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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 영국 신비주의자가 인도 해변에서 14살 소년을 보고 메시아라고 선언했어요.
그리고 그 소년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1909년, 인도 남부 아디아르 해변.
신지학회의 지도자 찰스 리드비터가 해변가를 걷다가 한 소년을 봤습니다.
신지학회는 동서양의 신비주의를 연구하고 인류의 영적 진화를 이끈다고 믿는 국제 종교 단체였어요.
리드비터는 그 소년에게서 특별한 '오라'를 봤다고 했습니다.
오라는 사람 주변에 빛처럼 퍼져 있다는 에너지 장인데, 리드비터는 자신이 그것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마이트레야, 다음 세계의 교사가 깃들 그릇이다."
마이트레야는 불교와 신지학에서 말하는 미래의 구원자 같은 존재예요.
쉽게 말하면, 이 소년이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될 거라고 선언한 거예요.
그 소년의 이름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였습니다.
학회장 애니 베전트는 곧바로 그를 데려다 입양했어요.
인도에서 자라던 가난한 소년은 영국으로 건너가 명문가 자제처럼 교육받았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어른이 "너는 사실 위대한 존재다"라며 데려가, 평생 그 역할에 맞게 다듬은 거예요.
그를 위한 교단의 회원은 6만 명, 헌납된 성은 5000에이커였습니다.
한 사람의 강림을 기다리기 위해 세계 규모의 종교 인프라가 세워진 거예요.
1911년, 신지학회는 동방의 별 교단(Order of the Star in the East)을 창설했습니다.
목적은 하나였어요. 크리슈나무르티를 통해 올 메시아의 강림을 준비하는 것.
오늘날로 치면, 신입 한 명을 위해 전 세계 직원 6만 명짜리 회사를 차려놓고 그의 첫마디를 기다리는 상황이에요.
네덜란드 오멘에 있는 에르데 성(Castle Eerde)이 그에게 통째로 헌납됐습니다.
5000에이커, 서울 여의도의 다섯 배가 넘는 땅이에요.
매년 수천 명이 오멘 캠프에 모여 그가 마침내 신의 의식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렸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20대 내내 그 기대 속에서 살았어요.
강연했고, 추앙받았고, 전 세계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서는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단상에 올라 자기 종교를 해산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도들은 그날 그가 드디어 신의 의식을 받아들인다는 기대를 안고 모였는데, 전혀 다른 소리를 들었어요.
1929년 8월 3일, 오멘 캠프.
3천여 명의 신도와 늙은 학회장 애니 베전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크리슈나무르티가 단상에 섰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어요.
"진리는 길 없는 땅입니다.
어떤 종교를 통해서도, 어떤 종파를 통해서도 거기에 도달할 수 없어요.
그 어떤 교사도, 어떤 교단도 여러분을 데려다줄 수 없습니다."
그는 동방의 별 교단을 그 자리에서 해산했어요.
자신에게 헌납된 에르데 성도 돌려보냈습니다.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스스로 부쉈어요.
오늘날로 치면, 상장을 코앞에 둔 회사의 창업자가 무대에 올라 "회사를 오늘 해산합니다, 주식은 휴지입니다"라고 선언한 격이에요.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그다음입니다.
그는 후회하지 않았어요.
교단을 해체한 그는 죽기 직전까지 57년을 더 강연했지만, 단 한 명의 제자도 두지 않았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가장 일관되게 권위를 거부한 사람이 된 거예요.
해체 이후 크리슈나무르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럽, 미국, 인도를 돌며 계속 강연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는 어디서도 제자를 받지 않았고, 새 교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그와 대화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봄은 물질과 의식의 관계를 연구하던 학자였는데,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이 자신의 물리학과 공명한다고 느꼈어요.
달라이 라마도 그를 만났고, 철학자들이 찾아왔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내 가르침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늘 했던 말은 이것이었어요.
"나는 누구도 아닙니다.
나를 권위로 삼지 마세요."
인플루언서가 수백만 팔로워 앞에서 "저를 팔로우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기묘한 일인지 느껴질 거예요.
그는 1986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역설은 이거예요.
메시아 자리를 가장 쉽게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이, 가장 긴 시간 동안 그것을 거부했다는 것.
그리고 그 거부 자체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가 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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