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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고조를 공자와 같이 존경한다는 말은, 1180년대 송나라 학자 사회에서는 사실상 추방 선고에 가까웠어요.
당시 유학자들이 공유한 상식이 있었어요.
삼대(三代), 그러니까 하·은·주 왕조 시절에만 진짜 성인 군주가 있었고, 그 이후의 황제는 전부 사욕으로 권력을 잡은 패자(覇者), 힘으로 천하를 차지한 자일 뿐이라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노벨문학상 수상자만 진짜 작가로 인정받는 학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도 똑같이 위대하다"고 외치는 평론가와 같은 위치예요.
그런데 진량(陳亮)이 딱 그 말을 한 거예요.
농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한 고조 유방, 형제를 죽이고 즉위한 정복 군주 당 태종 이세민을 요·순·우 같은 고대 성왕과 같은 반열에 올렸어요.
그의 논리는 단순하고 강렬했어요. "결과로 천하를 안정시켰다면, 그것이 곧 성인의 도예요."
이 한 문장이 당시 학문 세계 전체를 향한 도전장이었어요.
그리고 주희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주희가 답장을 보낼 때마다 진량은 더 거센 반박으로 되돌려 보냈어요.
1183년부터 두 사람은 일곱 통이 넘는 긴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이 논쟁을 왕패의리논변(王霸義利論辯)이라고 불러요.
왕도(王道)냐 패도(覇道)냐, 의(義)냐 이(利)냐를 두고 맞붙은 논쟁인데, 쉽게 말하면 "도덕과 결과 중 무엇이 진짜 기준이냐"를 8년간 싸운 거예요.
주희(朱熹)는 남송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예요.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도덕 법칙"이라고 보는 철학인데, 스마트폰 공장 출고 설정처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도덕이 내장돼 있다"는 입장이에요.
주희는 딱 잘라 말했어요. "도덕은 결과와 무관한 절대 기준이에요. 한·당의 황제는 모두 사욕으로 천하를 차지했을 뿐이에요."
진량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천 년간 사람을 살린 통치라면, 그 자체가 도덕의 실현이잖아요."
주희가 "천 년간 가짜 도가 통했을 뿐"이라고 쐐기를 박자, 진량은 이렇게 받아쳤어요. "그렇다면 도는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는 말장난 아닌가요?"
오늘날로 치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게 지방의 강사가 8년간 공개 반박 메일을 보내는 상황이에요.
그것도 매번 더 날카롭게.
결과가 곧 도덕이라고 외친 철학자의 인생 결과는, 세 번의 투옥이었어요.
진량은 일생 동안 세 차례 감옥에 끌려갔어요.
첫 번째는 동향 사람이 잔치 뒤 사망하자 독살 누명을 썼어요.
두 번째는 황제를 비방했다는 혐의였고, 세 번째는 정치적 연루였어요.
매번 그를 구한 건 친구들이었어요.
특히 신기질(辛棄疾), 남송의 애국 시인으로 강한 정치적 영향력도 지녔던 인물이 여러 차례 변호에 나섰어요.
하지만 진량은 옥 안에서도 글을 썼어요.
결과가 증명되지 않아도, 손이 남아 있는 한 써야 한다는 듯이요.
"결과가 도덕"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정작 자기 결과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반복해서 놓인 거예요.
청렴을 외친 검사가 도리어 누명으로 매번 구속되는 꼴이랄까요.
진량이 평생 외친 "결과가 도덕"이라는 명제를, 그는 단 한 번도 관직에서 직접 증명하지 못했어요.
1193년, 51세의 진량은 마침내 진사시에 응시했어요.
진사시는 오늘날의 국가고시와 비슷한데, 합격자 수백 명 중 오직 1명만 받는 장원(1등)을 차지했어요.
송 광종이 직접 그의 답안을 1등으로 점지했다고 전해져요.
그런데 그는 부임하지 못했어요.
1194년 봄, 임지로 향하는 길에서 병으로 사망했어요.
평생 도전했던 자격시험에 51세에 1등으로 합격했는데, 발령 직전 세상을 떠난 거예요.
그의 사상, 사공학(事功學)은 추상적인 도덕 원리보다 실제로 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이에요.
하지만 주자학이 정통으로 굳어진 뒤 약 700년간 잊혔고, 근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발굴됐어요.
8년간 주희에게 편지를 보내며 맞섰고, 세 번 감옥에 갔다 나왔고, 51세에 1등으로 합격해서 죽었어요.
도덕이 결과로 증명된다고 했는데, 그의 결과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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