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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캉유웨이가 자기 사상을 진짜로 담아낸 책은, 그가 죽고 8년이 지난 1935년에야 세상에 나왔어요.
노벨상급 원고를 평생 서랍에 잠가두고 가족에게 "내가 죽고 한참 지난 뒤에 열어 봐"라고 부탁한 학자를 상상해 보세요.
캉유웨이가 딱 그랬거든요.
대동서(大同書), 우리말로 옮기면 '큰 어울림의 책'이에요.
1884년 무렵부터 평생을 쏟아 집필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1·2부만 1913년 잡지에 살짝 공개했을 뿐이에요.
나머지 8부는 그가 죽은 1927년으로부터 8년이 더 지나서야 가족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왔어요.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는 청나라 말기 중국의 개혁 사상가예요.
오늘날로 치면 기득권 학계 전체에 맞서 시대를 앞서간 혁신 지식인이에요.
그런데 정작 가장 혁신적인 생각은 자기 손에 쥔 채로 세상에는 너무 위험하다며 봉인하고 떠났어요.
1891년 캉유웨이는 2000년간 정통으로 통하던 공자 경전이 통째로 가짜라고 선언했어요.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제목을 풀면 '새 학문의 가짜 경전 비판'이에요.
이 책 한 권으로 그는 유학자 전체를 적으로 돌렸어요.
오늘날로 비유하면 이래요.
누군가가 "신약성경 전체가 사실 4세기에 누가 조작해 넣은 거야"라고 주장하면서 "그래서 나야말로 진짜 기독교의 후계자야"라고 선언한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캉유웨이의 논리는 그보다 훨씬 정교했어요.
그가 노린 건 공자를 '전통의 수호자'가 아닌 '혁신의 설계자'로 다시 읽는 것이었어요.
1898년에 낸 『공자개제고(孔子改制考)』, 즉 '공자가 제도를 바꾼 책'에서 그 작업을 완성했어요.
공자는 옛것을 그냥 전달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시대에 맞게 제도를 고쳐낸 개혁가였다는 거죠.
그래서 보수 유학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이니 바꾸면 안 돼"라고 막을 때, 캉유웨이는 "공자 본인도 계속 바꿨는데요?"라고 맞받아칠 수 있었어요.
공자의 권위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오히려 공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전략이었어요.
캉유웨이가 일본 군함에 오르던 그날, 그의 동생 캉광런은 베이징 처형장으로 끌려갔어요.
1898년 여름, 캉유웨이는 마침내 기회를 잡았어요.
광서제(光緖帝), 청나라의 젊은 황제가 그에게 개혁을 맡긴 거예요.
캉유웨이는 6월 11일부터 과거제 개혁, 신식 학교 설립, 군대 현대화 등 중국 사회 전반을 뒤바꾸는 개혁안을 쏟아냈어요.
이 103일을 무술변법(戊戌變法)이라고 불러요.
1898년이 무술년이었고, '변법'은 법과 제도를 바꾼다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한 나라의 헌법, 교육제도, 군 체계를 동시에 갈아엎으려 한 거예요.
그런데 막는 사람이 있었어요.
자희태후(慈禧太后), 일명 서태후예요.
청나라 실권을 쥔 황태후로, 광서제의 이모이자 그 뒤에서 실질적으로 나라를 움직이던 사람이에요.
9월 21일, 서태후가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광서제는 그 자리에서 유폐됐고, 개혁 주도자들은 잡혀 처형됐어요.
담사동을 포함한 여섯 명이 베이징 채시구 형장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한 명이 캉유웨이의 친동생 캉광런이었어요.
캉유웨이 본인은 일본 군함을 타고 망명했어요.
자기가 시작한 운동의 대가를 동생이 목숨으로 치른 셈이에요.
그는 이후 16년간 망명 생활을 했는데, 기록은 그가 동생을 떠올릴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이 없어요.
캉유웨이는 대동서에서 가족 제도를 인류 최대의 고통이라 썼어요.
그러나 그 자신은 여섯 부인의 남편이었어요.
대동서에서 그가 인류 고통의 뿌리로 꼽은 게 아홉 가지예요.
가족 제도, 사적 소유, 국가, 인종 차별, 성차별 같은 것들이에요.
이것들을 모두 없애야 진짜 대동 세계, 즉 '큰 어울림의 세상'이 온다고 했어요.
채식주의 운동을 창시한 사람이 매일 저녁 식탁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캉유웨이는 정실 부인 한 명에 첩 다섯 명, 모두 합쳐 여섯 부인과 십수 명의 자녀를 뒀어요.
망명 시절에도 새 부인을 들였어요.
그의 입장을 대신하자면 이래요.
"대동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지금 이 세계에서 살고 있어."
이상과 현실을 분리한 거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 논리가 불편한 건, 그가 책을 숨긴 이유가 바로 "세상이 아직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세상이 준비가 안 됐다면, 자기 자신은 준비가 됐을까요?
캉유웨이는 유토피아를 설계했지만, 그 설계도를 자기 삶에는 적용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역사상 가장 위선적인 사상가일까요, 아니면 가장 솔직한 사상가일까요?
이상을 평생 서랍에 숨겨두고 떠난 사람이, 어쩌면 그게 이상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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