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시라즈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외아들이 어느 날 산속으로 사라졌어요.
SKY를 나와 대기업 임원직이 보장된 사람이, 동료들의 한마디에 강원도 깊은 산골로 7년간 종적을 감춘 격이에요.
1571년, 페르시아 남부의 화려한 도시 시라즈에서 물라 사드라가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지방 총독이었고, 집안은 그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어요.
돈도, 배경도, 미래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어요.
사드라는 그 배경 덕에 당시 최고의 스승을 만났어요.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대표 신학자이자 철학자, 미르 다마드 밑에서 공부한 거예요.
미르 다마드는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철학의 제왕'으로 불리던 사람이에요.
문제는 사드라가 너무 많이 공부한 데서 시작됐어요.
그는 이슬람 신학, 수피 신비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하나로 묶은 자기만의 이론을 세우기 시작했어요.
수피 신비주의란 신과 하나가 되는 내면의 길을 추구하는 이슬람 전통인데, 정통 성직자들 눈엔 위험한 사상이었어요.
정통 시아파 성직자들은 이걸 이단으로 몰았어요.
결국 1600년경 사드라는 콤 근처 외딴 산골 마을 카학(Kahak)으로 들어갔어요.
콤은 시아파의 성지이자 이란에서 가장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집결한 도시예요.
그 도시 근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산골에, 시라즈 최고 명문가의 외아들이 홀로 숨어들었어요.
정통파 성직자들이 그를 묻으려 했던 그 산골이, 결국 그의 책상이 됐어요.
회사에서 잘린 사람이 시골에 처박혀 7년 만에 베스트셀러 9권 시리즈를 들고 돌아온 격이에요.
카학에서 사드라가 한 일은 단식과 명상, 그리고 글쓰기였어요.
그 기간이 짧게는 7년, 길게는 11년이었는데 정확히 얼마인지는 지금도 논란이에요.
그 산골에서 구상한 책이 바로 『알아스파르 알아르바아(Al-Asfar al-Arba'a)』예요.
우리말로 옮기면 '사대 여정(四大旅程)', 영혼이 신에게 다가가는 네 단계의 지적 여행을 담은 책이에요.
총 9권 분량의 대저서예요.
나중에 시라즈로 돌아온 사드라는 칸 마드라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 책을 완성했어요.
칸 마드라사는 이슬람 세계에서 학문을 가르치는 고등 교육 기관이에요.
그렇게 완성된 『알아스파르』는 17세기 이슬람 철학사에서 가장 방대한 단일 저작으로 지금도 평가받아요.
그를 묻히게 하려던 추방이 결국 그의 가장 위대한 작업실을 만들어준 거예요.
사르트르가 가장 유명한 한 줄을 외친 1943년, 그 문장은 이미 300살이었어요.
누군가 작년에 발표한 줄 알았던 노래 가사가 알고 보니 300년 된 시였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예요.
1943년,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파리에서 이렇게 선언했어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간단히 설명하면, 사람은 먼저 태어나고 나중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사드라는 17세기에 이미 같은 형식의 명제를 정리해뒀어요.
'아살라트 알우주드(Asalat al-Wujud)', 즉 '존재의 본원성'이에요.
"존재(우주드)는 본질(마히야)에 앞선다"는 주장으로, 사르트르의 문장과 구조가 놀랍도록 닮아있어요.
두 사람의 맥락은 달라요.
사드라는 신학적 틀 안에서 신과 인간의 연결을 논했고, 사르트르는 신을 빼고 인간의 자유를 논했어요.
하지만 "먼저 있고, 나중에 정의된다"는 핵심 구조는 300년의 시간을 넘어 겹쳐요.
20세기 파리 카페에서 처음 등장한 줄 알았던 그 문장이, 17세기 페르시아 산골에 이미 쓰여 있었어요.
그는 자기 책상이 아니라 사막의 모래 위에서 죽었어요.
9권짜리 대저서를 쓴 사람의 마지막이 펜이 아니라 두 다리였다는 게, 어쩐지 이 인물의 전부를 요약하는 것 같아요.
사드라는 평생 메카(이슬람의 최대 성지)로의 도보 순례, 하지(Hajj)를 일곱 차례 떠났어요.
하지는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가야 한다고 여기는 순례예요.
사드라는 그걸 일곱 번이나 걸어서 다녀왔어요.
1640년, 일곱 번째 순례 도중 이라크 바스라에서 그가 사망했어요.
바스라는 메카로 향하는 길목의 항구 도시예요.
시신은 현지에 묻혔고, 아들과 사위가 그의 철학과 학파를 이어받았어요.
같은 코스를 평생 일곱 번 완주한 사람이 마지막 코스 한가운데서 멈춰 선 셈이에요.
그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고 썼어요.
존재가 먼저라면, 걷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거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