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 불교를 가장 세게 공격하던 사람은 바수반두 본인이었어요
한집안에 태어난 두 형제
인도에 형제가 살았어요. 형은 무착(아상가), 동생은 바수반두(세친)예요. 4세기에서 5세기 무렵, 지금의 파키스탄 페샤와르쯤 되는 곳에서 자랐다고 전해져요. 사이는 좋았지만, 두 사람이 믿는 길은 서로 달랐어요. 형은 일찍부터 '대승'이라는 새로운 불교에 마음을 줬고, 동생은 그 대승이 영 못마땅해서 날카롭게 따지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훗날 대승을 떠받치는 큰 기둥이 된 사람이 바로 그 동생 바수반두였다는 점이에요. 어쩌다 가장 매섭던 비판자가 가장 든든한 편이 됐을까요.
동생이 믿던 '모든 게 진짜로 있다'는 생각
바수반두가 젊을 때 깊이 파고든 가르침은 '유부'예요. 길게 부르면 설일체유부인데, 풀어 보면 '모든 것이 실제로 있다고 말하는 무리'라는 뜻이에요. 레고로 만든 성을 떠올려 보세요. 성은 부수면 사라지지만, 그 성을 이루던 블록 하나하나는 그대로 남잖아요. 유부는 세상도 그렇다고 봤어요. 눈에 보이는 물건은 흩어져 사라져도, 그것을 이루는 아주 작은 부품들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진짜로 있다고요. 세상을 잘게 쪼개 부품 목록을 만드는 일, 그게 유부가 한 일이에요.
유부 백과사전을 쓰면서, 동시에 흠을 잡다
바수반두는 이 유부의 가르침을 차곡차곡 모아 '구사론'이라는 책을 썼어요. 흩어져 있던 내용을 한 권으로 정리한, 말하자면 잘 만든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 지금도 불교 공부의 기본서로 읽혀요. 그런데 그는 그냥 받아 적기만 하지 않았어요. 정리하는 틈틈이 '이 대목은 좀 이상하지 않나' 하고 스스로 따져 물었거든요. 똑똑한 사람이 자기가 배운 것조차 의심한 셈이에요. 이 버릇이 나중에 그를 완전히 다른 자리로 데려갑니다.
형이 건넨 손길, 그리고 마음을 바꾼 순간
형 무착은 동생의 날선 머리가 아까웠어요. 그래서 대승을 제대로 보여 주려고 마음을 썼지요. 형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바수반두는 자기가 그동안 대승의 겉만 보고 헛다리를 짚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대승을 그토록 헐뜯던 자기 혀를 잘라 버리고 싶다고 했대요. 그러자 형이 이렇게 말렸다고 해요. "그 혀로 이번엔 대승을 알리면 되지 않겠니." 잘잘못을 따지던 입을, 이제는 새 길을 펴는 데 쓰게 된 거예요.
마음 하나로 세상을 다시 본 '유식'
전향한 바수반두가 새로 세운 체계가 '유식'이에요. 꿈을 떠올려 보세요. 꿈속에서는 산도 강도 진짜처럼 또렷하지만, 깨고 나면 전부 내 마음이 그려 낸 그림이었죠. 유식은 우리가 깨어서 보는 세상도 그와 비슷하다고 봐요. 바깥에 사물이 따로 떡하니 있다기보다, 마음(식)이 만들어 보여 주는 것에 가깝다고요. 그래서 '오직 식만 있다'는 뜻으로 유식이라 불러요. 한때 그가 믿던 유부의 '모든 게 다 있다'와는 정반대 방향이죠. 부품이 진짜냐 아니냐를 따지던 사람이, 그 부품을 보는 마음 쪽으로 눈을 돌린 거예요.
왜 이 전향이 그렇게 큰일일까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꾼 일이 천오백 년 넘게 이야기되는 이유는, 바꾼 사람이 보통내기가 아니어서예요. 바수반두는 유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안쪽 사람이었어요. 그런 그가 대승으로 넘어와 유식을 또렷한 학문으로 다듬자, 대승은 '느낌만 좋은 믿음'이 아니라 '따져 들어도 버티는 사상'이 됐어요. 적장이 우리 편이 되어 성을 더 튼튼히 쌓아 준 셈이죠.
정리
바수반두는 처음엔 '모든 게 진짜로 있다'는 유부를 파고들어 구사론을 쓴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의심하는 버릇과 형의 손길 덕분에 대승으로 돌아섰고, '세상은 마음이 그려 낸다'는 유식을 세웠지요. 가장 매섭던 비판자가 가장 단단한 기둥이 된 이야기는, 잘 안다고 믿던 것조차 다시 들여다볼 용기가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가는지 보여 줘요. 생각을 바꾸는 일은 지는 게 아니라, 더 멀리 가는 한 걸음일 수 있다는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