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홍이 국민교육헌장을 쓴 진짜 이유
한국 철학의 아버지가 독재 정권의 헌장을 직접 썼다
한국 철학을 처음으로 대학 학문으로 세운 사람이, 말년에는 국민에게 외우라고 강요된 393자를 직접 썼어요.
그 사람이 박종홍이에요.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정권이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어요.
이후 20년간 전국의 모든 학생이 통째로 외워야 했던 393자짜리 국가 사상 선언문이에요.
그 초안을 기초위원장으로서 직접 작성한 사람이 박종홍이에요.
반전은 여기에 있어요.
평생을 한국 철학의 학문적 자율성을 위해 싸운 사람이, 국가가 국민에게 외우게 하는 사상을 직접 썼거든요.
평생 표현의 자유를 외친 작가가 말년에 정부 선전 카피를 쓴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박종홍은 일본 식민지 교사로 시작해 한국 철학과를 세웠다
한국에는 1945년까지 한국인이 가르치는 한국 철학과가 단 하나도 없었어요.
그것을 만든 사람이 박종홍이에요.
박종홍은 1903년 평양에서 태어났어요.
처음에는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혼자 철학을 공부했어요.
그러다 1934년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당시 한국인 졸업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경성제국대학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세운 대학이에요.
수업도 일본어로 했고, 교수도 대부분 일본인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점령군이 세운 학교에서 점령군의 언어로 학위를 딴 거예요.
그런데 해방이 되자, 그 박종홍이 1946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창설을 직접 주도했어요.
1959년에는 한국철학회 초대 회장이 됐어요.
식민지 학교에서 배운 학문으로, 해방된 나라의 학문을 새로 세운 셈이에요.
그는 서양 철학을 빌리지 않고 한국적 철학을 만들려 했다
박종홍은 평생 같은 질문 하나를 붙들고 있었어요.
"한국에 철학이 있는가."
그는 헤겔과 하이데거를 깊이 공부했어요.
헤겔은 '역사에는 방향이 있다'고 주장한 19세기 독일 철학자이고, 하이데거는 '존재란 무엇인가'를 물은 20세기 독일 철학자예요.
하지만 박종홍은 그 이론들을 그대로 한국에 옮겨 붙이지 않았어요.
대신 그는 퇴계와 율곡 같은 조선 성리학자들의 글을 현대 철학 언어로 다시 읽으려 했어요.
퇴계와 율곡은 조선 시대 유학자로, 인간의 본성과 도덕에 대해 평생 논쟁한 사람들이에요.
성리학은 오늘날로 치면 '사람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철학적 근거를 대려 한 동아시아 학문인데, 박종홍은 이 오래된 질문이 서양 철학의 질문과 다르지 않다고 봤어요.
그 결과물이 『한국사상사』예요.
한국인이 한국 사상의 역사를 처음으로 한 권에 통사로 정리한 책이에요.
영문학자가 평생 영국 시를 가르치다가 결국 "우리는 왜 우리 시론이 없나"를 묻고 직접 써내려간 것과 같아요.
서양 철학으로 대학원을 마친 사람이, 평생 "왜 우리는 우리 철학이 없는가"를 물었던 거예요.
그 질문 자체가 그의 철학적 작업이었어요.
박종홍은 죽기 직전까지 청와대 특별보좌관이었다
박종홍이 죽고 18년 뒤, 그가 직접 쓴 393자는 교과서에서 조용히 사라졌어요.
1970년 박종홍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이 됐어요.
학자로서 가장 무게 있는 자리에 있던 그가, 정권의 핵심 자문역이 된 거예요.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리고 1994년, 김영삼 정부가 국민교육헌장을 사실상 폐지했어요.
그가 직접 쓴 393자가 국가 공식 문서에서 사라진 거예요.
평생 만든 회사를 후대에 물려줬는데, 마지막 결정 하나 때문에 이름이 지워지는 상황과 같아요.
그래서 박종홍에게는 '어용 철학자'라는 말이 따라붙었어요.
어용이란 권력에 이용당했다는 뜻이에요.
그가 세운 서울대 철학과는 지금도 있지만, 그가 쓴 393자는 없어요.
그가 평생 물었던 건 "한국에 철학이 있는가"였는데, 사후에 사람들이 물은 건 다른 질문이 됐어요.
"그는 자신의 철학대로 살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