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홍의 실존, 빌려 온 철학이 답답했던 사람
실존(實存)은 '지금 여기 실제로 살아 있는 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박종홍은 서양 철학을 그대로 외우는 대신,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에서 출발하는 한국 철학을 세우려고 이 말을 평생 붙들었어요.

실존이 무슨 뜻일까
여러분, 시험지에 적힌 '사과'라는 단어를 한번 떠올려 볼게요.
사전 속 사과는 '둥글고 빨간 과일'이에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 손에 들린, 한 입 베어 문 그 사과는 사전과 달라요.
한쪽에 멍이 들었고, 생각보다 새콤하고, 두면 곧 색이 변하죠.
철학에서는 사전 속 정의를 '본질'이라 부르고, 손에 쥔 진짜를 '실존'이라고 불러요.
실존은 어려운 한자 같지만 뜻은 단순해요. '여기, 지금, 실제로 살아가는 나'예요.
책에 적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멋진 문장이 아니라, 아침에 늦잠 자서 허둥대고, 친구와 다투고 또 화해하는 바로 그 나 말이에요.
정해진 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로 부딪치며 살아 내는 그 자리가 실존이에요.
박종홍은 누구일까
박종홍은 1903년에 태어나 1976년에 세상을 떠난 우리나라 철학자예요.
그가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는 서양 철학을 소개하는 자리는 조금씩 생겼지만, '한국 철학'을 어엿한 학문으로 다루는 틀은 거의 없었어요.
칸트나 헤겔처럼 먼 나라 학자의 생각을 빌려 와 그대로 익히는 일이 많았죠.
박종홍은 여기서 답답함을 느꼈어요.
잘 만든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기분이었거든요.
멋져 보여도 내 몸에 꼭 맞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그는 '우리 발밑의 현실에서 시작하는 철학'을 고민했고, 그 출발점으로 실존을 붙들었어요.
멀리 있는 이론보다, 지금 이 땅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구체적인 삶이 먼저라고 본 거예요.
그가 한국 철학을 학문으로 세우는 데 힘을 쏟은 까닭도 여기에 있어요.

본질과 실존은 어떻게 다를까
둘이 자꾸 헷갈리니까 표로 나란히 놓아 볼게요.
| 구분 | 본질 | 실존 |
|---|---|---|
| 뜻 | 미리 정해 둔 정의 | 지금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 |
| 비유 | 사전 속 '사과' | 내 손에 든, 베어 문 사과 |
| 던지는 질문 | 인간이란 무엇인가 | 나는 지금 어떻게 살까 |
오랫동안 철학은 '본질' 쪽을 더 중요하게 여겼어요.
변하지 않는 정답을 먼저 찾고, 사람은 그 정답에 맞춰 살면 된다고 봤죠.
그런데 실존을 앞세우는 생각은 순서를 뒤집어요.
정답이 먼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나를 만들어 간다고 보는 거예요.
박종홍이 마음을 둔 쪽도 바로 이 살아 있는 '나'였어요.

오늘 우리에게 실존은 무엇일까
실존이라는 말은 멀고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여러분의 하루 속에 있어요. '나는 커서 뭐가 될까'를 고민할 때, 누가 정해 준 답을 그냥 받지 않고 내 마음을 들여다볼 때, 여러분은 이미 실존을 살고 있는 거예요.
박종홍이 남긴 물음도 비슷해요.
좋아 보이는 남의 생각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내가 선 자리에서 스스로 묻고 답해 보라는 거죠.
그건 나라의 철학에도, 한 사람의 삶에도 똑같이 통하는 이야기예요.
빌려 온 옷이 아무리 멋져도, 결국 내 걸음을 걷는 건 나니까요.

정리
실존은 '사전 속 정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 있는 나'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박종홍은 먼 나라 철학을 외우는 데서 답답함을 느끼고, 우리 현실에서 출발하는 한국 철학을 세우려고 이 실존을 붙들었어요.
본질이 미리 정해진 답이라면, 실존은 살아가며 내가 만들어 가는 나예요.
오늘 여러분이 스스로 묻고 스스로 길을 고르는 그 순간이, 바로 박종홍이 중요하게 본 실존의 자리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