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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03년, 75세의 노학자 박세당은 죽기 직전 '유교의 적'으로 선고받았어요.
노론이 그의 책 사변록(思辨錄)을 문제 삼아 탄핵을 올렸고, 조정은 그에게 사문난적(斯文亂賊) 판결을 내렸어요.
사문난적이란 글자 그대로 "유교 정통을 어지럽힌 죄인"이라는 뜻이에요.
삭탈관직과 유배형이 결정됐지만, 그는 유배를 떠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평생 유교 경전을 읽고, 쓰고, 가르친 학자가 마지막 해에 '유교의 적'이 된 채로 눈을 감은 거예요.
그런데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그 이야기는 그가 관직을 버린 날부터 시작돼요.
양반이 직접 밭을 가는 건, 조선 시대 기준으로 스캔들이었어요.
그런데 박세당은 1668년 무렵 벼슬을 내던지고 수락산 자락 석천동으로 들어가 직접 그 일을 했어요.
지금의 경기도 의정부 근처, 산속 작은 마을이에요.
조선 시대 사대부에게 농사는 '천민이 하는 일'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명문대 교수가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것과 비슷한 시선을 받을 일이에요.
그런데 박세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1676년, 직접 흙을 만지며 익힌 경험을 색경(穡經)이라는 책으로 정리해 냈어요.
색경은 씨 뿌리는 시기, 토양 관리, 작물별 재배법을 담은 농사 매뉴얼로, 조선 농업 실용서 중에서도 상당히 체계적인 책으로 평가받아요.
명문대 종신교수가 학교를 떠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업 실용서까지 펴낸 거예요.
하지만 그의 이탈은 농사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박세당은 조선 유학자들이 공개적으로 건드리기를 꺼리던 책에 정식 주석을 달았어요.
노자와 장자, 도가(道家) 사상의 핵심 텍스트들이에요.
도가는 유교가 강조하는 예(禮)와 위계질서 대신,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삶을 중시하는 사상이에요.
조선의 정통 유학자에게 이 책들은 이단이었어요.
가톨릭 신학자가 불경 해설서를 정식 출판하는 것만큼, 사상적으로 위험한 월경이었어요.
하지만 박세당은 했어요.
노자 도덕경에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을, 장자에는 남화경주해산보(南華經註解刪補)를 남겼어요.
둘 다 개인 메모가 아니라, 체계를 갖춘 정식 주석서였어요.
그는 경계를 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태도는 그의 마지막 책에서 정점을 찍어요.
박세당의 마지막 책 사변록(思辨錄)은 조선 최고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한 책이에요.
주자(朱子)는 12세기 송나라 유학자로, 조선에서는 그의 경전 해석이 사실상 '정답'이었어요.
논어·맹자·대학·중용·시경·서경·역경, 이른바 사서삼경을 주자가 어떻게 풀었는가가 관리 선발 시험인 과거의 답안 기준이 되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박세당이 1680년대부터 쓴 사변록은 그 주자의 해석을 조목조목 반박했어요.
"주자가 여기서 틀렸다"고, 글로 직접 써 놓은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평생 봉직한 회사 창업자의 경영 철학을 책으로 정면 부정하다가 회사에서 영구 추방된 것과 같아요.
조선에서 주자학은 단순히 학문이 아니었어요.
국가 통치의 이론적 근거였어요.
그러니 주자를 부정하는 건 학설 논쟁이 아니라, 체제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읽혔어요.
결국 1703년, 노론은 바로 이 책을 빌미로 탄핵을 올렸어요.
75세의 박세당은 사문난적으로 선고받고, 그해 세상을 떠났어요.
밭을 갈고, 이단의 책에 주석을 달고, 절대 권위에 반박한 노학자.
그가 죽고 3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책들은 아직 남아 있어요.
과연 그는 '유교의 적'이었을까요, 아니면 유교를 가장 진지하게 읽은 학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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