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희는 왜 새 나라의 벼슬을 마다했을까
황종희는 명나라가 무너진 뒤 청나라의 벼슬을 끝내 거부하고 유민으로 살면서, 책 『명이대방록』으로 임금이 온 세상을 제 것처럼 차지하는 전제 군주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청나라 초기의 계몽 사상가예요.

황종희는 어떤 사람일까
여러분, 다니던 학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상상해 볼까요.
황종희(1610년부터 1695년까지)에게는 나라가 그렇게 사라졌어요.
그가 태어나 자란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라는 전혀 다른 새 나라가 그 자리에 들어선 거예요.
여든다섯 해를 산 그의 인생은 두 나라에 걸쳐 있었던 셈이죠.
황종희가 열일곱 살 무렵, 큰일이 있었어요.
나랏일을 쥐고 흔들던 환관 무리를 그의 아버지가 바른말로 비판했다가, 감옥에서 목숨을 잃은 거예요.
어린 황종희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려고 직접 도성으로 올라가 따졌다고 해요.
이 일은 그의 평생을 한 문장으로 정해 버렸어요. "힘을 가진 사람이 멋대로 굴면 끝까지 따진다." 이 마음이 훗날 그의 책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명나라 유민으로 산다는 건 무슨 뜻일까
'유민(遺民)'은 망한 나라에 마음을 둔 채 새 나라를 섬기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요.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우리 반을 늘 괴롭히던 옆 반이 우리 반을 흡수해 버렸는데, "나는 그 반 반장 밑으로는 절대 안 들어가" 하고 끝까지 버티는 친구를 떠올려 보세요.
황종희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1644년 명나라가 무너지자, 황종희는 처음엔 진짜로 무기를 들고 청나라에 맞서 싸웠어요.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기울어진 싸움을 되돌릴 수는 없었죠.
그러자 그는 칼을 내려놓고 대신 붓을 들기로 했어요.
청나라 조정이 여러 번 높은 벼슬자리를 권했지만 황종희는 끝까지 마다했고, 고향에 머물며 글을 쓰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남은 삶을 썼어요.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친 게 아니라, 무대를 바꿔서 자기 방식으로 계속 싸운 거예요.
그가 고른 무기는 '생각을 적어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명이대방록에서 임금을 뭐라고 불렀을까
황종희의 대표작은 『명이대방록』이에요.
제목이 어렵죠?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적어 둔 기록'쯤으로 생각하면 편해요.
지금은 캄캄한 밤이지만 언젠가 환한 아침이 오면 그때 꺼내 쓰라고 남겨 둔 글이라는 뜻이에요.
제목부터가 "지금 당장은 안 통해도 괜찮아, 다음 세대를 위한 거니까"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거죠.
이 책에서 황종희는 그 시대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말을 해요.
옛날 동양에서 임금은 하늘처럼 떠받드는 존재였는데,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해를 끼치는 자가 바로 임금"이라고 대놓고 적었거든요.
왜 그렇게까지 말했을까요?
임금이 온 세상을 마치 자기 집 재산처럼 여기고, 백성을 오로지 자기를 위해 부려 먹는 종처럼 다루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황종희는 원래 순서가 거꾸로 됐다고 짚어요.
사실은 백성이 주인이고 임금이 손님이어야 한다는 거죠.
식당으로 비유해 볼게요.
돈을 내고 밥을 먹는 손님이 백성이고, 임금은 그 손님을 잘 모시라고 고용된 종업원이에요.
그런데 종업원이 "이 식당은 통째로 내 거야" 하고 우기면서 손님에게 함부로 군다면 어떨까요.
황종희는 바로 그 뒤집힌 상황이 잘못됐다고 본 거예요.

학교가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했을까
황종희는 임금 한 사람이 모든 옳고 그름을 혼자 정해서는 안 된다고 봤어요.
그래서 '학교(學校)'를 아주 눈여겨봤죠.
여기서 학교는 그냥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똑똑하고 곧은 사람들이 모여서 정치가 잘 돌아가는지 잘못 돌아가는지를 마음껏 따지는 자리를 뜻해요.
오늘날로 치면 신문이나 국회, 또는 누구나 의견을 내는 공론의 장에 가까워요.
임금이라도 학교에 와서 "그건 틀렸습니다"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죠.
권력을 한 사람 손에 몽땅 쥐여 주지 말고, 여럿이 나눠서 서로 살피자는 생각이에요.
반장 혼자 반 규칙을 다 정하지 말고, 학급 회의에서 같이 정하자는 것과 비슷하죠.
이런 생각은 사백 년 전 그 시대에는 정말 한참 앞서간 것이었어요.
이렇게 깊고 단단한 생각 덕분에, 황종희는 고염무, 왕부지와 함께 청나라 초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큰 학자로 나란히 불려요.
그는 명나라 유학자들의 생각을 한데 정리한 『명유학안』이라는 두꺼운 책도 남겨서, 후대 사람들이 그 시대의 학문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줬어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황종희의 책은 정작 그가 살아 있을 때는 빛을 보지 못했어요.
임금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너무 위험한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백여 년이 지나 중국이 크게 흔들리며 바뀌려던 시기에, 사람들이 이 묻혀 있던 책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어요. "옛날 우리 안에도 이미 이런 생각이 있었구나" 하고 놀라면서요.
힘센 사람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으니 여럿이 함께 살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권력은 누군가의 사유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생각.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사백 년 전에 이 말을 목숨을 걸고 글로 남기려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황종희는 그 용기를 낸 사람이에요.

정리
황종희는 명나라가 망한 뒤 새 나라의 벼슬을 마다하고 유민으로 살며, 칼 대신 붓으로 끝까지 싸운 사람이에요.
그는 『명이대방록』에서 임금이 세상을 제 재산처럼 삼는 전제 군주제를 비판하고, 백성이 진짜 주인이며 권력은 여럿이 나눠 살펴야 한다고 말했어요.
답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대에도 다음 세대를 위해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적어 둔 사람, 그것이 우리가 오늘 황종희를 기억하는 이유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