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홍 주체성, 빌린 생각으로는 안 되는 이유
박종홍이 말한 주체성은 남의 철학을 그대로 베끼지 않고,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힘을 뜻해요.

박종홍은 누구이고 주체성은 무슨 말일까
혹시 친구가 푼 수학 문제의 답만 슬쩍 베껴 본 적 있나요?
답은 맞을지 몰라도, 조금 다른 문제가 나오면 다시 막막해지죠.
박종홍(1903년부터 1976년까지)이 평생 붙들었던 고민도 바로 이거였어요.
박종홍은 한국에서 철학을 어엿한 하나의 학문으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근현대 철학자예요.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흩어져 있던 우리 옛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한국 철학의 역사'로 정리하려 애쓴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 그가 던진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어요. "우리는 혹시 남의 생각만 빌려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주체성(主體性)은 한자라서 어려워 보이지만, 풀어 보면 '내가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이에요.
주인은 손님과 달라요.
손님은 남의 집 규칙을 따라야 하지만, 주인은 자기 집을 어떻게 꾸밀지 스스로 정하잖아요.
박종홍은 우리가 생각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기를 바랐어요.

박종홍은 왜 주체성을 그렇게 강조했을까
박종홍이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는 서양 철학과 동양의 오랜 철학이 큰 산처럼 버티고 있었어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그 큰 철학을 외우고 소개하는 데 바빴죠.
멋진 외국 학자의 이름을 많이 아는 게 곧 실력처럼 여겨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박종홍은 조금 다른 걱정을 했어요.
아무리 비싸고 멋진 옷이라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하잖아요.
남의 철학도 비슷해요.
서양에서 나온 생각은 서양 사람들이 겪은 문제와 살림살이 속에서 자란 거예요.
그걸 그대로 가져오면, 정작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의 고민은 풀어 주지 못해요.
그래서 박종홍은 외국 철학을 게으르게 멀리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파고들었죠.
다만 그는 공부의 마지막을 늘 같은 자리로 되돌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빌려 온 생각을 그냥 쌓아 두는 게 아니라, 우리 문제를 푸는 도구로 바꾸려 한 거예요.

주체성은 '내 멋대로'와 어떻게 다를까
여기서 많이들 헷갈려요.
주체성이 "남 말 듣지 말고 내 맘대로 하자"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에 가까워요.
| 주체성이 아닌 것 | 박종홍이 말한 주체성 |
|---|---|
| 남의 생각을 무조건 베끼기 | 열심히 배우되 내 현실에 맞게 다시 생각하기 |
| 무조건 내 멋대로 우기기 | 남의 좋은 점도 받아들여 내 것으로 소화하기 |
| 옛것이나 새것, 한쪽만 고집하기 | 전통과 새로운 것을 이어 붙여 새 길 만들기 |
박종홍에게 주체성은 '소화'와 많이 닮았어요.
우리가 밥을 먹으면 그게 그대로 몸에 쌓이지 않아요.
잘게 부수고 녹여서 내 살과 피로 바꾸잖아요.
좋은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외워 두면 남의 지식이지만, 잘 씹고 삼켜 내 것으로 만들면 비로소 내 힘이 돼요.
그래서 그는 우리 옛 전통도 소중히 봤어요.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버리지 않고, 거기서 지금도 쓸 수 있는 지혜를 찾아내려 했죠.
새것만 좇지도, 옛것만 붙들지도 않는 균형.
그 사이에서 새 길을 내는 일이 그가 말한 창조적인 주체성이었어요.

오늘 우리에게 주체성은 무엇일까
박종홍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의 질문은 지금도 살아 있어요.
우리는 외국의 유행과 영상, 정보를 매일 쏟아지듯 받아들여요.
손가락만 까딱하면 세계의 생각이 내 손안에 들어오죠.
빠르고 편해요.
하지만 박종홍이라면 이렇게 물을 것 같아요. "그걸 그냥 따라 하고 있나요, 아니면 내 머리로 한 번 더 생각해 봤나요?" 주체성은 외국 것을 무시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에요.
많이 배우고 받아들이되, 마지막 판단만큼은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내리자는 거예요.
숙제 답을 베끼는 대신 풀이 과정을 천천히 이해하는 것.
친구가 좋다고 하니까 따라 사는 대신 내게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묻는 것.
작아 보여도 이런 것들이 진짜 주체성의 시작이에요.

정리
박종홍이 말한 주체성은 한마디로 '내 생각의 주인이 되기'예요.
외국 철학을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충분히 배운 다음 우리 현실에 맞게 다시 씹어 삼키자는 태도죠.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베끼기가 아니라 소화하기로 생각하는 것.
다음에 무언가를 그냥 따라 하고 싶어질 때 "이게 정말 내 생각일까?" 하고 한 번 멈춰 묻는다면, 여러분은 이미 박종홍이 말한 주체성을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