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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허행이 왕에게 요구한 건 충성도 세금도 아니었어요.
왕도 직접 밭에 나오라는 것이었어요.
전국시대, 그러니까 중국이 수십 개의 나라로 쪼개져 끊임없이 싸우던 기원전 3~4세기 무렵이에요.
허행(許行)이라는 사상가가 등(滕)나라를 찾아왔어요.
등나라는 지금의 산둥성에 있던 작은 나라였고, 등문공은 그 나라의 왕이었어요.
허행이 등문공에게 한 말은 당시 기준으로 꽤 충격적이었어요.
"현명한 자는 백성과 나란히 농사지어 먹고, 아침저녁 손수 밥을 지으며 다스려야 한다."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 회장이 매일 아침 직원들과 똑같이 출퇴근 카드를 찍고, 점심시간엔 직접 식판을 닦아야 한다는 요구예요.
그 시대의 사상가들은 보통 이런 말을 했어요.
"왕은 하늘의 명을 받은 존재이니 백성은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허행은 왕의 위계 자체를 흔들려고 했어요.
허행이 대표하는 사상 집단은 농가(農家)예요.
농가란 농업을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고, 직접 노동하지 않는 자는 정당성이 없다고 본 학파예요.
유가가 "군주는 도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면, 농가는 "군주도 직접 땅을 파야 한다"고 했어요.
맹자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나 자신이 평생 배운 유학이 가짜였다고 선언했어요.
그 청년의 이름은 진상(陳相)이에요.
진상은 당대 유학자 진량(陳良)의 핵심 제자였어요.
진량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정통으로 따르는 유학파 학자였고, 진상은 그 밑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진상은 동생 진신(陳辛)과 함께 농기구를 짊어지고 등나라로 왔어요.
허행을 만난 뒤였어요.
그는 평생 배운 유학을 전부 버리고 허행의 사람이 됐어요.
명문대 박사과정생이 학위를 포기하고 시골 농부의 제자로 들어간 것과 같아요.
더 놀라운 건, 진상이 직접 맹자를 찾아가서 허행의 사상을 설파했다는 거예요.
"등문공은 참된 군주지만 아직 도(道)를 듣지 못했어요."
도란 '제대로 된 길'이라는 뜻인데, 진상이 말한 도는 허행이 가르친 노동의 길이었어요.
당시 허행은 거친 삼베옷을 입고 손수 만든 짚신을 신고 있었어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유학을 배운 엘리트가 그런 사람에게 무릎 꿇은 거예요.
맹자가 허행을 무너뜨린 무기는 거창한 윤리가 아니라, 그가 쓰고 있던 모자 한 점이었어요.
맹자(孟子)는 공자의 가르침을 이은 유학의 대표 사상가예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에 활동하며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인물이에요.
그가 진상에게 물었어요.
"허행은 자기가 쓰는 모자도 직접 짰는가?"
진상이 답했어요. "아니요, 곡식과 바꾸었어요."
맹자가 다시 물었어요. "솥과 시루도 직접 만들었는가?"
진상이 또 "곡식과 바꾸었어요"라고 답하자, 맹자가 말했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천하의 일은 농사지으며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가?"
이 논쟁은 맹자의 책 「등문공 상」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허행은 "모두가 직접 일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모자도 솥도 남에게 맡겼어요.
'모두가 자급자족하자'고 외친 사람이 카페 라떼는 카페에서 사 마신 셈이에요.
맹자의 논리는 분업(分業)이에요.
분업이란 사람마다 잘하는 일을 나눠 맡고 서로 교환해야 사회가 돌아간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 받는 사람의 역할이 나뉘는 것도 분업의 일부라는 게 맹자의 결론이었어요.
왕도 농사지으라 외친 사람의 흔적이, 정작 그를 짓밟은 사람의 책 속 한 단락에만 남아 있어요.
허행이 직접 남긴 저작은 단 한 줄도 전해지지 않아요.
그의 사상이 어떻게 생겨났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퍼졌는지, 우리는 허행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없어요.
그의 이름이 나오는 곳은 딱 두 군데예요.
하나는 그를 논파한 맹자의 책이에요.
다른 하나는 한나라 때 편찬된 역사서 「한서(漢書)」의 예문지에서 '농가류'로 분류된 단편 기록이에요.
회사를 비판한 직원의 말이, 그를 해고한 임원의 회고록 인용구로만 30년 뒤에 살아남는 상황과 같아요.
그것도 임원의 시각으로 편집된 버전으로요.
농가는 한 무제 때 유학이 국가 공식 이념으로 채택되면서 사실상 사라진 학파예요.
한 무제는 기원전 2세기 한나라의 황제로, 유학을 국가 철학으로 삼고 다른 사상을 밀어낸 인물이에요.
그 이후로 농가의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어요.
결국 우리가 아는 허행은 맹자가 만든 허행이에요.
그가 진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그 주장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어요.
한 가지만은 분명해요.
왕도 직접 밭에 나와야 한다고 외친 사람이 있었고, 그 말은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상하게 귀에 걸려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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