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도 최고의 영적 시인은 한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무슬림 직조공이었어요.
1440년경 힌두교 최대 성지 바라나시에 카비르가 태어났어요.
그런데 그 집안은 이슬람을 믿는 직조공 가정이었어요.
줄라하, 즉 베를 짜는 직조공은 당시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최하층에 속했어요.
한국으로 치면 안동 종갓집 마을 한복판에서, 무슬림 천민 가정에 태어난 셈이에요.
게다가 카비르는 평생 글자를 배우지 않았어요.
그의 시는 단 한 편도 그의 손으로 적힌 적 없고, 전부 입으로 말하고 제자들이 받아 적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 구술 시들이 인도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영적 문학이 됐어요.
종교 권위가 산스크리트 경전과 글자에서 나오던 시대에, 글 못 읽는 직조공의 말이 경전급 권위를 얻은 거예요.
사서삼경을 읽어야 성인 대접을 받던 시대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이 공자보다 많이 인용되는 격이에요.
한 무슬림 청년이 힌두 성자가 자기를 밟도록 일부러 어두운 새벽 길에 누웠어요.
당시 인도 최고의 힌두 박티 스승은 라마난다였어요.
박티 운동이란 카스트나 출신에 상관없이 신을 직접 사랑하고 헌신하면 구원받는다는 15세기 인도의 영적 혁신 운동이에요.
그런데 라마난다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었어요. 무슬림은 제자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카비르는 그 원칙을 정면으로 뚫기로 했어요.
새벽이 밝기 전, 라마난다가 매일 걷는 갠지스 강가 돌계단에 납작 엎드려 누웠어요.
어둠 속에서 걷던 라마난다가 그를 밟고 화들짝 놀라 외친 한 마디가 있었어요.
"람! 람!" 힌두 신 라마의 이름을 부른 감탄사였어요.
카비르는 그 한 마디를 평생의 입문 만트라로 선언해버렸어요.
만트라는 힌두 수행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전수하는 신성한 주문인데, 그 전수가 곧 정식 입문의 증거였어요.
"당신이 직접 나에게 '람'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입문 자격이 출신과 카스트로 결정되던 시대에, 그는 우연히 튀어나온 외마디를 평생의 정통성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오늘로 치면, 명문대가 입학을 거절하자 학장의 새벽 산책길에 누워 학장이 놀라 내뱉은 욕설 한 마디를 입학 허가서라고 우기는 청년이에요.
그런데 그 청년이 진짜 그 학교 최고의 학자가 된 거예요.
그가 같은 시 안에서 비판한 대상은 한 종교가 아니라, 두 종교 전부였어요.
카비르의 시는 도하라는 형식으로 남아 있어요.
도하는 단 두 줄짜리 압축 시예요. 긴 논증 없이 핵심만 찌르는, 트위터가 생기기 500년 전의 트위터 같은 형식이에요.
"돌을 섬겨 신을 만난다면, 나는 차라리 산을 섬기겠다."
이 한 줄은 힌두 사원의 돌 신상 숭배를 직접 겨냥한 거예요.
그런데 같은 시집에는 이슬람을 향한 구절도 있어요.
"메카가 동쪽에 있다고 신이 거기에만 있는 건 아니야."
한 종교만 건드려도 처형당할 수 있던 시대에, 그는 두 권력 종교를 같은 시 안에서 정면으로 비판했어요.
그 결과 무슬림에게는 배교자로, 힌두 상류층에게는 천민 도발자로 동시에 표적이 됐어요.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어요.
오늘날 SNS에서 보수 기독교와 보수 이슬람을 동시에 풍자해 양쪽 모두에게 살해 위협을 받는 인플루언서를 떠올려 보면 돼요.
카비르는 그것을 인쇄기도 없던 15세기 인도에서, 시 두 줄로 해냈어요.
그리고 그의 시는 구전으로 퍼져 두 종교 신도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어요.
그를 평생 이단이라 욕하던 두 종교가, 그의 시신 앞에서 서로 자기네 사람이라 외쳤어요.
1518년 무렵, 카비르는 일부러 마가르라는 마을에서 죽음을 맞았어요.
마가르는 힌두 전통에서 "여기서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미신이 붙은 변방 마을이었어요.
반대로 힌두 성지 바라나시에서 죽으면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는 통념이 있었어요.
카비르는 그 통념을 마지막 한 방으로 깨버린 거예요.
성지에서 죽지 않음으로써요.
그가 숨을 거두자 두 종교의 신도들이 시신 앞에 모였어요.
힌두 신도들은 화장을 주장했어요. 무슬림 신도들은 매장을 고집했어요.
충돌이 벌어졌고, 결국 누군가가 수의를 들추었어요.
전설에 따르면, 시신은 사라지고 꽃만 가득 남아 있었어요.
힌두 신도들은 꽃을 화장터에서 태웠고, 무슬림 신도들은 꽃을 땅에 묻었어요.
그렇게 카비르는 마지막까지 어느 쪽에도 잡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살아서 두 종교를 모두 부정했던 카비르의 시는, 결국 시크교 성서에 500편 넘게 정식 수록됐어요.
구루 그란트 사히브는 힌두교도 이슬람도 아닌 제3의 길을 찾던 사람들이 세운 종교의 경전인데, 그 안에 카비르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실린 거예요.
글 한 줄 쓴 적 없는 무슬림 직조공의 말이, 그를 소유하려 했던 두 종교가 아닌 전혀 다른 세 번째 곳에서 경전이 됐어요.
그가 베를 짜면서 중얼거렸던 시 두 줄이 지금도 수억 명이 읽는 성서에 살아 있다는 건, 어쩌면 그 자신의 가장 강력한 도하일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