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 고려 왕자가 송나라로 밀항해 천태종을 세운 이야기
왕자 의천은 형 왕이 잠든 새벽 송나라행 상선에 몸을 숨겼다
1085년 봄, 고려의 한 왕자가 형 왕 몰래 외국행 상선에 몸을 숨겼어요.
그 왕자의 이름은 의천이에요.
고려 11대 왕 문종의 넷째 아들이에요.
11세에 스스로 출가를 자청한 정통 왕족 승려였어요.
31세가 된 의천에게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었어요.
송나라로 건너가 최고의 스승들에게 직접 배우는 거였어요.
하지만 형인 선종왕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선종은 고려 13대 왕이에요.
"왕족이 바다를 건너는 건 나라의 체면에 걸린 일이야."
선종은 이렇게 말하며 출국을 막았어요.
그러자 의천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막으면 몰래 가면 되지."
그는 제자 한 명만 데리고 서해안 정주항에 정박한 송나라 상선에 몰래 올라탔어요.
오늘날로 치면, 부모가 유학을 막자 짐 싸들고 공항으로 가 비행기에 혼자 올라버린 자식과 같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왕족이었고, 이건 국법을 어긴 일이었어요.
조정은 발칵 뒤집혔어요.
왕족이 몰래 출국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배에 오른 의천은 뒤를 한 번 돌아본 뒤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갔어요.
의천은 14개월간 송나라 고승 50여 명을 차례로 갈아탔다
의천은 송나라에서 단 하나의 스승을 두지 않았어요.
14개월 동안 50명을 갈아탔거든요.
항주에 도착한 의천은 곧바로 움직였어요.
화엄종의 정원, 천태종의 종간, 율종의 원조, 선종의 종본.
불교 안에서 서로 다른 수행법을 가르치는 종파의 최고 스승들이에요.
의천은 그 중 하나의 제자가 되는 대신, 모두를 차례로 찾아다녔어요.
박사과정 학생에 빗대면 이렇게 돼요.
지도교수 한 명 밑에서 깊이 파는 대신, 14개월 동안 50개 학파의 교수를 한 명씩 찾아가 "당신이 아는 걸 다 알려달라"고 한 거예요.
가장 효율적인 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의천이 원한 건 효율이 아니라 '전체'였어요.
그리고 이 선택이 나중에 굉장히 중요한 결과로 이어졌어요.
한 종파만 배웠다면 그 종파의 눈으로만 세상을 봤을 거예요.
모든 종파를 배웠기 때문에, 의천은 "이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됐어요.
그 질문의 답이 마지막 섹션에서 터져 나와요.
의천은 귀국 후 평생을 4,740권의 속장경 새기는 일에 바쳤다
의천이 귀국해 들고 온 1,010권의 책은 시작에 불과했어요.
그는 평생 4,700권이 넘는 또 다른 대장경을 직접 새겼어요.
1086년 귀국한 의천은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있는 왕실 사찰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세웠어요.
교장도감이란 경전을 새기는 관청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국립 출판원 같은 곳이라고 보면 돼요.
그는 1090년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는 목록집을 먼저 만들었어요.
세상에 어떤 경전이 있는지 목차부터 정리한 거예요.
그리고 그 목록에 따라 평생에 걸쳐 속장경, 흔히 고려교장이라고 부르는 경전을 새겨나갔어요.
최종 분량이 4,740여 권이에요.
한 사람이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전체를 직접 수집하고 분류해 목판에 새겨낸 것과 맞먹는 규모예요.
그리고 그게 진짜로 일어난 일이에요.
나중에 고려가 자랑하는 팔만대장경이 81,258판으로 완성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더 큰 업적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팔만대장경을 만들 때 참조한 1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작업은 의천이 먼저 해낸 일이에요.
기초 없이 건물을 세울 수 없는 것처럼요.
팔만대장경은 의천의 속장경 위에 서 있어요.
의천은 분열된 교종과 선종을 묶으려고 천태종을 세웠다
의천이 천태종을 세운 이유는 분파를 더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정반대로, 둘로 갈라진 고려 불교를 한 자리에 묶으려는 시도였어요.
당시 고려 불교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어요.
경전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교종과, 경전보다 참선과 마음 수련을 중시하는 선종이에요.
두 종파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교종이 선종을 보는 시선은 이랬어요. "앉아서 멍하니 있는 게 무슨 수행이야."
선종이 교종을 보는 시선은 이랬고요. "책만 읽어서 뭘 안다고."
고려 불교는 수백 년 가까이 이렇게 싸워왔어요.
그 한가운데서 의천이 내세운 해법이 교관겸수였어요.
교관겸수의 뜻은 이래요. 경전 공부와 마음 수련, 둘 중 하나만 해서는 안 되고 한 사람이 동시에 다 해야 한다는 거예요.
운동선수가 이론 공부 없이 훈련만 하거나, 이론만 알고 몸을 쓰지 않으면 둘 다 불완전한 것처럼요.
1097년, 의천은 개경에 새로 세운 사찰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정식으로 열었어요.
진보와 보수가 갈라진 시대에 "둘을 모두 끌어안는 통합 정당"을 만들려 한 것과 같은 시도였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어요.
통합을 위해 만든 새 종파가 결국 또 하나의 종파가 됐고, 의천은 47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떠난 뒤에도 교종과 선종의 갈등은 수백 년을 더 이어졌어요.
열한 살에 스스로 승복을 입고, 서른한 살에 형 왕을 어기고 바다를 건너고, 평생 4,700권을 새기고, 47세에 눈을 감은 사람.
그가 하나로 묶으려 했던 세계는 그가 떠난 뒤에도 계속 갈라졌어요.
그건 실패였을까요, 아니면 너무 일찍 왔다가 너무 일찍 떠난 사람의 이야기였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