는 이야기예요.
하늘은 누구를 미워하지 않아요
왕충의 가장 큰 생각은 이거예요. "하늘은 아무 목적이 없다."
우리는 비가 오면 "농사지으라고 하늘이 비를 줬다"고 말하잖아요. 왕충은 고개를 저었어요. 하늘과 땅은 누굴 위해 일부러 뭔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라고요.
비유를 들었어요. 부부가 사랑을 나누면 아이가 생기지만, "자, 이제 사람 하나 만들자" 하고 계획해서 생기는 건 아니죠.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예요. 하늘이 온갖 것을 낳는 일도 그와 같아서, 거기엔 아무 의도가 없다는 거죠. 봄에 풀이 돋는 건 하늘이 우리를 예뻐해서가 아니라, 따뜻해지면 그냥 돋는 거예요.
가뭄도 임금 탓이 아니에요
그 시절에는 가뭄이나 홍수, 혜성 같은 일이 생기면 "하늘이 임금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풀이했어요. 임금이 정치를 잘못해서 하늘이 화났다는 거죠. 그러면 임금은 겁을 먹고 하늘에 빌거나 죄인을 풀어 주곤 했어요.
왕충은 이것도 따져 봤어요. 하늘이 그렇게 사람 하나하나를 살핀다면, 하늘은 너무 바빠서 쉴 틈이 없겠죠. 가뭄은 임금의 마음과 상관없이, 비구름이 안 오면 그냥 드는 거예요. 자연은 임금의 잘잘못을 채점하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거죠.
만물은 같은 기운으로 빚어져요
그럼 세상 만물은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요. 왕충은 '기'라는 한 가지 기운으로 본다고 했어요. 공기 같은 이 기운이 뭉치면 사람도 되고 풀도 되고 돌도 된다는 거죠. 진흙 한 덩이로 그릇도 빚고 인형도 빚는 것과 비슷해요.
이렇게 보면 사람도 특별히 하늘이 아끼는 존재가 아니에요. 넓은 땅 위에서 사람은, 옷 솔기 사이에 사는 작은 벌레 한 마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왕충은 말했어요. 좀 서운한 말 같지만, "사람만을 위해 세상이 돌아간다"는 착각을 내려놓자는 뜻이었어요.
죽은 사람이 다 귀신이 된다면
그 시절 사람들은 죽으면 귀신이 되어 산 사람을 해친다고 무서워했어요. 왕충은 여기에 재미있는 반문을 던졌어요.
사람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죽었어요. 만약 죽은 사람이 전부 귀신이 된다면, 길거리는 어깨가 부딪칠 만큼 귀신으로 미어터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많은 귀신을 본 적이 없죠.
왕충은 사람을 촛불에 빗댔어요. 불이 켜져 있을 때만 빛이 있지, 불이 꺼지면 빛도 사라지죠. 꺼진 촛불의 빛을 따로 찾을 수 없듯이, 사람이 죽으면 그 기운도 흩어져서 귀신 같은 건 남지 않는다고요.
벼락은 화가 아니라 자연이에요
천둥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사람들은 벼락 맞은 사람을 보면 "하늘이 죄를 벌했다"고 수군댔어요. 왕충은 따져 물었어요. 그렇다면 왜 죄 없는 어린아이나 착한 사람도 벼락을 맞을까요? 왜 한적한 들판의 나무는 벼락을 맞는데, 정작 나쁜 사람이 사는 집은 멀쩡할까요?
벼락이 하늘의 분노라면 이런 일은 앞뒤가 안 맞아요. 왕충이 보기에 천둥은 그저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 누굴 골라 벌주는 게 아니었어요. 화난 사람이 골라서 때리는 게 아니라, 폭죽이 그냥 터지는 것에 가깝다는 거죠.
왜 이 생각이 중요할까요
왕충이 대단한 건, 모두가 "그렇다더라"라고 할 때 혼자 "증거가 있나요?"라고 물었기 때문이에요. 하늘도, 귀신도, 옛 성인의 말도 무조건 믿지 않고, 앞뒤가 맞는지 저울에 달아 봤어요. 심지어 모두가 떠받들던 공자나 맹자의 말도 "이 대목은 좀 이상한데요?" 하고 따졌어요. 어른의 말이라고, 옛날 책에 적혔다고 그냥 넘어가지 않은 거죠.
물론 왕충도 2000년 전 사람이라, 그가 내놓은 답이 다 맞은 건 아니에요. 천둥이 왜 치는지 진짜 원리도 몰랐고요. 하지만 "겁부터 내지 말고 일단 따져 보자"는 그 태도는, 오늘 우리가 가짜 뉴스나 근거 없는 소문을 만났을 때 쓰는 방법과 똑같아요. 좋은 질문 하나가 무서운 소문 열 개보다 힘이 세다는 걸, 그는 2000년 전에 이미 보여 준 셈이에요.
정리
왕충은 하늘이 사람을 보고 화내거나 상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목적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자연이라고 봤어요. 만물은 같은 기운으로 빚어졌으니 사람도 특별히 떠받들어진 존재가 아니고, 귀신이 다 있다면 길이 미어터졌을 거라며 죽음을 꺼진 촛불에 빗댔어요. 벼락도, 가뭄도 누굴 벌주는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고요. 답이 다 맞아서가 아니라, "다들 믿어도 증거부터 묻자"는 태도 때문에 그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돼요.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 번 더 따져 보는 마음, 그게 왕충이 우리에게 남긴 저울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