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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정도전이 죽은 곳은 자기가 직접 수도로 정한 한양, 자기가 권력에 앉힌 사람의 아들 손에서였어요.
1398년 8월 26일 밤, 이방원이 군사를 이끌고 야간 기습을 감행했어요.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자, 훗날 조선의 세 번째 왕 태종이 되는 인물이에요.
정도전은 동료 남은의 집에 피신 중이었는데, 발각돼 그 자리에서 처형됐어요.
그런데 여기서 멈칫하게 됩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이론가예요.
단순히 이성계 옆에서 혁명을 도운 게 아니라, 새 나라의 헌법 격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직접 썼어요.
조선경국전은 조선이 어떻게 통치될지를 규정한 강령으로, 오늘날의 헌법과 행정 매뉴얼을 합친 문서예요.
수도 한양의 도시 설계도 그가 그렸고, 경복궁 전각의 이름도 그가 붙였어요.
그래서 이 죽음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에요.
회사 시스템 전체를 설계한 창업자가 그 시스템을 가장 잘 학습한 후배 임원에게 해고당한 상황이에요.
자기가 만든 나라의 칼에 베인 거예요.
정도전이 조선의 토지 이론을 떠올린 곳은 도서관이 아니었어요.
유배지의 흙바닥이었어요.
1375년, 정도전은 권신 이인임의 친원(親元) 정책에 반대하다 전라도 회진현으로 유배됐어요.
이인임은 고려 말 조정을 쥐고 흔들던 실력자로, 원나라(몽골 제국)와의 관계를 유지하자는 편이었어요.
정도전은 그 방향에 정면으로 부딪혔고, 결국 관직을 빼앗겼어요.
그런데 유배 이후가 더 길었어요.
풀려난 뒤에도 고향과 변방을 떠돌며 약 9년을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살았거든요.
사대부가 백성을 연구한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살면서 그들이 왜 계속 가난한지를 눈으로 봤어요.
그때 정도전이 꽂힌 문제는 토지였어요.
소수가 대토지를 독점하는 구조, 그것이 백성의 가난을 만들고 있다는 걸 직접 목격했어요.
그 경험이 훗날 정전제(井田制) 구상으로 이어졌어요.
정전제는 고대 중국 고전에서 나온 토지 균분 이상이에요.
토지를 바둑판처럼 구획해서 농민이 공평하게 경작하게 하자는 구상으로, 직장에서 쫓겨나 시골로 떠밀린 사람이 오히려 그곳에서 평생의 작품을 얻은 것과 같아요.
그 9년의 끝, 1383년 함주(지금의 함흥)에서 정도전은 이성계를 처음 만났어요.
이성계는 당시 고려의 군사를 맡고 있던 무장으로, 훗날 조선을 세우는 인물이에요.
정도전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마무리한 원고는 조선의 헌법도, 한양 설계도도 아니었어요.
불교를 학술적으로 해체하는 책이었어요.
1398년, 정도전은 불씨잡변(佛氏雜辨)을 완성했어요.
'부처씨에 대한 여러 변론'이라는 뜻으로, 불교의 핵심 교리 19개를 하나씩 뜯어 논리적으로 반박한 책이에요.
윤회, 인과응보, 자비 같은 개념을 모두 건드렸어요.
반박의 무기는 성리학(性理學)이었어요.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유교 철학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도덕이 설치된 채로 출고된다"는 주장이에요.
정도전은 이 논리를 바탕으로 불교의 윤회와 인과를 차례로 해체했어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정도전은 젊은 시절 승려들과도 교유했고, 유배 시절에도 사찰의 도움을 받았던 인물이에요.
불교와 아예 무관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조선에서 불교의 이론적 뿌리를 끊는 글을 썼어요.
한 회사에 오래 몸담다가, 그 회사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공개 보고서로 써낸 내부 출신 컨설턴트 같은 상황이에요.
결국 불씨잡변은 그냥 저술로 끝나지 않았어요.
이 책은 조선 500년간 불교를 억압하는 이론적 근거가 됐어요.
이후 조선은 유교를 높이고 불교를 누르는 방향으로 굳어졌어요.
정도전이 그린 조선의 설계도에서, 왕은 결재 도장에 가까웠어요.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經濟文鑑)에서 정도전은 같은 주장을 반복했어요.
경제문감은 정치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담은 국정 운영 매뉴얼 같은 저작이에요.
두 책 모두에서 그의 핵심 주장은 하나였어요.
국정의 실권은 재상이 쥐어야 한다고요.
재상은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와 행정부 수장을 합친 자리예요.
왕은 그 재상이 올리는 안건에 결재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걸 보면 이방원이 왜 정도전을 살려둘 수 없었는지가 이해돼요.
왕이 되려는 사람한테 "왕이 되면 별로 할 게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셈이었으니까요.
정도전의 구상은 이런 거였어요.
조선은 한 명의 영웅이 힘으로 유지하는 나라가 아니라, 제도와 법이 작동하는 나라여야 한다고요.
왕이 현명하면 나라가 잘 되고, 어리석으면 망하는 구조를 탈피하려 했어요.
하지만 이방원은 즉위 뒤 왕권 강화를 조선의 방향으로 밀어붙였어요.
결국 정도전이 설계한 재상 중심 체제는 현실이 되지 못했어요.
정도전은 자기가 지은 경복궁의 전각들이 보이는 도시에서 죽었어요.
그가 꿈꾼 나라는 세워졌는데, 그가 꿈꾼 방식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어요.
6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여전히 정도전을 읽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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