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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비디오 게임을 하다 보면, 열심히 사냥하고 퀘스트를 깨서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죠. 노력한 만큼 빨라져요. 그런데 이런 게임이 있다고 해봐요. 무얼 하든 정해진 시간이 지나야만 엔딩이 나오는 게임이요. 밤새 손가락이 아프게 매달려도,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엔딩까지 걸리는 시간은 똑같아요. 좀 황당하죠? 그런데 약 2500년 전 인도에, 정말로 "우리 삶이 그런 게임과 같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마칼리 고살라예요. 그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이 이미 거대한 시간표 안에 다 짜여 있다고 봤어요.

마칼리 고살라는 기원전 5세기쯤, 부처님이나 자이나교를 세운 마하비라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도의 사상가예요. 그 무렵 인도는 생각의 시장 같았어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두고 여러 스승이 저마다 다른 답을 들고 나와 길거리에서 서로 겨루던 시절이었거든요. 고살라는 그중 '아지비카'라고 불리는 한 무리를 이끌던 스승이었어요. 한동안은 마하비라와 함께 떠돌며 수행했다고도 전해져요. 그런데 그가 내놓은 답은 다른 누구의 것과도 닮지 않았어요. "네가 무얼 하든, 정해진 것은 끝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거든요.

고살라의 가르침을 전하는 옛 기록에 재미있는 비유가 하나 나와요. 실을 둥글게 감은 실 뭉치를 바닥에 힘껏 굴리면, 실이 끝까지 다 풀릴 때까지 데구루루 굴러가죠. 중간에 마음대로 멈추지 않아요. 사람의 삶도 꼭 그렇대요. 똑똑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정해진 만큼 태어나고 또 태어나기를 되풀이하다가, 그 실이 마지막 한 가닥까지 다 풀리는 순간에 저절로 괴로움이 끝난다는 거예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정해진 만큼만요.
그럼 그 실은 도대체 얼마나 길까요? 고살라는 '840만 대겁'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말했어요. '겁'이라는 건 그 자체로 상상하기 힘들 만큼 긴 시간이에요. 커다란 바위산을 부드러운 천으로 백 년에 딱 한 번씩 쓸어서, 그 산이 다 닳아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 그게 '겁' 하나라고 옛사람들은 말했어요. 그런데 '대겁'은 그보다도 더 큰 시간 덩어리예요. 그 대겁을 무려 840만 번이나 지나야 한다는 거죠. 머릿속으로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길이예요. 누구도 이 횟수를 줄이거나 늘릴 수 없어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똑같이 이 긴 길을 끝까지 다 걸어야만 비로소 끝이 나요.

고살라 생각의 한가운데에는 '니야티'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말로 옮기면 '운명'쯤 돼요. 그는 사람이 맑아지거나 더러워지는 데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고 봤어요. 네가 착하게 애써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게으름을 피워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냥 처음부터 정해진 대로 그렇게 흘러갈 뿐이라는 거예요.
조금 더 쉽게 말해 볼게요. 우리 삶이 이미 다 찍어 둔 영화 필름 같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지금 그 영화를 직접 살아가며 한 장면 한 장면 고르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 필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정해져 있어서 단 한 칸도 바꿀 수 없어요. 내가 흘리는 땀도, 오늘 내가 고른 선택도 그 필름을 한 칸도 바꾸지 못한다는 거죠. 심지어 '바꿔 보려고 애쓰는 그 마음'까지도 이미 필름에 찍혀 있다는 이야기예요.

이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좀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착하게 살든 못되게 살든 끝이 똑같다면, 굳이 힘들게 착하게 살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서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고살라의 생각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어요. 자이나교 쪽도, 부처님 쪽도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죠.
부처님은 특히 이 생각을 가장 위험한 것으로 여겼다고 전해져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네 행동과 선택이 너의 내일을 만든다"는 쪽이었거든요. 노력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 "다 정해져 있으니 노력은 소용없다"는 고살라와는 정반대 자리에 서 있었어요. 실제로 이 논쟁은 옛 불교 경전에, 한 왕이 부처님을 찾아가 "요즘 이런 스승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 전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어요. 두 생각의 부딪침 덕분에, 그 시대 사람들은 '우리에게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게 있을까'라는 질문을 훨씬 깊이 파고들게 됐어요. 그리고 이건 25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철학자들이 끝내 다 풀지 못한 질문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는 솔직하게 짚어 둘게요. 고살라가 직접 쓴 책은 오늘날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대부분 그를 반대하던 불교와 자이나교 쪽 기록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졌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라이벌이 전해 준 고살라'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라이벌의 입을 거친 말이라, 어쩌면 조금은 깎이거나 비틀려 전해졌을 수도 있어요. '840만 대겁'이라는 숫자나 실 뭉치 비유의 큰 줄기는 여러 기록에 나란히 나오니 꽤 믿을 만하지만,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그가 똑같이 말했는지는 아무도 100퍼센트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고살라를 읽을 때는 '확실한 것'과 '전해 들은 것'을 살짝 구분하며 보는 게 좋아요.

마칼리 고살라는 우리 삶이 던져진 실 뭉치처럼, 정해진 길을 끝까지 굴러간다고 봤어요. 840만 대겁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을 누구나 똑같이 지나야 하고, 아무리 애써도 그 길을 한 걸음도 줄일 수 없다고요. 그의 '운명' 사상은 "그럼 도대체 착하게 살 이유가 뭐냐"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자유의지와 윤리를 둘러싼 인도 사상의 큰 논쟁에 불을 지폈어요. 그의 답이 옳았는지보다, 사람들이 자유와 선택이라는 문제를 더 진지하게 묻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고살라는 한 번쯤 기억해 둘 만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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