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과 오상, 강아지에게도 어진 마음이 있을까
이간은 사람만이 아니라 강아지나 소 같은 동물도 똑같이 오상이라는 착한 본성을 타고난다고 본 조선의 성리학자예요. 호락논쟁에서 인물성동론을 펼친 낙론의 대표 학자였어요.

오상이 대체 무슨 뜻일까
여러분 마음속에 작은 서랍 다섯 개가 있다고 생각해 볼까요.
유교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다섯 서랍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봤어요.
그걸 오상(五常), 늘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떳떳한 마음이라고 불러요.
첫째 칸은 인(仁), 친구가 넘어지면 나도 모르게 손을 내미는 어진 마음이에요.
둘째 칸은 의(義), 잘못된 일 앞에서 이건 아니라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고요.
셋째 칸은 예(禮), 먼저 양보하고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에요.
넷째 칸은 지(智),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지혜예요.
마지막 다섯째 칸은 신(信), 약속을 지키는 믿음이고요.
이 다섯 마음은 맹자가 말한 네 가지 착한 실마리에 믿음 하나를 더해 정리한 거예요.
조선의 선비들은 글공부의 출발점으로 이 오상을 삼았어요.
누구나 가진 착한 바탕을 갈고닦는 일이 곧 공부라고 본 거죠.
그런데 이 오상을 두고 300년 전, 아주 흥미로운 다툼이 벌어졌답니다.

이간은 어떤 사람이고 왜 강아지를 떠올렸을까
이간(李柬)은 1677년부터 1727년까지 살았던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예요.
호는 외암이라고 해요.
그가 한창 공부하던 시절, 학자들 사이에 큰 질문 하나가 떠올랐어요.
오상은 사람만 가진 걸까, 아니면 강아지나 소, 호랑이 같은 동물도 똑같이 가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죠.
조금 엉뚱하게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깊은 질문이에요.
우리 집 강아지가 가족을 반기고 제 새끼를 아끼는 걸 보면, 저 안에도 어진 마음 한 조각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건 그저 본능일 뿐, 사람의 어짊과는 전혀 다른 걸까요?
이간은 분명하게 답했어요.
본래 타고난 본성으로 보면 사람도 동물도 똑같이 오상을 갖추고 있다고요.
이 주장을 어려운 말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는 이론이라고 불러요.
하늘이 만물에게 착한 본성을 똑같이 나눠 주었다고 본 셈이에요.

같다는 이간 다르다는 한원진 무엇이 달랐을까
재미있는 건, 이간과 정반대로 생각한 동료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같은 스승 권상하 밑에서 공부한 한원진이에요.
두 사람의 토론이 워낙 유명해서, 이 논쟁을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 불러요.
충청도 쪽 학자들을 호론, 서울 쪽 학자들을 낙론이라 했는데, 이간은 낙론을 대표했어요.
둘의 차이를 표로 정리하면 이렇게 돼요.
| 구분 | 이간 (낙론) | 한원진 (호론) |
|---|---|---|
| 핵심 주장 | 인물성동론 | 인물성이론 |
| 사람과 동물의 본성 | 본래는 똑같다 | 서로 다르다 |
| 바라보는 자리 | 타고난 순수한 본성 | 몸과 기질에 담긴 본성 |
쉽게 말하면 이래요.
이간은 씨앗만 놓고 보면 사과씨든 배씨든 똑같이 생명을 품고 있다고 본 거예요.
반면 한원진은 그래도 자라고 나면 사과나무와 배나무는 분명 다르지 않냐고 본 거고요.
똑같은 자연을 어느 자리에서 보느냐가 달랐던 셈이에요.
본래의 깨끗한 바탕을 보면 이간의 말이 맞고, 몸과 성질에 섞여 드러난 모습을 보면 한원진의 말이 맞아요.
그래서 두 사람 다 쉽게 물러서지 않았답니다.

이 오래된 다툼이 오늘 우리에게
300년 전 선비들이 강아지의 마음까지 따진 이유가 뭘까요.
사실 그건 강아지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였어요.
착함이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더 많이 주어진 걸까.
이 질문은 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타고난 등급이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거든요.
이간처럼 본성이 모두 같다고 보면, 신분이 높든 낮든 모든 사람의 바탕은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우리 모두가 똑같이 착한 씨앗을 품고 있다면, 누구도 함부로 낮춰 볼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논쟁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벌인 진지한 고민이었답니다.

정리
이간은 호락논쟁에서 사람과 동물이 본래 똑같은 오상을 타고난다고 본 낙론의 학자예요.
그가 던진 질문은 결국 착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졌는가 하는 것이었고요.
강아지의 마음을 묻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들여다본 물음이었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