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5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절에서 한 스님이 "제 아내와 아이들이에요" 하고 인사하면 좀 어리둥절하죠. 우리가 떠올리는 스님은 머리를 깎고 혼자 조용히 수행하는 분이니까요. 그런데 약 800년 전 일본에, 보란 듯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운 스님이 있었어요. 이름은 신란, 1173년부터 1263년까지 아흔 해를 살았고, 정토진종이라는 큰 불교 종파를 연 사람이에요.
그 시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스님이 결혼하지 않는 건 그냥 분위기가 아니라 꼭 지켜야 할 규칙이었거든요. 그걸 대놓고 깬 거라, 요즘으로 치면 회사 규정을 어기고도 "이게 오히려 맞다"고 당당히 말한 셈이에요. 그는 왜 이런 길을 갔을까요.
신란은 아홉 살에 출가해 히에이산이라는 큰 절에서 스무 해 가까이 수행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대요. 욕심도, 두려움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죠. 그러다 호넨이라는 스승을 만나요. 호넨은 "어려운 수행은 접어 두고, 그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가르친 분이에요.
이 가르침이 빠르게 퍼지자 기존 불교계가 크게 반발했어요. 결국 1207년, 나라에서 호넨과 제자들을 벌하고 신란은 승려 자격을 빼앗긴 채 먼 시골로 유배를 가요. 스님 신분을 잃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 것, 이걸 환속이라고 해요. 그리고 바로 이 무렵 그는 결혼을 합니다.
신란은 자기를 "비승비속"이라 불렀어요. 스님도 아니고 보통 사람도 아니라는 뜻이에요. 얼핏 어정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깊은 생각이 담겨 있어요.
그는 이렇게 본 거예요. 머리를 깎고 규칙을 지킨다고 해서 그 사람 속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건 아니다. 반대로 결혼하고 밥벌이하며 산다고 해서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겉모습이 스님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결혼을, 자기 믿음을 몸으로 보여 주는 증거로 삼았어요.
호넨과 신란이 말한 '나무아미타불'은 무슨 뜻일까요. '나무'는 "당신께 의지합니다"라는 말이고, '아미타불'은 한 부처의 이름이에요. 둘을 합치면 "아미타 부처님, 당신께 제 모든 걸 맡깁니다"라는 한마디예요.
어려운 경전을 외우거나 며칠씩 굶으며 참선하지 않아도 돼요. 글을 못 읽는 사람도, 하루 종일 밭일하는 사람도 입으로 이 한마디만 부르면 된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는 문, 신란은 거기에 마음을 걸었어요.
여기서 신란 사상의 핵심이 나와요. 바로 타력본원이에요. 말이 어렵지만 장면 하나로 풀면 쉬워요.
수영을 전혀 못 하는 사람이 깊은 물에 빠졌다고 해 봐요. 혼자 팔을 휘저으며 안간힘을 써도 자꾸 가라앉죠. 그때 구조대원이 던진 튜브를 붙잡고 몸에 힘을 빼면, 오히려 물 위로 떠올라요. 신란이 말한 구원이 딱 이래요.
'타력'은 남의 힘, 정확히는 아미타불이라는 부처의 힘이에요. '본원'은 그 부처가 "누구든 나를 부르면 반드시 구하겠다"고 미리 세운 약속이고요. 내가 수행을 잘해서 스스로 깨닫는 게 '자력'이라면, 신란은 그 자력을 내려놓고 부처의 약속에 나를 통째로 맡기라고 해요. 발버둥치는 대신 믿고 맡기는 쪽이죠.
신란에게는 유명한 말이 하나 더 있어요. "착한 사람도 구원받는데, 하물며 못난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보통은 거꾸로 생각하죠. 착하게 산 사람이 먼저 구원받고, 욕심 많고 잘못 저지른 사람은 뒤로 밀린다고요. 그런데 신란은 이걸 뒤집어요. 자기 힘으로 착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보다, "나는 도저히 안 되는 사람"이라며 부처에게 매달리는 사람이 오히려 그 약속에 더 가깝다는 거예요.
이게 그가 결혼한 이유와도 이어져요. 욕심도 있고 흔들리기도 하는 평범한 자기 모습을 숨기지 않고, 그런 사람조차 구원받는다는 걸 직접 살아 보인 거죠.
신란의 길은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어요. 절에 들어가 평생 수행할 형편이 안 되는 농부도, 장사꾼도, 가족을 둔 사람도 그대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래서 정토진종은 훗날 일본에서 신도가 가장 많은 불교 종파로 자리 잡아요.
어려운 수행과 까다로운 규칙을 통과해야만 닿던 구원을, 신란은 보통 사람들 손에 쥐여 준 거예요. 결혼한 스님이라는 파격은 그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 한 장면이었고요.
신란은 스님이 결혼하지 않던 시대에 아내를 맞고 아이를 키운 사람이에요. 유배로 승려 자격을 잃은 환속을 오히려 받아들여, 스님도 속인도 아닌 자리에서 살았죠. 그의 핵심은 타력본원, 내 힘으로 애쓰기보다 "반드시 구하겠다"는 부처의 약속에 나를 맡기는 믿음이에요. 그래서 못난 사람일수록 구원에 가깝다고 했고, 그 믿음을 자기 결혼으로 증명했어요. 어려운 수행 없이 누구나 구원받는 길을 연 것, 그것이 신란이 남긴 가장 큰 발자국이에요.
5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