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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천하를 줄 테니 머리카락 한 올만 달라'는 거래를 거절한 사람이 있었어요.
양주(楊朱)라는 전국시대 사상가예요.
기원전 4세기 중국, 수많은 나라들이 서로 삼키고 삼키던 혼란기를 살았죠.
그가 남긴 선언은 단 하나예요.
"내 몸의 털 한 올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나는 하지 않겠다(拔一毛而利天下不爲也)."
처음 들으면 그냥 이기주의처럼 보여요.
그런데 양주가 진짜 하려 했던 말은 달랐어요.
회사에서 "이번 주말에 딱 한 번만 나와줘"라는 부탁을 받아본 적 있나요?
그 한 번을 들어주면 그다음 주말도 사라지고, 결국 평생의 주말이 사라진다는 걸 양주는 알고 있었어요.
그가 살던 시대 국왕들은 백성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나라를 위해 딱 한 번만 희생하라."
하지만 그 '한 번'이 쌓이면 사람은 자기 삶을 통째로 잃어요.
양주는 거기서 멈춰 섰어요.
털 한 올이라도 내주지 않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선이었던 거예요.
맹자는 자신의 평생 적이라고 부른 두 사람 중 하나로 양주를 지목했어요.
맹자(孟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유학을 체계화한 철학자예요.
오늘날 《맹자》라는 책으로 남아있고, 동아시아 윤리 사상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에요.
그가 양주를 얼마나 경계했는지는 그가 쓴 욕설 한 줄에 드러나요.
"양주는 자신만 위하니 임금이 없는 것이고, 묵자는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니 아비가 없는 것이다. 임금도 아비도 없으면 짐승이다(無父無君 是禽獸也)."
공식 철학서에서 동료 사상가를 '짐승'이라 부른 거예요.
경쟁사 CEO가 공식 석상에서 당신 회사를 '쓰레기'라고 부르면, 사실 그건 "우리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자백이잖아요.
맹자의 욕설도 마찬가지예요.
그만큼 양주의 위아(爲我) 사상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 깊이 퍼지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위아란 말 그대로 '나를 위함'이에요.
국가를 위해, 임금을 위해, 가문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당시의 상식에 정면으로 맞선 주장이었어요.
맹자 입장에선 이게 사회 질서 자체를 뒤집을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이었던 거죠.
기원전 4세기, 거리에서 사람들이 입을 열면 절반은 양주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어요.
그 기록을 놀랍게도 양주를 가장 격렬하게 비판했던 맹자가 직접 남겼어요.
"천하의 모든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자에게 돌아간다(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
묵자(墨子)는 양주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예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하라"는 겸애(兼愛)를 가르쳤고, 당시 유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영향력이 컸어요.
그 묵자와 양주가 사상의 시장을 반반씩 나눠 가졌다는 뜻이에요.
한때 검색엔진 시장을 지배했던 야후가, 지금은 "구글 이전에 있었던 무언가"로만 기억되는 것처럼요.
같은 시대 공자와 맹자의 유학은 동아시아의 표준이 됐어요.
하지만 양주는 그러지 못했어요.
전국시대가 끝나고 한(漢)나라가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국가의 권위에 불편한 사상들은 서서히 지워졌어요.
양주의 사상은 특히 그랬어요.
국가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때 가장 불편한 목소리였으니까요.
자기 자신을 천하보다 무겁게 두라 가르친 사람이, 자기 책 한 권을 끝내 후세에 전하지 못했어요.
양주의 생각은 도가 사상을 담은 《열자(列子)》의 「양주편」, 《장자》, 《한비자》, 《여씨춘추》 같은 다른 사람들의 책 속 인용으로만 짜맞출 수 있어요.
도가는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라고 가르친 사상이에요.
그것도 완전하지 않아요.
「양주편」은 후대에 누군가 그럴듯하게 쓴 위작이라는 의혹이 짙게 남아있거든요.
'내 몸의 털 한 올도 함부로 내주지 말라'고 가르친 사상가의 흔적이, 정작 다른 사람들의 책 속에 부스러기로만 남아있는 셈이에요.
"개인정보는 절대 흘리지 말라"고 평생 가르친 보안 전문가가, 자기 이름은 남의 책 각주에서만 발견되는 상황이에요.
그나마도 대부분이 그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등장해요.
역사는 늘 승자가 써요.
양주는 한(漢) 이후로 완전히 잊혔고, 그의 이름은 이단의 예시로만 인용됐어요.
하지만 이상한 건, '나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2400년 전엔 짐승의 논리로 불렸는데 지금은 자기계발서 1페이지에 나오는 말이 됐다는 거예요.
양주가 시대를 앞서간 건지, 아니면 세상이 양주를 닮아온 건지.
어느 쪽이든, 그는 자기 책 한 권 없이 그 답을 남겨놓고 떠났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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