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은 왜 잘나가던 길을 버리고 떠돌았을까
김시습은 옳지 않다고 본 권력에 함께하기를 거부하고, 세상의 출세 경쟁 밖에서 평생 떠돌며 산 조선의 사상가예요. 그래서 그를 세상의 틀 밖에 선 사람, 곧 방외인이라고 불러요.

김시습과 방외인은 무슨 뜻일까
다섯 살 아이가 글을 어찌나 잘 짓던지, 임금이 직접 궁으로 불러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그 아이가 바로 김시습이에요.
1435년에 태어나 1493년에 세상을 떠난,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시인이지요.
이 글에서는 그가 왜 화려한 출셋길을 마다하고 평생 떠돌았는지, 그리고 그가 품은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풀어 볼게요.
먼저 '방외인'이라는 말부터 볼까요.
방외(方外)는 '테두리 바깥'이라는 뜻이에요.
놀이공원에서 모두가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그 줄 밖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보지만, 그 사람은 줄 자체가 옳은지를 묻고 있는 거예요.
김시습이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벼슬과 명예를 얻으려고 모두가 달려가는 길, 그 길 밖에 서서 다른 삶을 산 사람이지요.

잘나가던 신동은 왜 길을 떠났을까
김시습은 누구보다 공부를 잘했어요.
마음만 먹으면 높은 벼슬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가 스물한 살쯤 되던 1455년, 큰 사건이 일어나요.
어린 임금 단종이 삼촌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일이에요.
이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사흘 동안 방문을 닫고 있다가, 자기가 읽던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은 뒤 길을 떠났다고 전해져요.
잘못된 힘 앞에서 '나는 그쪽 줄에는 서지 않겠다'고 온몸으로 말한 셈이에요.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그 친구가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리면, 더는 그 무리와 어울리고 싶지 않은 마음과 비슷해요.
그 뒤로 김시습은 전국을 떠돌며 시를 짓고 글을 썼어요.
이렇게 옳음을 지키려고 벼슬을 버린 여섯 사람을 묶어 생육신이라고 부르는데, 김시습이 그 가운데 한 명이에요.
떠도는 동안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꼽히는 금오신화도 남겼어요.

기 중심의 철학은 무엇을 말할까
김시습은 그저 떠돌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깊이 생각한 사상가였어요.
그 생각의 중심에 '기(氣)'가 있어요.
기는 세상 모든 것을 이루는 바탕이 되는 기운이라고 보면 돼요.
물을 떠올려 볼까요.
물은 차가워지면 얼음이 되고, 뜨거워지면 수증기가 돼요.
모습은 달라도 바탕은 같은 물이지요.
김시습은 이처럼 산과 나무, 사람과 짐승이 겉모습은 제각각이어도 그 바탕은 모두 같은 기로 이어져 있다고 보았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어딘가 먼 곳의 신비한 힘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의 기운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돼요.
그래서 김시습의 철학은 현실의 자연과 사람을 또렷이 바라보려는 태도와 이어져요.

불교와 유교를 어떻게 한자리에 놓았을까
김시습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점이 있어요.
그는 머리를 깎은 승려이면서, 동시에 유교 경전을 깊이 공부한 유학자이기도 했어요.
원래 이 두 가르침은 서로 다른 길로 여겨졌어요.
비유하자면,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와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서로 자기 운동이 더 낫다고 다투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김시습은 둘 사이에서 한쪽만 고르지 않았어요.
두 가르침이 결국 사람이 바르게 사는 길을 말한다는 점에서 통한다고 보고, 서로 막힌 담을 트려 했어요.
이렇게 떨어져 보이는 가르침을 한자리에서 통하게 하는 것을 불유 회통이라고 불러요.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도 방외인이었기 때문이에요.
어느 한 무리에 매이지 않았기에, 양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좋은 점을 함께 볼 수 있었던 거예요.

정리
김시습은 잘못된 권력에 함께하기를 거부하고, 세상의 줄 밖에 서서 평생 떠돈 방외인이었어요.
그는 세상 만물이 같은 기로 이어져 있다고 보는 기 중심의 생각을 펼쳤고, 갈라져 있던 불교와 유교를 한자리에서 통하게 하려 했어요.
무리에 매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넓게 볼 수 있었던 사람, 김시습을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