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던 일은 어디로 갔을까요, 바수반두(세친)의 아뢰야식과 종자설
분명 잊었는데 왜 또 튀어나올까요
며칠 전에 외운 영어 단어는 까맣게 잊었는데, 어릴 때 들은 노래는 가사까지 줄줄 나올 때가 있어요. 또 "다시는 화내지 말아야지" 다짐해 놓고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또 욱하고 말죠. 분명 지나갔다고 생각한 일이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시간이 흐른 뒤 슬그머니 다시 튀어나오는 느낌이에요.
옛날 인도의 한 스님은 이 평범한 경험을 아주 진지하게 파고들었어요. 우리가 한 모든 일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는 걸까. 이 질문을 평생 붙들고 답을 만든 사람이 바로 바수반두, 우리말로는 세친이라고 부르는 철학자예요.
1600년 전 인도의 두 형제
바수반두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 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서 태어난 인도 불교 철학자예요. 젊을 때는 불교의 여러 교리를 빈틈없이 정리한 두꺼운 책 구사론을 써서, 둘레에서 "이 사람 정말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 책은 그 뒤로 천 년 넘게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 교과서가 됐어요.
그에게는 무착이라는 형이 있었어요. 처음에 바수반두는 형이 믿던 새로운 가르침을 못마땅해했다고 해요. 그런데 형이 동생을 차근차근 설득했고, 마음을 돌린 두 형제는 함께 유식학이라는 학문을 단단하게 세웠어요. 유식은 "오직 마음(식)이 만들어 낸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보는 세상이 사실은 마음이 그려 낸 그림에 가깝다는, 조금 놀라운 생각이죠.
마음속에 창고가 하나 있어요
유식학의 한가운데에 아뢰야식이라는 말이 나와요. 글자만 보면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커다란 창고예요.
우리 마음에는 여러 층이 있어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표면의 마음이 있고, 그 아래 "이게 다 나야"라고 우기는 마음이 있고, 가장 밑바닥에 모든 걸 저장하는 창고가 있어요. 바수반두는 이 맨 아래 창고를 아뢰야식이라고 불렀어요. 컴퓨터로 치면, 화면에 띄운 창이 아니라 전원을 꺼도 자료가 남아 있는 하드디스크에 가까워요.
이 창고는 평소에는 너무 조용해서 우리가 있는 줄도 몰라요. 하지만 한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을 받아 적고 있어요.
모든 행동은 씨앗을 하나 심어요
그럼 그 창고에는 뭐가 쌓일까요. 바수반두는 그걸 종자, 곧 씨앗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생각을 할 때마다 그 흔적이 씨앗 한 톨이 되어 창고에 떨어져요. 화를 내면 화의 씨앗이, 친절을 베풀면 친절의 씨앗이 심기는 거예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게도 없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저장돼요.
밭에 씨앗을 묻으면 당장은 아무 일도 없죠. 흙 속에 가만히 들어 있어요. 그러다 물과 햇빛이라는 조건이 맞으면 그제야 싹이 터요. 마음속 씨앗도 똑같아요. 심긴 뒤엔 한동안 잠잠하다가,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싹을 틔워 다시 행동으로 나타나요. 며칠 전 단어는 잊었는데 어릴 적 노래는 튀어나오는 이유, 그만하자고 다짐해도 또 욱하는 이유가 다 여기 있어요.
씨앗과 행동이 돌고 돌아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재미있어져요. 행동이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자라서 또 다른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다시 새 씨앗을 심어요. 끝없이 도는 동그라미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자주 하는 행동일수록 씨앗이 점점 많아지고, 싹도 더 쉽게 터요. 우리가 "습관"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거예요. 화를 자꾸 내면 화내기가 점점 수월해지고, 따뜻한 말을 자꾸 하면 그게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것 말이에요. 바수반두는 이 평범한 변화를, 씨앗이 쌓이고 싹트는 과정으로 또렷하게 설명한 거예요.
그래서 이게 왜 중요할까요
바수반두가 살던 시절, 많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 진짜 나"가 몸 어딘가에 들어 있다고 믿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불교는 그런 고정된 나는 없다고 봐요.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이 남아요. 고정된 내가 없는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요. 어제 한 일의 결과는 왜 오늘 나에게 돌아올까요.
아뢰야식과 종자설은 바로 여기에 답을 줘요. 변하지 않는 나는 없지만, 창고에 쌓인 씨앗이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 이어지면서 어제와 오늘을 연결해 준다고요. 덕분에 책임이라는 말도 살아나요. 내가 심은 씨앗은 결국 내 창고에서 싹트니까요.
그리고 이 생각에는 따뜻한 구석이 있어요. 씨앗은 새로 심을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 화의 씨앗을 많이 심었더라도, 오늘부터 다른 씨앗을 심기 시작하면 창고의 내용물은 조금씩 바뀌어요.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1600년 전 이론 안에 이미 담겨 있던 셈이에요.
정리
바수반두, 곧 세친은 약 1600년 전 형 무착과 함께 유식학을 세운 인도 철학자예요. 그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모든 경험을 저장하는 창고, 아뢰야식이 있다고 봤어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과 생각은 씨앗이 되어 그 창고에 쌓이고, 조건이 맞으면 싹터서 다시 행동으로 나타나요. 이 씨앗과 행동이 돌고 도는 흐름이 우리의 습관을 만들고, 고정된 나 없이도 어제와 오늘을 이어 줘요. 그러니 잊었다고 사라진 게 아니에요. 다만 오늘 어떤 씨앗을 심을지는, 우리가 고를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