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라 쫓겨날 뻔한 이사가 왕에게 보낸 편지 간축객서

짐을 싸라는 명령이 떨어진 날
기원전 237년, 중국 진나라에서 좀 황당한 명령이 내려와요. "외국 출신 관리는 전부 짐 싸서 나가라." 회사로 치면 "타지 사람은 다 그만두라"는 통보가 붙은 셈이에요. 그런데 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 중에 이사라는 신하가 있었어요. 그도 진나라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보통 사람이라면 억울해하며 짐을 쌌겠지요. 이사는 짐 대신 붓을 들어요. 왕에게 편지 한 장을 써요. 그 편지가 바로 동양 역사에서 두고두고 읽히는 명문, 간축객서예요. 쫓아내는 손님을 말린다는 뜻이에요.

이사는 원래 진나라 사람이 아니었어요
이사는 초나라의 상채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젊을 때 곡식 창고와 변소의 쥐를 보고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변소의 쥐는 사람만 오면 벌벌 떨며 도망가는데, 창고의 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느긋했대요. 같은 쥐인데 어디 있느냐에 따라 팔자가 갈린 거예요. 이사는 생각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나는 좋은 자리로 가야겠다. 그래서 당시 가장 힘이 세지던 나라 진으로 건너가요. 자기 능력을 알아줄 큰 무대를 찾아간 거예요.

간첩 사건이 불씨가 됐어요
그 무렵 진나라에서 사건이 하나 터져요. 정국이라는 물길 기술자가 진나라에 큰 운하를 지어 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옆 나라 한이 보낸 간첩이었어요. 큰 공사로 진나라의 힘을 빼려는 속셈이었지요. 이 일이 드러나자 진나라 귀족들이 들고일어나요. "거봐라, 외국 사람은 못 믿는다. 다 내보내자." 그래서 나온 게 외국 출신을 쫓아내는 명령, 축객령이에요. 한 사람의 잘못을 핑계로 외국인 전체를 의심한 거예요.

이사가 편지에 적은 단 하나의 논리
이사의 편지는 화내거나 사정하지 않아요. 대신 왕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진나라가 어떻게 이만큼 강해졌는지 기억하시냐고요. 옛 임금들이 큰일을 해낼 때 곁에 둔 신하들, 백리해도 상앙도 장의도 범저도 전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어요. 외국 인재를 받아들였기에 진나라가 커졌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한 방을 날려요. 왕께서는 멀리서 온 옥과 좋은 말과 아름다운 음악은 그렇게 아끼시면서, 어째서 멀리서 온 사람만은 내치십니까. 물건은 외국 것을 좋아하면서 사람은 거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논리였어요.

태산은 흙 한 줌도 마다하지 않아요
이 편지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이거예요. 태산은 한 줌의 흙도 거절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아졌고,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깊어졌다. 무슨 말일까요. 큰 산이 "이 흙은 더러우니 안 받아" 하고 골랐다면 결코 산이 못 됐을 거예요. 바다도 작은 개울물을 "넌 너무 작아" 하고 돌려보냈다면 바다가 못 됐겠지요. 나라도 똑같아요. 사람을 출신으로 가려 받으면 결코 커질 수 없다는 뜻이에요. 큰 그릇은 가리지 않는다는 이 한 문장이,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요.

편지 한 장이 바꾼 것
왕은 편지를 읽고 마음을 바꿔요. 축객령을 거두고 이사를 다시 불러들이지요. 이 한 장이 이사의 인생을 살렸을 뿐 아니라 역사도 바꿔요. 이사는 점점 높이 올라 결국 진나라의 최고 자리인 승상까지 됩니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마침내 여러 나라를 통일하고 하나의 제국이 될 때, 그 설계를 맡은 사람이 바로 이사였어요. 나라마다 다르던 글자와 도량형, 수레바퀴 폭까지 하나로 맞춘 게 그의 작품이에요. 다만 그의 끝은 밝지 않았어요. 책을 불태우는 일에 앞장섰고, 진시황이 죽은 뒤 권력 다툼에 휘말려 기원전 208년에 비참하게 처형당해요. 외국에서 온 쥐 한 마리가 가장 큰 창고를 차지했다가, 그 창고에서 최후를 맞은 셈이에요.

정리
이사는 쫓겨날 처지에서 칼이 아니라 편지로 자기를 지킨 사람이에요. 그가 적은 간축객서의 핵심은 단순해요. 사람을 출신으로 가려 내치는 나라는 결코 크지 못한다는 것. 태산이 흙 한 줌도 마다하지 않아 높아졌듯이 말이에요. 능력 있는 글 한 편이 사람을 살리고 나라의 운명까지 돌릴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높이 오른 사람도 마지막을 잘 맺기는 어렵다는 사실. 이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면, 이사라는 인물이 한결 입체적으로 다가올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