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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로빈도 고시는 1890년, 합격하면 안 되는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하고 마지막 관문에서 일부러 발을 뺐어요.
그 시험은 ICS, 즉 인도행정관 시험이에요.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기 위해 만든 최고위 관료 선발 시험인데, 오늘날로 치면 식민지 출신이 점령국 외교부 핵심 자리 후보로 선발된 것과 같아요.
당시 인도 청년에게 이 자리는 평생의 꿈이었죠.
오로빈도는 케임브리지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시를 쓸 만큼 영어권 엘리트 교육의 정점에 있었어요.
그리고 ICS 필기시험에서 전체 수석을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관문인 승마 실기 시험 날, 그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 자리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도구라는 이유 하나로, 손에 쥔 기회를 스스로 내던진 거예요.
케임브리지까지 나온 식민지 청년이 영국 지배 체제의 정점에 서기를 거부한 거예요.
그리고 그 선택은 그가 이후 걸을 길의 예고편이었어요.
케임브리지에서 고전 시를 쓰던 사람이, 인도로 돌아오자 폭탄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1906년 인도로 건너온 오로빈도는 반영(反英) 신문 반데마타람의 편집장이 됐어요.
반데마타람은 인도 독립의 당위성을 전파하던 신문인데, 오로빈도는 거기서 글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어요.
그는 당시 인도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둥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동생 바린은 캘커타 외곽에서 비밀 폭탄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두 형제는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거예요.
1908년, 알리포어 폭탄 사건이 터졌어요.
영국 판사 살해를 기도한 이 사건으로 형제가 함께 체포됐어요.
케임브리지 출신 지식인이 무장 혁명의 두뇌였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나며 영국령 인도 전체가 충격에 빠졌어요.
알리포어 감옥은 오로빈도의 몸을 가뒀지만, 1년 뒤 풀어준 건 혁명가가 아니었어요.
독방에서 1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 오로빈도는 명상을 시작했어요.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안으로 파고든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혁명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봤어요.
그는 나중에 그 시간을 이렇게 기록했어요.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크리슈나를 봤다."
크리슈나는 힌두교에서 우주적 신성을 상징하는 신인데, 단순히 종교적 체험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 자체가 뒤집힌 순간이었어요.
그 환상 앞에서는 "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너졌어요.
영국인도, 감옥 간수도, 모든 것에서 같은 신성이 보이는데, 그걸 어떻게 적으로 싸울 수 있겠어요.
1909년 무죄로 석방됐을 때, 그는 동지들에게 말했어요.
"내 일은 끝났어."
가장 빛나던 순간, 그는 정상에서 스스로 내려온 거예요.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드디어 영국에서 독립한 날, 오로빈도는 폰디체리의 작은 방 안에 있었어요.
1910년 영국 식민지를 벗어나 프랑스령 폰디체리로 건너간 그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1926년부터는 완전한 칩거에 들어가 1년에 서너 번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 대신 그는 사비트리라는 24,000행짜리 서사시를 수십 년에 걸쳐 고쳐 썼어요.
사비트리는 인도 신화 속 한 여인의 이름이에요.
오로빈도는 이 시에 인간 의식이 어떻게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담으려 했어요.
총이 아니라 의식 자체를 바꾸는 것, 그게 그의 새로운 전쟁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공교롭게도, 인도 독립일인 1947년 8월 15일은 오로빈도의 75세 생일이기도 했어요.
평생을 바친 독립이 현실이 된 날, 그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라디오 메시지만 남겼어요.
그러면 그 40년의 침묵 속에서 그는 도대체 무엇을 찾은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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