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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과학은 따지는 거고 종교나 마음은 그냥 믿는 거라고요. 둘은 물과 기름처럼 안 섞인다고들 하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봐요.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음이 몇 헤르츠인지 계산하지 않아요. 그냥 가슴이 찡하죠. 그렇다고 그 느낌이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머리로 따지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같이 일하는 거예요. 바로 이걸 평생 붙들고 설명한 사람이 인도의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이에요.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은 1888년부터 1975년까지, 여든일곱 해를 살았던 인도 사람이에요. 직업이 좀 특이해요. 처음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어요. 인도 안에서만이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동양 종교와 철학을 가르쳤죠. 그러다 나중에는 인도의 두 번째 대통령까지 됐어요. 교수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거예요.
그가 남긴 가장 큰 일은요, 인도 철학을 서양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정리해서 소개한 거예요. 그때만 해도 서양 사람들은 인도 철학을 그냥 신비한 주문 같은 걸로만 여겼거든요. 라다크리슈난은 책을 여러 권 써서 인도 철학도 서양 철학처럼 논리가 있고 깊이가 있다는 걸 또박또박 보여 줬어요. 인도에서는 그의 생일인 9월 5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할 만큼 그를 큰 선생님으로 여겨요.
라다크리슈난이 평생 말한 핵심은 이거예요. 이성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철학이요. 말이 좀 어렵죠? 쉽게 풀어 볼게요.
이성은 따지는 힘이에요. 이게 맞나, 앞뒤가 안 맞는 건 아닌가 묻는 거죠. 영적이라는 건 눈에 안 보이는 더 큰 무언가를 마음 깊이 느끼고 그것과 이어져 있다고 여기는 거예요. 보통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따질 거면 느낌은 버리고, 믿을 거면 따지지 말라고요.
라다크리슈난은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진짜 좋은 믿음이라면 따져 봐도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마치 튼튼한 다리는 무거운 트럭이 지나가도 끄떡없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는 따지는 일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끝까지 따져 들어가다 보면 오히려 더 깊고 큰 무언가에 닿게 된다고 봤거든요.
그가 특히 중요하게 본 건 직감이에요. 문제를 한참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아 이거구나 하고 탁 떠오르는 그 느낌 있잖아요. 라다크리슈난은 이걸 이성보다 못한 게 아니라 이성이 차곡차곡 쌓인 끝에 피는 꽃 같은 거라고 봤어요.
공부를 안 한 사람한테는 그런 직감이 안 와요. 수학 문제를 많이 풀어 본 사람이 새 문제를 보고 길이 보이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직감은 따지는 과정을 건너뛴 게 아니라 그 과정을 다 거친 사람한테 찾아오는 거예요. 영적인 깨달음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했어요. 머리로 충분히 따진 사람이 그 너머를 느끼는 거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믿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지금도 과학과 종교, 머리와 마음을 자꾸 편 갈라요.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은 바보 같은 거라고 몰아붙이기도 하죠. 라다크리슈난의 생각은 그 싸움을 멈추게 해 줘요. 둘 다 사람을 이루는 진짜 능력이고, 잘 쓰면 서로 도와준다고요.
그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태도 덕분이에요. 한쪽이 옳고 한쪽이 틀렸다고 보지 않고, 서로 다른 길이 같은 산의 다른 쪽 비탈일 수 있다고 본 거죠.
라다크리슈난은 이성과 영성을 둘 중 하나 고르는 문제로 보지 않았어요. 따지는 힘과 깊이 느끼는 힘이 한 사람 안에서 같이 일한다고 봤죠. 직감과 깨달음도 따지기를 건너뛴 게 아니라 충분히 따진 끝에 오는 거라고 했고요. 그래서 그는 인도 철학을 논리 있게 서양에 소개할 수 있었고, 철학 교수에서 대통령까지 된 사람으로 기억돼요. 다음에 머리와 마음이 싸우는 것 같을 때, 둘 다 내 편일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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