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샤르팡티에 CRISPR 유전자 가위, 편도선염 세균에서 찾은 노벨상

25년간 9번 연구실을 옮긴 과학자가 노벨상을 탔다
이력서에 소속 기관이 아홉 개나 되는 과학자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프랑스, 미국, 오스트리아, 스웨덴, 독일을 오가며 9개 기관을 전전했다.
보통 이런 이력서를 보면 사람들은 슬쩍 눈썹을 치켜올린다.
노벨상 수상자의 전형적인 경로는 명문대에 자리를 잡고, 수십 명 규모의 연구실을 키우고, 지원금을 끌어모아 '연구 제국'을 세우는 것이다.
샤르팡티에는 정반대였다.
매번 소규모 팀으로, 자신이 진짜 궁금한 질문을 쫓아 짐을 쌌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다니면 자리를 못 잡는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유목의 끝에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21세기 생명과학의 판을 바꾼 도구였다.
2020년, 스톡홀름에서 전화가 왔다.

목감기 세균의 방어 본능에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CRISPR의 비밀을 쥐고 있던 것은 최첨단 연구소가 아니라, 매년 수백만 명의 아이들에게 편도선염을 선사하는 그 흔한 세균이었다.
화농성 연쇄상구균, 즉 Streptococcus pyogenes는 목을 붓게 하고 성홍열을 일으키는, 의학 교과서에 지겹도록 등장하는 평범한 병원균이다.
샤르팡티에는 이 세균이 자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기억하고 막아내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세균에게도 '범죄자 얼굴 파일'이 있다.
한 번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잘라 보관해두었다가, 다음에 같은 놈이 오면 즉시 알아보고 파괴한다.
그 시스템이 바로 CRISPR다.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쉽게 말하면 세균의 면역 기억 장치다.
2011년, 샤르팡티에는 이 시스템의 핵심 열쇠를 찾아냈다.
tracrRNA라는 작은 RNA 분자가 CRISPR 가위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수십억 년 전부터 세균 안에 숨어 있던 도구가, 어느 날 인류의 손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커피 한 잔의 대화가 생명과학의 판을 뒤집었다
2011년 3월, 카리브해의 어느 학회장 밖 카페에서 나눈 대화 한 번이 생명과학의 역사를 둘로 나누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학술대회 쉬는 시간, 샤르팡티에는 한 생화학자와 구시가지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바로 UC 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였다.
샤르팡티에가 tracrRNA 이야기를 꺼내자 다우드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다우드나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걷다가 멈추고 싶었어요. '잠깐,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라고 되물었거든요."
두 사람은 그날 카페에서 공동 연구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뒤인 2012년 6월, 결과가 나왔다.
CRISPR-Cas9를 마치 문서 편집기의 '찾아 바꾸기' 기능처럼, 원하는 유전자를 정확히 골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도구로 전환할 수 있다는 논문이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네트워킹 행사의 잡담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 정도 스케일은 흔치 않다.

특허 전쟁의 한복판에서 그녀는 실험실로 돌아갔다
수십억 달러짜리 특허 분쟁이 법정을 달구는 동안, 정작 그 기술의 공동 발명자는 다시 현미경 앞에 앉아 있었다.
《사이언스》 논문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제약·바이오 업계는 들끓었다.
유전자를 편집한다는 것은 암, 유전병, 농작물 개량, 심지어 인간 배아에도 적용 가능한 기술이었다.
문제는 특허였다.
다우드나-샤르팡티에 팀과 MIT 브로드연구소의 펑장 팀이 "우리가 먼저 진짜 발명을 완성했다"며 법정 다툼을 벌였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CRISPR 기술 전체의 사용권과 수익권이 달라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생명공학 특허 전쟁이었다.
샤르팡티에는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용히 베를린으로 갔다.
막스 플랑크 감염생물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CRISPR를 발견하기 전부터 그녀가 매달렸던 주제, 즉 세균 감염의 기초 메커니즘 연구로 돌아갔다.
대박 서비스를 만들어놓고 상장이나 인수 협상 대신 다시 코드를 짜러 간 개발자 같은 선택이었다.
2020년 10월, 노벨 화학상 위원회는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를 공동 수상자로 발표했다.
두 여성이 같은 해 같은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샤르팡티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연구를 계속할 거예요. 상보다 질문이 더 오래가니까요."
인류의 유전자를 다시 쓸 가위는 편도선염 세균 안에 있었다.
그걸 꺼낸 사람은 25년 동안 아무 데도 뿌리내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유목민 과학자였다.
당신이라면 그 이력서를 끝까지 읽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