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는 왜 한 여신 앞에서 탄트라와 베단타를 둘 다 걸어봤을까

강가 옆 사원에서 매일 울던 사제
인도 벵골 지방의 강가(갠지스) 강 옆에 다크시네스와르라는 사원이 있어요. 백오십 년쯤 전, 그곳에서 칼리라는 여신을 모시던 젊은 사제가 한 명 있었어요. 이름은 라마크리슈나, 1836년에 태어나 1886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제가 좀 이상했어요. 보통 사제는 정해진 시간에 꽃 올리고 절하고 끝내잖아요. 라마크리슈나는 신상 앞에서 매일같이 울었어요. "돌로 만든 모습 말고, 진짜 당신을 한 번만 보여 달라"면서요. 남들이 글로 배우는 신을, 그는 직접 만나고 싶어 했던 거예요. 이 한 가지 고집이 그의 인생 전체를 설명해 줘요.

몸과 세상을 사다리로 쓰는 길, 탄트라
그의 첫 번째 스승은 바이라비라는 여성 수행자였어요. 1860년대 초, 몇 년에 걸쳐 그에게 탄트라라는 수행을 가르쳤어요.
탄트라가 뭔지 어렵게 느껴지죠. 쉽게 비유해 볼게요. 어떤 사람은 깨끗해지려고 부엌 근처에도 안 가요. 기름 튀고 냄새나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엌에 들어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그 안에서도 정성과 거룩함을 찾아내요. 탄트라가 바로 두 번째 방식이에요. 몸과 감각, 눈앞의 세상을 '더러운 것'이라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신께 오르는 사다리로 삼는 길이에요.
라마크리슈나는 이 길을 머리로만 배우지 않고 하나하나 직접 해봤어요. 그러고는 "이 길로도 정말 닿는구나" 하고 자기 몸으로 확인했어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길, 베단타
얼마 뒤 토타푸리라는 떠돌이 수행자가 사원에 들렀어요. 그는 라마크리슈나에게 전혀 다른 길, 베단타를 가르쳤어요.
베단타의 핵심은 '둘이 아니다'예요. 이것도 비유로 풀어 볼게요. 금 하나로 반지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고 동전도 만들 수 있어요. 모양은 다 다르지만 본바탕은 똑같은 금 하나죠. 베단타는 이렇게 말해요. 너와 나, 신과 세상이 다 따로따로 보여도, 사실은 하나의 같은 바탕이라고요. 바다 위에 파도가 수천 개 일어도 결국 같은 바닷물인 것처럼요.
토타푸리의 안내로 라마크리슈나는 아주 깊은 몰입 상태에 들어갔어요. 나와 세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게 하나로 느껴지는 자리까지 갔다고 전해져요. 탄트라가 세상을 끌어안고 오르는 길이었다면, 베단타는 모든 모양을 지우고 하나로 녹아드는 길이었던 거예요. 정반대처럼 보이는 두 길을 그는 둘 다 끝까지 걸었어요.

길은 달라도 봉우리는 하나라는 깨달음
여기서 멈췄으면 그냥 열심인 수행자였겠죠. 그런데 라마크리슈나는 한 걸음 더 갔어요. 힌두교의 여러 길을 거친 뒤, 한동안은 이슬람의 방식으로, 또 한동안은 기독교의 방식으로도 수행해 봤어요.
그러고 내린 결론이 유명해요. "믿음의 수만큼 길이 있다." 산 하나를 오르는 길이 동쪽에도 서쪽에도 나 있지만, 결국 다 같은 봉우리에서 만나는 것과 같다는 거예요. 그는 이걸 책으로 증명하지 않았어요. 길마다 자기 발로 직접 걸어 올라가 보고 "맞네, 다 같은 데서 만나네" 하고 말한 거예요. 머리로 한 주장이 아니라 몸으로 한 체험이었던 거죠.
왜 지금도 이 이야기가 남았을까
라마크리슈나는 글을 많이 남긴 학자가 아니었어요. 그의 말은 주로 제자들이 받아 적어 전해졌어요. 그 제자 중 한 명이 비베카난다인데, 1893년 미국 시카고의 종교 모임에서 스승의 생각을 세계에 알리면서 이름이 널리 퍼졌어요.
그가 남긴 울림은 단순해요.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 직접 여러 길을 다 걸어 보고 "끝에서 만나더라"라고 말해 준 거니까요. 머리로 따진 화해가 아니라 경험으로 보여 준 화해라서, 백 년이 훌쩍 지나도 사람들이 그를 기억해요.

정리
라마크리슈나는 신을 글로 배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만나려 했던 사제예요. 세상과 몸을 사다리로 삼는 탄트라, 모든 것이 하나라는 베단타, 정반대로 보이는 두 길을 둘 다 끝까지 걸었어요. 거기에 이슬람과 기독교의 방식까지 해본 뒤, 길은 달라도 봉우리는 하나라고 말했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그는 종교의 합일을 주장이 아니라 자기 체험으로 보여 줬고, 그래서 오늘까지 이야기가 남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