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들면 임금 잘못이라 본 동중서, 천인감응론이 뭐길래

멀쩡하던 하늘에서 비가 뚝 끊겼을 때
몇 달째 비가 안 와서 논밭이 쩍쩍 갈라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요즘 우리라면 "올해 날씨가 이상하네" 하고 일기예보를 켜겠죠. 그런데 2천 년쯤 전 중국 사람들은 이럴 때 전혀 다른 데로 눈을 돌렸어요. "혹시 임금님이 뭔가 크게 잘못하신 거 아냐?" 하고 수군거린 거예요.
가뭄이나 홍수, 지진처럼 큰일이 나면 그게 하늘이 임금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믿었거든요. 좀 엉뚱하게 들리죠? 그런데 이 막연한 믿음을 그럴듯한 하나의 이론으로 다듬어서, 나라 전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사람이 있어요. 바로 동중서라는 학자예요.

정원에 3년을 안 나갔다는 공부벌레
동중서는 기원전 179년부터 104년까지 살았던 중국 한나라의 학자예요. 지금으로부터 2천 년도 더 전 사람이죠. 얼마나 공부에 빠졌던지, 3년 동안 자기 집 정원에 한 번도 안 나가고 방 안에서 책만 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예요.
그가 평생 파고든 건 공자의 가르침, 그러니까 유학이었어요. 그런데 동중서는 옛 책을 그냥 달달 외우기만 한 게 아니에요. 거기에 '하늘과 사람은 어떤 사이일까'라는 커다란 그림을 새로 그려 넣었어요. 그 그림의 이름이 바로 천인감응론이에요. 글자만 보면 머리가 아픈데, 알고 보면 어렵지 않아요.

천인감응, 하늘과 사람이 서로 느낀다는 말
이름을 한 글자씩 뜯어볼게요. '천'은 하늘, '인'은 사람, '감응'은 서로 느끼고 반응한다는 뜻이에요. 셋을 합치면 "하늘과 사람은 서로 통하고 반응한다"가 돼요.
우리 몸을 떠올리면 단번에 와닿아요. 며칠 밤새우고 라면이랑 과자만 먹으면 곧 얼굴에 뾰루지가 나고 배가 아프죠. 몸이 "너 지금 잘못 살고 있어!" 하고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동중서는 임금과 하늘 사이도 딱 이렇다고 봤어요.
임금이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잘 다스리면, 하늘이 알맞은 비와 풍년으로 화답해 줘요. 반대로 임금이 욕심을 부리고 백성을 괴롭히면, 하늘이 가뭄과 홍수와 지진 같은 '재이'를 내려서 혼을 낸다는 거죠. 재이는 재앙, 그러니까 무서운 일이라는 뜻이에요. 하늘을 온 세상을 지켜보는 거대한 부모님처럼, 임금을 그 부모 말을 들어야 하는 자식처럼 본 셈이에요.

미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리한 장치
이 이야기, 그냥 옛날 미신 같지만 들여다보면 꽤 영리한 장치였어요.
옛날에 임금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라, 아무도 대놓고 "그건 잘못하셨어요"라고 말하기 어려웠어요. 잘못 말했다간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천인감응론이 깔려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가뭄이 들었을 때 신하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거든요. "하늘이 노하셨습니다. 임금께서 정치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임금보다 더 높은 존재인 하늘을 슬쩍 내세워서, 그 무서운 임금한테도 보이지 않는 고삐를 채운 거예요. 잘못하면 하늘이 본다는 생각은, 힘센 사람일수록 조심하게 만드는 브레이크였던 셈이죠.

유학을 나라의 공식 생각으로 만든 한마디
동중서가 역사에 크게 남은 이유는 하나 더 있어요. 그는 당시 한나라 임금이던 한 무제에게 중요한 제안을 했어요. "여러 학파를 다 끌어안지 마시고, 유학 하나만 나라의 공식 가르침으로 삼으시지요."
그전까지 중국에는 생각이 서로 다른 학파가 여럿 있었어요. 그런데 무제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유학이 나라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기본 사상으로 올라섰어요. 이 결정의 힘은 어마어마해서, 유학은 그 뒤로 2천 년 가까이 중국을 다스리는 바탕 생각이 됐어요. 동중서를 두고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세운 사람'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이 모든 생각은 그가 남긴 책 '춘추번로'에 차곡차곡 담겨 있어요.

정리
동중서는 하늘과 사람이 서로 느끼고 반응한다는 천인감응론을 펼친 한나라 학자예요. 우리 몸이 잘못된 생활에 뾰루지로 신호를 보내듯, 하늘도 임금의 정치에 풍년이나 재앙으로 답한다고 봤죠. 이 생각은 아무도 못 말리던 임금에게 하늘이라는 브레이크를 달아 주었고, 동시에 유학을 나라의 중심 사상으로 끌어올리는 디딤돌이 됐어요. 가뭄을 그냥 날씨가 아니라 하늘이 보낸 편지로 읽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