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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141년 어느 밤, 9살 호넨은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살인자를 용서하라는 유언을 들었다.
아버지 우루마노 토키쿠니는 원수의 야습에 칼을 맞고 쓰러졌다.
죽어가면서도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복수하지 마라. 출가해서 나를 죽인 자까지 함께 구원되도록 기도하라."
12세기 일본은 무사의 시대였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라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죽어가는 당사자가 직접 '용서하라'고 명령한 거다.
호넨은 그 길로 출가했다.
원수를 향한 칼 대신 기도를 선택한 것이다.
이 유언 하나가 일본 불교 역사를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30년간 호넨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경전을 읽은 승려였다.
그런데도 매일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
13살에 호넨은 비예이산(比叡山)에 입산했다.
비예이산은 교토 외곽의 산 위에 세워진 천태종 본산으로, 당시 일본 불교의 정점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나라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들만 모이는 연구소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 호넨은 일대장경(一切経)을 다섯 번이나 통독했다.
일대장경이란 약 5천 권에 달하는 불경 전집이다.
오늘날 두꺼운 교과서 한 권도 다섯 번 읽기 어려운데, 5천 권을 다섯 번 읽은 거다.
동료 승려들은 그를 "지혜제일 호넨방"이라 불렀다.
일본 불교계 전체에서 가장 지식이 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호넨 본인은 달랐다.
"아무리 경전을 읽어도 내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지 않아."
학문의 정상에 올라섰는데 정작 그 학문이 답을 주지 못한다는 걸, 30년 만에 깨달아버린 거다.
43살 호넨은 30년간 읽은 5천 권을 단 일곱 글자로 바꿨다.
나무아미타불.
1175년, 호넨은 중국 당나라 승려 선도(善導)가 쓴 책에서 한 구절을 만났다.
선도는 7세기 중국의 정토 사상가로,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만으로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 사람이다.
그 구절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직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자는 누구든 정토에 간다."
호넨에게 이 문장은 30년간 막혀 있던 질문을 단번에 뚫는 열쇠였다.
그는 결단했다.
쌓아온 학문, 지켜온 계율, 수행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염불 하나만 택했다.
그리고 비예이산을 내려와 교토로 갔다.
이것이 일본 정토종(浄土宗)의 시작이다.
정토종이란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만으로 누구든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불교 종파다.
호넨은 공공연히 이렇게 가르쳤다.
"글자도 모르는 노파가 나보다 빠르게 구원받아."
일본 최고 학승이 자기 30년을 스스로 무용지물로 선언한 셈이었다.
"공부 많이 한 사람만 구원받는다"는 기존 불교의 논리를 정면으로 뒤집은 거다.
그 순간부터 절에 다닐 여력도, 경전을 읽을 글자도 없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구원의 문 앞에 설 수 있게 됐다.
75살의 호넨은 승려 옷을 벗긴 채 시코쿠로 끌려갔다.
그가 평생 쓴 책 한 권은 본인이 직접 봉인했다.
정토종이 빠르게 퍼지면서 기존 종단들이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공부 안 해도 된다"는 가르침은 수백 년간 학문으로 권위를 쌓아온 대형 사찰들에게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선언이었다.
1207년, 코후쿠지(興福寺)가 조정에 호넨을 고발했다.
코후쿠지는 나라에 있던 대형 사찰로, 당시 조정에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거기에 제자 일부가 일으킨 추문이 빌미가 됐다.
결국 호넨은 승려 신분을 박탈당하고 시코쿠의 도사(土佐, 지금의 고치현)로 유배됐다.
그의 대표작 『선택본원염불집(選擇本願念佛集)』은 살아있는 동안 비공개였다.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본인이 직접 봉인한 것이다.
평생 다른 사람의 구원을 고민한 사람이 자기 글조차 세상에 내보낼 수 없었다.
4년 뒤 사면을 받아 교토로 돌아왔지만, 이듬해 80세로 눈을 감았다.
복수 대신 기도를 택했던 9살 아이가, 75살에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도 원망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침묵이, 어쩌면 그의 가장 긴 설법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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