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희가 학교를 정치의 무대로 본 까닭은
황종희는 학교를 단순히 시험 합격생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나라의 옳고 그름을 모두가 함께 따지는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봤어요. 임금 한 사람이 옳고 그름을 정하던 시대에 던진 아주 새로운 생각이었죠.
황종희는 누구였을까요
열아홉 살 청년이 송곳을 품고 대궐 마당에 들어섰어요.
환관 세력에게 억울하게 옥사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길이었죠.
이 청년이 바로 황종희예요.
1610년부터 1695년까지 살았고,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서던 어지러운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에요.
나라가 왜 이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황종희는 평생 이 질문을 붙들었어요.
그리고 1663년 무렵 그 답을 한 권의 책에 담았는데, 바로 명이대방록이에요.
이 글에서는 그 책에서 가장 톡톡 튀는 생각 하나, '학교를 공론의 장으로'를 함께 들여다볼게요.

학교를 공론의 장으로는 무슨 뜻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학교는 보통 공부하고 시험 보는 곳이에요.
황종희가 살던 시대에도 비슷했어요.
학교는 관리 시험에 합격할 인재를 길러내는 준비처에 가까웠죠.
그런데 황종희는 학교를 전혀 다르게 봤어요.
학교가 마을 회의장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공론'이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아낸 의견을 말해요.
한 사람의 고집이 아니라, 모두가 따져서 다다른 결론이죠.
황종희는 나라의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를 바로 이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봤어요.
반에서 청소 당번을 어떻게 정할지, 반장 혼자 정하는 것과 학급 회의에서 모두가 의견을 내 정하는 것은 느낌이 아주 다르죠.
황종희가 바란 학교는 후자에 가까웠어요.
| 그 시대 보통 학교 | 황종희가 바란 학교 |
|---|---|
| 시험 합격생을 길러내는 곳 | 나라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곳 |
| 위에서 정한 답을 외우는 곳 | 모두가 함께 의견을 모으는 곳 |
| 임금의 명령을 받드는 곳 | 임금의 잘못도 말할 수 있는 곳 |

임금 한 사람이 정하면 왜 안 될까요
명이대방록에서 황종희가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 대상은 임금이었어요.
그는 임금이 천하를 마치 자기 개인 재산처럼 여긴다고 꼬집었어요.
온 나라가 한 집안의 사유물이 되어버린 셈이죠.
여기서 황종희의 진짜 새로운 생각이 나와요.
그는 옳고 그름을 임금 한 사람이 정해선 안 된다고 봤어요.
임금이 옳다고 한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고, 임금이 그르다고 한 것이 꼭 그른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옳고 그름은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했죠.
반 전체에 걸린 일을 반장 혼자 마음대로 정하면, 반장이 틀렸을 때 아무도 막을 수가 없어요.
황종희가 본 군주 전제의 문제가 딱 이거였어요.
한 사람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면, 그 한 사람이 잘못 갔을 때 나라 전체가 함께 무너진다는 것이죠.
그가 명나라의 멸망을 보며 얻은 뼈아픈 깨달음이었어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황종희의 생각은 350여 년 전 것인데도 오늘과 묘하게 닿아 있어요.
우리는 지금 신문, 방송, 인터넷 토론처럼 여럿이 모여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여기죠.
황종희는 그런 공론의 자리가 왜 필요한지를 아주 일찍 말한 사람이에요.
다만 조심할 점이 하나 있어요.
황종희를 두고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주장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는 임금 자체를 없애자고 한 것이 아니라, 임금의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견제하자고 한 쪽에 가까웠거든요.
유교라는 큰 틀 안에서 더 나은 정치를 고민한 사람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해요.
그래도 한 사람의 말이 곧 정답이 되는 세상을 의심하고, 모두가 함께 따지는 자리를 세우려 했다는 점은 분명히 빛나요.

정리
황종희는 명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한 사람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는 정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학교를 시험 준비처가 아니라 나라의 옳고 그름을 함께 따지는 공론의 장으로 바꾸자고 했죠.
임금이 옳다고 해서 다 옳은 게 아니라는 그의 말은, 누군가 혼자 답을 정하려 할 때 우리가 떠올려 볼 만한 오래된 지혜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