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 왜 기분이 후련할까, 천 년 전 인도 철학자 아비나바굽타

슬픈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개운했던 적 있나요
분명 눈물까지 훔쳤는데, 극장을 나설 때 마음이 묘하게 후련했던 적 있을 거예요. 무서운 이야기를 일부러 찾아 읽고, 슬픈 노래를 골라 듣기도 하죠. 가만 보면 좀 이상해요. 진짜로 무섭거나 슬픈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데, 이야기 속 무서움과 슬픔은 오히려 돈을 내고 찾아가니까요. 천 년쯤 전, 인도 북쪽 카슈미르 지방에 살던 한 사람이 바로 이 수수께끼를 평생 파고들었어요. 그 사람 이름이 아비나바굽타예요.

한 가지에만 매달리지 않은, 천 년 전 카슈미르 사람
아비나바굽타는 950년쯤 태어나 1016년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져요. 지금의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자락에 자리한 카슈미르가 그의 고향이었어요. 그는 한 우물만 판 사람이 아니었어요. 깊은 종교 철학도 공부하고, 연극과 시와 음악 같은 예술도 파고들었죠. 스승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찾아다니며 배웠다고 해요. 그래서 그의 글에는 큰 줄기가 두 개 흐릅니다.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 같은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은 왜 우리 마음을 흔드는가' 같은 미학이에요. 보통은 따로 노는 이 두 질문을, 그는 한 손으로 묶어 보려 했어요.

머리 위에 안경을 얹고 안경을 찾는 일
먼저 그의 철학부터 쉬운 장면으로 그려 볼게요. 안경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는 '안경 어디 갔지?' 하며 온 집을 뒤진 적, 다들 한 번쯤 있죠. 안경은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데, 그걸 깜빡 잊었을 뿐이에요. 누가 '머리 위에 있잖아' 하고 알려 주면 '아!' 하고 알아차리죠.
아비나바굽타가 이어받은 카슈미르 철학의 핵심이 딱 이거예요. 어려운 말로는 '프라티아비갸', 우리말로 풀면 '다시 알아차림'이에요. 그들은 이렇게 봤어요. 우리는 본래 우주의 큰 의식과 이어진 존재인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고요. 그러니 어디 멀리 가서 새로 얻어 와야 할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것을 '아, 이거였구나' 하고 다시 알아보면 된다는 거예요. 머리에서 안경을 내려 쓰듯이요.

무대 위의 슬픔은 왜 나를 짓누르지 않을까
이제 예술 이야기예요.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라사'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대로 옮기면 '맛' 또는 '즙'이에요. 음식에 단맛 짠맛이 있듯, 잘 만든 이야기에도 우러나는 감정의 맛이 있다는 뜻이죠.
아비나바굽타는 여기에 멋진 설명을 더했어요. 무대 위 주인공이 슬퍼할 때, 우리는 그 슬픔을 느끼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슬픔으로 느끼지는 않아요. '내 가족이 다쳤다'가 아니라 '슬픔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슬픔 그 자체를 맛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프면서도 짓눌리지 않고, 오히려 후련해질 수 있어요. 내 좁은 사정에서 잠깐 풀려나, 누구나 느끼는 큰 감정의 바다에 몸을 담그는 셈이니까요.

깨달음과 예술을 한 줄로 꿴 까닭
여기서 두 줄기가 만나요. 알아차림의 철학은 '좁은 나를 넘어 큰 나와 다시 이어지는 것'이고, 예술의 즐거움도 '좁은 내 사정에서 잠깐 풀려나는 것'이죠. 아비나바굽타가 보기에 둘은 닮은 가족이었어요. 그는 잘 만든 예술을 맛보는 순간의 기쁨이, 깨달음의 기쁨을 살짝 미리 맛보는 일과 통한다고 봤어요. 슬픈 영화를 보고 후련했던 그 느낌이, 사실은 더 큰 무언가의 작은 미리보기였던 셈이에요. 그래서 그는 연극을 논하면서도 철학을 말하고, 철학을 논하면서도 예술을 끌어왔어요.

천 년이 지나도 그를 기억하는 이유
오늘날에도 우리는 종종 예술과 깊은 마음의 문제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해요. 영화는 영화, 종교는 종교, 철학은 철학, 이렇게요. 아비나바굽타가 흥미로운 건 그 칸막이를 천 년 전에 이미 허물어 봤다는 점이에요. 그는 노래 한 곡에 울컥하는 일과, 내가 누구인지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인도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명상과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여태 그의 글로 돌아가곤 해요.

정리
아비나바굽타는 천 년 전 카슈미르에서, 보통은 따로 떼어 놓는 두 질문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이에요. 하나는 '나는 이미 가진 것을 잊고 사는 게 아닐까'라는 알아차림의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왜 슬픈 이야기가 오히려 마음을 후련하게 할까'라는 예술의 맛, 라사예요. 그가 남긴 생각의 핵심은 뜻밖에 단순해요. 좋은 예술 앞에서 잠깐 나를 잊고 큰 감정에 잠기는 그 순간이, 본래의 나를 다시 알아보는 일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에요. 다음에 극장에서 눈물이 핑 돌 때, 그 후련함의 정체가 무엇일지 한 번쯤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