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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책을 사본 적이 없다.
낙양의 책방 거리에 매일 서서 읽고, 한 번 본 페이지는 통째로 머릿속에 넣었다.
왕충(王充)은 지금의 저장성 사오싱 지역, 회계 출신 빈농의 아들이었다.
한나라의 국립대학인 태학(太學)에 입학했지만 교재를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낙양의 서시(書肆), 오늘날로 치면 책방들이 늘어선 거리에 매일 나가 서서 읽었다.
오늘날에도 서점에서 비닐 포장 안 뜯긴 책을 슬쩍 읽다 눈치 보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왕충에게는 그게 유일한 독서법이었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한 번 읽으면 암송했다.
그렇게 책을 외워가며 공부한 청년이, 훗날 혼자서 85편짜리 책을 써낸다.
그 책의 이름이 논형(論衡)이다.
무게를 단다는 뜻이다. 세상에 떠도는 모든 주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실제로 무게를 달아보겠다는 선언이었다.

서기 1세기, 중국 조정 전체가 가뭄의 원인을 황제의 도덕에서 찾고 있을 때, 한 지방 관리만 날씨라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의 공식 이념은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이었다.
하늘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론으로, 가뭄·홍수·일식이 모두 황제의 덕이 부족해서 생기는 징벌로 해석됐다.
쉽게 말해, 나라에 재난이 생기면 황제가 "제가 부덕했습니다"라고 하늘에 사죄하는 구조였다.
왕충은 논형에서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천둥은 하늘의 노여움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다. 재해는 우연이다."
지금 들으면 당연한 말 같지만, 이 시대에 이 말은 체제 비판이었다.
황제의 권위가 '하늘의 뜻'이라는 개념 위에 서 있는데, 그 개념이 가짜라고 쓴 것이다.
회사 전체가 믿는 전략을 신입 혼자 "그건 근거가 없습니다"라고 써서 문서로 남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왕충은 처형당하지 않았다.
이유가 좀 씁쓸하다. 아무도 그의 책을 안 읽었기 때문이다.

귀신은 왜 벌거벗고 나타나지 않는가. 2천 년 전 왕충의 이 질문에 아직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논형의 '논사편(論死篇)'에서 왕충은 당시 유행하던 귀신 목격담을 하나씩 해체했다.
그의 반론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남는다고들 하는데, 사람들이 본 귀신은 왜 옷을 입고 있는가? 옷에도 영혼이 있다는 말인가?"
이 한 마디가 논증의 핵심이다.
귀신의 존재를 직접 부정하는 대신, 귀신 이야기 안에 있는 모순을 찾아낸 것이다.
주장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 주장이 스스로 무너지도록 질문을 던진 거다.
오늘날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항상 흰 옷을 입고 나오는 걸 보며 속으로 '귀신이 쇼핑을 하나?' 하고 생각해본 적 있다면, 왕충이 2천 년 먼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썼다.
현대 철학에서는 이런 방식을 회의주의적 논증이라 부른다.
상대방의 전제 안에 들어가서 모순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왕충은 그 이름을 몰랐지만, 구조는 정확히 같았다.

왕충이 죽었을 때,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 그 책은 중국 합리주의의 기원으로 불린다.
말년의 왕충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회계로 돌아갔다.
논형은 그의 생전에 거의 유통되지 않았고, 주류 학계는 무시했다.
가난 속에 죽은 그가 책의 평가를 알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백 년이 흐른 뒤, 역사가 범엽(范曄)이 후한서(後漢書)에 왕충의 전기를 실었다.
후한서는 후한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정사(正史), 즉 국가 공인 역사서다.
청나라 시대에는 고증학자들이 논형을 다시 꺼내 읽었고, 20세기 중국에서는 '중국 과학정신의 원조'로 재평가됐다.
SNS에 올린 글이 아무도 안 읽혔는데, 10년 후 누군가 그걸 인용하며 "이 사람이 처음 말했다"고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왕충은 그 '10년'이 천 년이었을 뿐이다.
살아서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의 책이, 그가 평생 비판한 미신과 권위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책을 살 돈도 없었던 사람이 남긴 책이.
그래서 가끔 생각하게 된다. 지금 아무도 안 읽는 글 중에, 천 년 뒤에 발견될 것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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