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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앞에 놓인 책상을 한번 보세요. 손으로 두드리면 딱딱하고,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생각해요. "세상엔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가득하구나."
그런데 약 천오백 년 전, 인도의 한 스님은 이 당연한 느낌을 끝까지 의심했어요. 책상을 자르고 또 자르면,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까. 그렇게 세상을 가장 작은 조각까지 쪼개 본 사람이 바로 바수반두, 한자 이름으로는 세친입니다.
바수반두는 4세기에서 5세기 무렵, 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간다라 지역에서 활동한 불교 철학자예요. 그는 당시 불교가 수백 년 동안 쌓아 온 세계 분석을 한 권에 정리했는데, 그 책이 바로 구사론, 정확히는 아비달마구사론이라고 불려요.
구사론이라는 이름이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의외로 친근해요. '아비달마'는 '가르침을 자세히 분석한다'는 말이고, '구사'는 '보물 창고'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구사론은 '세상을 분석한 지식을 모아 둔 보물 창고'인 셈이죠. 백과사전 한 권을 떠올리면 돼요.
구사론의 핵심 생각은 이거예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부품들의 모임이라는 거죠.
레고를 떠올려 보세요. 멋진 성도, 자동차도, 사실은 작은 블록 몇백 개가 모인 것뿐이에요. 성이라는 물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블록이 그렇게 쌓여 있을 때 우리가 '성'이라고 부르는 거죠.
바수반두는 세상도 똑같다고 봤어요. 책상, 사람, 마음, 심지어 미움이나 기쁨 같은 감정까지도, 모두 더 작은 기본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요. 이 기본 부품을 불교에서는 '법'이라고 불러요. 구사론은 이 부품들을 종류별로 꼼꼼히 나눠서 일흔다섯 가지로 정리했어요. 돌멩이 같은 물질도, 눈으로 보는 작용도,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도 다 목록에 들어 있죠. 세상을 이루는 부품 목록표를 만든 거예요.
여기서 더 놀라운 이야기가 나와요. 바수반두가 보기에 이 작은 부품들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아요. 생겨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라진다는 거예요.
영화를 떠올려 보세요. 화면 속 사람은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사실 영화는 멈춰 있는 사진을 1초에 스물네 장씩 빠르게 이어 붙인 거예요. 한 장 한 장은 따로 떨어진 그림인데, 너무 빨리 지나가서 우리 눈에는 하나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죠.
구사론이 보는 세상도 이런 영화예요. 책상은 한순간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음 순간 아주 비슷한 책상이 또 나타나요. 이걸 셀 수 없이 빠르게 반복하니까, 우리 눈에는 '계속 그대로 있는 책상'처럼 보이는 거죠. 사실은 매 순간 새로 깜빡이고 있는데 말이에요. 불교에서는 이 짧은 한순간을 '찰나'라고 불러요.
이 생각을 나 자신에게 돌려 보면 조금 서늘해져요. 책상이 부품들의 모임이고 매 순간 바뀌는 거라면,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바수반두는 변하지 않고 딱 버티고 있는 '진짜 나'라는 알맹이는 없다고 봤어요. 몸과 감각과 생각이라는 부품들이 잠깐씩 모였다 흩어지는데, 그 흐름에 우리가 '나'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라는 거죠. 강물과 비슷해요. 우리는 '한강'이라고 부르지만, 그 물은 한 번도 같은 물인 적이 없잖아요. 어제 본 한강과 오늘 본 한강은 전혀 다른 물이 흐르는데도, 우리는 같은 강이라고 느끼죠.
바수반두가 세상을 부품으로 쪼갠 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어요. 불교의 큰 목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세상이 진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봤거든요.
'단단하고 영원한 내가 있다'고 믿으면, 그 나를 지키려고 집착하고 그래서 괴로워져요. 그런데 모든 게 매 순간 바뀌는 흐름일 뿐이라는 걸 알면, 움켜쥐려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거죠. 구사론의 정교한 분석은 사실 이 깨달음으로 가는 아주 자세한 지도였던 셈이에요.
흥미롭게도 바수반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형 무착의 권유로 생각을 더 밀고 나가, 세상은 결국 마음이 그려 낸 것이라는 유식 사상의 체계를 세웠어요. 세상을 잘게 쪼개던 사람이, 끝에 가서는 그 모든 게 마음의 일이라는 데까지 간 거죠.
바수반두가 구사론에서 한 일은, 단단해 보이는 세상을 끝까지 쪼개 본 거예요. 책상도 나도 사실은 아주 작은 부품들의 모임이고, 그 부품들은 영화의 한 컷처럼 매 순간 깜빡이며 새로 바뀌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알맹이는 어디에도 없고요. 다음에 무언가를 '단단하고 영원하다'고 느낄 때, 그게 혹시 빠르게 지나가는 영화 장면은 아닐까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천오백 년 전 바수반두가 본 세계가 조금은 가깝게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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