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맞선 결정론을 펼친 마칼리 고살라는 왜 노력이 소용없다고 했을까

결말을 이미 아는 영화처럼
좋아하는 영화를 두 번째로 볼 때를 떠올려 봐요. 주인공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죠. 우리는 마음 졸이며 보지만, 사실 화면 속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적혀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2500년쯤 전 인도에, "우리 삶도 그 영화와 똑같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마칼리 고살라예요. 그는 당신이 무엇을 하든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했어요. 노력도, 착한 일도, 나쁜 일도 그 결말을 바꾸지 못한다는 거죠. 좀 당황스러운 말이죠? 이 생각이 어디서 나왔고, 왜 그 유명한 붓다가 여기에 정면으로 맞섰는지 천천히 풀어 볼게요.

마칼리 고살라는 누구였나요
마칼리 고살라는 붓다, 그리고 자이나교를 세운 마하비라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어요. 지금의 인도 북부에서 활동한 사상가였죠. 그는 '아지비카'라는 학파의 대표 인물이었어요. 아지비카는 당시 인도에서 꽤 큰 무리였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져서, 우리는 주로 불교와 자이나교 경전에 남은 기록으로 그를 알아요.
재미있는 점은, 그 기록 대부분이 그를 비판하려고 쓴 글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그의 생각을 라이벌이 전해 준 이야기처럼 조금 조심해서 들어야 해요.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요. 그의 핵심 주장은 '운명'이었어요.

던진 실타래가 끝까지 풀리듯
고살라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비유가 있어요. 실이 감긴 실타래를 바닥에 힘껏 굴리면 어떻게 되죠? 실이 다 풀릴 때까지 데구루루 굴러가다 멈춰요. 중간에 "그만!" 하고 막을 수 없어요. 감긴 만큼 풀리고 나서야 끝나죠.
고살라는 사람의 삶도 이 실타래와 같다고 봤어요. 그는 이걸 '니야티', 우리말로 '운명'이라고 불렀어요. 똑똑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정해진 횟수만큼 태어나고 또 태어나기를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똑같이 고통의 끝에 닿는다는 거예요. 경전에는 그 횟수가 팔백사십만 번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세월로 적혀 있어요.
여기서 핵심은 '순서를 건너뛸 수 없다'예요. 빨리 깨달으려 애써도 소용없고, 게으름을 피워도 더 나빠지지 않아요. 실타래가 정해진 길이만큼 풀리듯, 모두 정해진 만큼 겪고 나서야 끝난다는 거죠.

그럼 착하게 사는 건 의미가 없나요
여기서 자연스럽게 불편한 질문이 떠올라요. 노력도 소용없고 착한 일도 결말을 못 바꾼다면, 우리가 도덕을 지킬 이유가 있을까요?
고살라의 대답은 사실상 "원인이 따로 없다"였어요. 사람이 더러워지는 데도 이유가 없고, 깨끗해지는 데도 이유가 없다고 했죠. 오늘의 내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한 거예요. 모든 건 이미 짜인 순서대로 흘러갈 뿐이고요.
이런 생각을 어려운 말로 '결정론'이라고 해요. 세상 모든 일이 미리 정해진 원인에 따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죠. 고살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형태, 노력조차 끼어들 틈이 없는 운명론을 밀어붙인 셈이에요.

붓다는 왜 정면으로 맞섰을까
붓다는 이 생각을 매우 위험하게 봤어요. 기록에 따르면 붓다는 고살라의 가르침을 두고 가장 해로운 주장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어요. 이유는 단순해요. 불교의 출발점이 바로 '내 노력으로 나를 바꿀 수 있다'이기 때문이에요.
붓다는 이렇게 봤어요.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씨앗이 되어 다음 결과를 만든다고요.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죠. 그런데 고살라처럼 "다 정해져 있다"고 해 버리면, 수행도 착한 행동도 전부 헛수고가 돼요. 붓다 입장에선 사람들이 노력을 아예 포기하게 만드는 가르침이었던 거죠.
그래서 두 사람의 충돌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었어요. '인간에게 자기 삶을 바꿀 힘이 있는가'라는 아주 오래된 질문을 두고 벌어진 정면 대결이었어요.

이 오래된 다툼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
신기하게도 이 질문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내 성격은 타고난 거라 못 바꿔" 하고 포기하는 마음과,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어" 하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 이 둘의 줄다리기가 바로 고살라와 붓다가 맞붙은 그 지점이에요.
고살라는 모든 게 정해진 실타래라고 했고, 붓다는 우리 손에 실 끝이 쥐어져 있다고 했어요. 둘 중 누가 옳은지는 철학자들도 여전히 시원한 답을 못 내렸어요. 그래서 이 다툼은 틀린 옛날 생각 하나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해요.

정리
마칼리 고살라는 2500년쯤 전 인도에서, 삶은 던져진 실타래처럼 정해진 만큼 풀리고 끝난다는 강한 운명론을 펼친 사상가예요. 노력도 도덕도 결말을 못 바꾼다는 이 주장에, 붓다는 '내 행동으로 나를 바꿀 수 있다'며 정면으로 맞섰고요. 결국 두 사람이 다툰 건 '인간에게 자기 삶을 바꿀 힘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어요. 다음에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내 손에 실 끝이 쥐어져 있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