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이 사육신 시신을 거둔 밤 — 5세 신동에서 생육신까지
김시습은 5살에 세종에게 비단을 받았다
다섯 살 아이의 이름이 임금의 입에서 나온 순간, 김시습의 인생은 이미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1438년 무렵, 한양 어딘가에 소문이 돌았어요.
다섯 살짜리가 한시를 짓는다는 이야기가 궁궐 담장을 넘어 세종 임금 귀에까지 닿았거든요.
세종은 직접 불러서 시험해 보라고 명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청와대에 불려가 대통령 앞에서 즉흥 연설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그게 바로 이 사건의 무게예요.
그리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시를 지어냈어요.
세종이 비단 50필을 내렸어요.
그런데 보좌관 박이창이 "한 필씩 받아가라" 하지 않고 "스스로 묶어서 가져가라"고 했어요.
어린 김시습은 비단 끝과 끝을 서로 묶어 쭉쭉 끌고 나갔어요.
그날 이후 조선 왕실은 이 아이를 국가의 미래로 봤어요.
그리고 그 아이는 평생 그 왕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떠돌았어요.
왕실이 키운 신동이 왕실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가 된 거예요.
김시습은 21살에 자신의 책을 모두 태웠다
김시습이 태운 것은 책이 아니었어요. 자신이 살아갈 미래 그 자체였어요.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끌어내렸어요.
단종은 당시 열네 살짜리 임금이었어요.
수양대군은 그 단종의 삼촌인데, 힘으로 왕좌를 빼앗고 세조가 됐어요.
이 소식을 들은 21살의 김시습은 삼각산 중흥사에 들어가 문을 잠갔어요.
사흘 동안 통곡했어요.
그리고 방에 쌓아둔 책을 전부 불태웠어요.
명문대 합격증을 받은 날, 그 대학 본부에서 대규모 부정입학 사건이 터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합격증을 찢고 교과서를 다 버리는 충격과 비슷해요.
김시습에게 학문이란 올바른 왕이 다스리는 올바른 나라에 쓰이는 것이었는데, 그 전제 자체가 무너진 거잖아요.
책을 태운 뒤 그는 머리를 깎았어요.
법명은 설잠(雪岑), 눈 덮인 봉우리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조선 최고의 신동은 승려가 됐어요.
김시습은 사육신 시신을 홀로 거뒀다
그날 밤 노량진 강가에 흔들리던 등불 하나는, 조선이 외면한 양심 그 자체였어요.
1456년,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는 시도가 발각됐어요.
성삼문·박팽년을 포함한 여섯 명의 신하가 잡혀 처형됐어요.
이 여섯 사람을 사육신(死六臣)이라고 해요. 죽음으로 단종에게 충성을 지킨 여섯 신하라는 뜻이에요.
그 시신은 노량진 강가에 버려졌어요.
하지만 아무도 손댈 수 없었어요.
시신을 거두면 역적으로 몰리던 시대였거든요.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다 외면한 그 시신을 거둔 건 출가한 스물두 살짜리 승려였어요.
김시습은 한밤중에 홀로 강가로 갔고, 시신을 수습해 묻었어요.
지금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가 바로 그 자리예요.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짤린 동료의 짐을, 상사도 선배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때 가장 늦게 들어온 인턴이 새벽에 혼자 와서 정리해 가는 것과 같은 무게의 행동이에요.
정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 가장 정치적인 행동을 한 밤이었어요.
김시습은 금오신화에 기의 철학을 담았다
책을 태웠던 청년은 결국 책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나 누구도 쓴 적 없는 종류의 책이었어요.
유랑을 거듭하던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7년간 머물렀어요.
그곳에서 쓴 것이 금오신화(金鰲新話)예요.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이에요.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이상한 공통점이 있어요.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요.
주인공이 귀신이나 용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걸 그냥 환상 소설로 읽으면 아쉬워요.
김시습은 이 환상을 철학으로 설명했거든요.
기(氣)가 모이면 살아있는 사람이고, 흩어지면 귀신이 된다는 거예요.
기는 우주를 가득 채우는 에너지 같은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사람이든 귀신이든 같은 에너지의 다른 상태일 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이 불가능한 일이 아닌 거예요.
더 놀라운 건 그의 사상이에요.
유교(儒), 불교(佛), 도교(道)를 한꺼번에 끌어안았어요.
셋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셋이 결국 같은 진실을 다른 방향에서 말한다고 봤어요.
정통 유학을 등졌던 사람이 유학을 포함한 가장 넓은 사상 체계를 남긴 거예요.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간 개발자가 7년 만에 업계 표준 오픈소스를 혼자 만들어 내려놓고 다시 사라진 셈이에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아요.
사육신의 시신을 손수 거뒀던 사람이 쓴 소설의 주제가 죽은 자와의 사랑이에요.
이게 우연일 리 없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