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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란은 1500년 동안 이어진 불교의 윤리 한 줄을 정확히 뒤집어 버렸어요.
그가 남긴 어록집 『탄이초(歎異抄)』에는 이런 말이 실려 있어요.
"선인도 극락에 갈 수 있어. 하물며 악인이야."
이게 왜 충격이냐면, 부처가 살던 시대부터 1500년간 불교의 전제는 정반대였거든요.
계율을 지키고 수행을 쌓은 선한 사람이 먼저 구원받는다는 게 상식이었어요.
선인이 먼저, 악인은 나중.
신란은 그 상식을 뒤집었어요.
"자기 힘으로 선을 쌓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부처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요. 하지만 자신이 악인임을 아는 사람은 오직 부처에게만 매달릴 수밖에 없죠."
이게 악인정기(惡人正機)예요. 악인이 구원의 핵심 대상이라는 뜻이에요.
비유하자면 모범생만 입학시키던 학교가 어느 날 "오늘부터 사고뭉치를 먼저 받겠다"고 선언한 거예요.
그것도 교장이, 본인 이름을 걸고.
1207년, 35살의 신란은 승려도 속인도 아닌 사람이 되어 동해변 시골로 쫓겨났어요.
신란은 9살에 비예이산(比叡山)에 들어간 아이였어요.
비예이산은 당시 일본 불교의 최고 엘리트 수련지예요.
요즘으로 치면 9살에 최고 명문 대학원 예비과정에 특례 입학한 거예요.
그런데 29살 무렵, 그 코스를 박차고 나왔어요.
정토종을 일으킨 승려 호넨(法然)을 찾아간 거예요.
호넨은 "복잡한 수행 다 필요 없어. 그냥 '나무아미타불'만 외쳐"라고 가르치던 사람이었어요.
20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신란이 "나는 그걸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 선택이 화를 불렀어요.
가마쿠라 막부가 호넨의 염불 운동을 탄압하면서 신란도 함께 처벌받았어요.
승려 신분을 박탈당하고 에치고(지금의 니가타현)로 5년간 유배됐어요.
오늘날로 치면 평생 대기업 임원으로 충성한 사람이 자격증까지 박탈당하고 시골로 쫓겨난 거예요.
신란은 이때의 자신을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 불렀어요.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 말이 자기비하가 아니라 자기 선언이었다는 게 이 사람의 반전이에요.
신란은 일본 승려 중 처음으로, 본명을 걸고 비구니와 결혼한 사람이에요.
유배지 에치고에서 신란은 비구니 에신니(惠信尼)를 만났어요.
두 사람은 결혼해 일곱 명의 자녀를 뒀어요.
6세기에 불교가 일본에 들어온 이래 700년간 "승려는 결혼하지 않는다"가 절대 규칙이었는데, 신란은 그 규칙을 정면으로 깼어요.
하지만 신란은 이걸 금기를 어긴 것으로 보지 않았어요.
"자기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보통 인간"임을 몸소 증명한 거라고 했어요.
수행으로 욕망을 끊은 성인이 아니라, 번뇌와 욕망을 가진 그대로의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악인정기의 논리를 자기 삶으로 실연한 거죠.
700년 동안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규정을 임원이 본인 이름을 걸고 공개적으로 깬 사건이에요.
그것도 "내가 틀렸다"가 아니라 "이게 맞다"고 하면서요.
신란이 죽고 약 200년 뒤, 그의 가장 위험한 어록집은 종단의 손에 봉인됐어요.
신란이 세운 정토진종의 8대 종주 렌뇨(蓮如)는 『탄이초』를 읽고 결정을 내렸어요.
"근기(根機)가 없는 자에게 함부로 보여서는 안 된다."
근기란 어떤 사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질을 말해요. 아직 준비 안 된 사람에게는 이 책이 위험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탄이초』는 금고 속으로 들어갔어요.
메이지 시대 후반,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어요.
신란이 세상을 떠난 지 약 400년이 지난 뒤였어요.
아이러니한 건 신란 본인이 평생 이런 말을 했다는 거예요.
"나에게 제자는 단 한 명도 없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부처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던 사람의 가르침을, 그 후계자들이 "아무나 보면 안 된다"며 숨긴 거예요.
창업자가 남긴 가장 중요한 메모를 후임 경영진이 "직원들이 보면 위험하다"며 400년간 금고에 가둔 상황이에요.
신란은 자신의 사상이 이렇게 쓰일 줄 알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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