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시의 합동이 논증, 같은 것과 다른 것은 누가 정할까요

같은 걸까요 다른 걸까요
책상에 연필 두 자루가 놓여 있어요. 하나는 길고 하나는 몽당연필이에요. 옆 친구한테 "이 둘은 같아, 달라?" 하고 물으면 어떤 친구는 "같지, 둘 다 연필이잖아" 하고, 어떤 친구는 "다르지, 길이가 다르잖아" 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둘 다 맞는 말 같아요. 같은 물건 두 개를 두고 한 명은 같다 하고 한 명은 다르다 하는데, 누구도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에요.
이 묘한 느낌을 평생 붙잡고 늘어진 사람이 있었어요. 2300여 년 전 중국에 살았던 혜시라는 철학자예요.

혜시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혜시는 중국이 여러 나라로 쪼개져 서로 싸우던 시절에 살았어요. 그 가운데 위나라라는 큰 나라에서 재상을 지냈는데, 재상은 오늘날로 치면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총리쯤 되는 자리예요. 책도 엄청나게 읽고 써서, 옛 기록에는 "혜시의 책이 수레 다섯 대에 실을 만큼 많았다"는 말이 남아 있어요. 여기서 '다섯 수레의 책'이라는 옛말이 나왔을 정도예요.
그는 '명가'라고 불린 사람들 무리에 속했어요. 명가는 쉽게 말해 '말 따지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매일 쓰는 "같다, 다르다, 크다, 작다" 같은 말이 정말 세상과 딱 맞아떨어지는지 끈질기게 캐물었거든요. 혜시의 토론 단짝은 그 유명한 장자였는데, 둘은 만나기만 하면 입씨름을 벌이는 사이였다고 해요.

합동이, 같음과 다름을 한데 묶다
혜시의 생각을 한마디로 줄이면 '합동이'예요. 합한다는 '합', 같다는 '동', 다르다는 '이'를 붙인 말이에요. 풀면 "같음과 다름을 하나로 묶는다"는 뜻이죠.
무슨 소리냐면, 같음과 다름이 칼로 자르듯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까 연필 두 자루처럼요. 어디까지 넓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것이 다른 것이 되고, 다른 것이 같은 것이 돼요. 재미있는 건, 같은 명가 안에서도 결이 갈렸다는 거예요. 공손룡이라는 사람은 오히려 '같아 보이는 것도 잘게 갈라야 한다'는 쪽이었거든요. 혜시는 정반대로 '달라 보이는 것도 넓게 보면 합쳐진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의 생각에 같음과 다름을 합친다는 뜻의 '합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작은 같음과 큰 같음
혜시는 같고 다름에도 크기가 있다고 봤어요.
나와 내 짝꿍을 떠올려 봐요. 키도 얼굴도 다르니 우리는 분명 달라요.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면 둘 다 '사람'이라 같아요. 더 물러서면 강아지와도 같아져요. 둘 다 '살아 있는 것'이니까요. 끝까지 물러서면 길가의 돌멩이와도 같아요. 둘 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이잖아요.
이렇게 끝까지 넓히면 세상 모든 것이 한 묶음으로 같아져요. 반대로 아무리 닮은 두 개도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으니, 따지고 들면 세상 모든 것이 저마다 달라요. 혜시는 가까이서 보는 자잘한 같고 다름을 '작은 같고 다름', 끝까지 넓혀서 보는 같고 다름을 '큰 같고 다름'이라고 불렀어요. 같다와 다르다는 이렇게 보는 거리에 따라 자리를 바꾸는 말이었던 거예요.

하늘이 땅만큼 낮다는 말
혜시는 이 생각을 보여 주려고 깜짝 놀랄 문장들을 남겼어요. 이를테면 "하늘은 땅만큼 낮고, 산은 연못만큼 평평하다" 같은 말이에요.
처음 들으면 말도 안 되죠. 하지만 아주 멀리,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고 생각해 봐요. 그 높이에서 보면 에베레스트산이든 동네 연못이든 도토리 키재기처럼 납작해 보여요. '높다, 낮다'도 어디서 보느냐에 달린 말이라는 거예요. "오늘 월나라로 떠났는데 어제 도착했다" 같은 말도 남겼는데, 오늘과 어제, 떠남과 닿음 같은 구분도 보기에 따라 흔들린다는 걸 일부러 비틀어 보여 준 거예요.

말장난이 아니라 따뜻한 결론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머리 굴리는 말놀이 같아요. 그런데 혜시가 다다른 마지막은 뜻밖에 따뜻해요.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 하늘과 땅은 한 몸이다." 끝까지 넓혀 보면 모든 것이 한 몸처럼 같으니, 너와 나, 사람과 동물을 갈라 차별할 까닭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합동이는 단순한 궤변이 아니에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구분, 이를테면 둘로 나뉜 같음과 다름, 높음과 낮음이 사실은 보는 자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일깨워 줘요. 그리고 그 끝에서 모두를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를 데려가요.

정리
혜시는 2300여 년 전, 말이 세상과 정말 맞는지 따지던 명가의 철학자예요. 그의 핵심인 합동이는 "같음과 다름은 정해진 게 아니라 보는 눈의 넓이에 따라 바뀐다"는 생각이에요. 가까이 보면 다르고 멀리 보면 같아지는 것, 그것을 작은 같고 다름과 큰 같고 다름으로 나눠 설명했고, 하늘과 땅, 오늘과 어제 같은 익숙한 구분마저 흔들어 보였어요. 그 끝에서 그가 건넨 말은 '모든 것을 두루 사랑하라'였어요. 다음에 누군가와 "이건 같아, 달라" 다투게 되면, 혜시처럼 한 발짝 물러나 "어디서부터 보느냐"를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