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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세 소년이 술탄의 목숨을 구했어요.
그가 사례금 대신 받아낸 것은 도서관 열쇠 한 벌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현재 우즈베키스탄 땅인 부하라에서 이븐 시나가 태어났어요.
부하라는 당시 이슬람 세계의 학문 중심지로, 철학자와 의사를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던 도시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었어요.
10세에 코란 전문을 외웠어요.
16세에는 동네 의사들이 고치지 못한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어요.
16세면 오늘날 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17세 때,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어요.
사만 왕조의 술탄 누흐 이븐 만수르가 중병에 걸렸는데, 왕궁에 불러모은 의사들이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어요.
사만 왕조는 당시 페르시아 문화권을 지배하던 이슬람 왕국이에요.
그 자리에 이 소년이 불려 들어갔어요.
이븐 시나는 술탄을 치료했고, 완쾌시켰어요.
술탄이 물었어요.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소년의 대답은 금도 아니고 벼슬도 아니었어요.
"왕실 도서관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게 해주세요."
어른 의사들이 손을 든 병을 고쳐놓고, 받아낸 것이 도서관 출입증이었어요.

18세에 그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선언했어요.
그가 다 읽은 도서관은 곧 잿더미가 됐어요.
왕실 도서관은 단순한 장서가 아니었어요.
당시 이슬람 세계 최대 규모로, 그리스 철학부터 천문학, 의학, 수학까지 온 세계의 지식이 모여 있던 곳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인터넷 전체에 접속 권한을 얻은 셈이었어요.
이븐 시나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어요.
"도서관을 다 읽었을 무렵 이후로, 나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지 못했다."
이 문장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의 이후 행적을 보면 꼭 허풍만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 무렵, 도서관에 불이 났어요.
천 년을 버텨온 필사본들이 한꺼번에 타버렸어요.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의심이 돌기 시작했어요.
"혹시 이븐 시나가 자기만 알고 싶어서 불을 지른 게 아닐까?"
물론 증명할 방법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 의심이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가 얼마나 이례적인 존재로 여겨졌는지를 말해줘요.

유럽 의대생이 600년 동안 펼친 교과서는, 도망자가 말 위에서 쓴 책이었어요.
1004년, 사만 왕조가 무너졌어요.
이 순간부터 이븐 시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든든한 후원자가 사라진 그는 평생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됐어요.
여러 왕국을 전전하다 지금의 이란 서부에 있는 도시 함마단에 자리를 잡았어요.
거기서 그는 재상 자리까지 올랐어요.
재상은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에 해당해요.
하지만 정치는 학문과 달랐어요.
정치 갈등에 휘말려 투옥됐고, 감옥을 나와도 또 다른 망명지를 찾아 말을 달려야 했어요.
그 이동하는 시간 동안, 이븐 시나는 글을 썼어요.
안장에 앉아 필사하고, 여관 구석에서 써 내려갔어요.
그렇게 나온 책이 두 권이에요.
하나는 '치유의 서(Kitab al-Shifa)'예요.
철학, 논리학, 자연과학을 한데 묶은 백과사전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개인이 완성한 가장 방대한 지식 체계로 꼽혀요.
다른 하나가 '의학정전(Al-Qanun fi al-Tibb)'이에요.
병의 분류, 약재, 수술 방법, 위생 원칙을 체계화한 의학 교과서로, 이후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의과대학에서 600년 동안 표준 교재로 쓰였어요.
오늘날 하버드 의대 커리큘럼이 600년 동안 그대로라고 상상해보면, 그 무게가 느껴져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사는 자기 병에 무너졌어요.
그의 책은 그를 살리지 못했어요.
1037년, 이븐 시나는 산통으로 쓰러졌어요.
산통이란 극심한 복통을 동반하는 소화기 질환이에요.
정확한 약의 용량이 생사를 가르는 병이에요.
이븐 시나는 자기 처방을 직접 조제할 체력이 없었어요.
그래서 노예에게 약을 만들게 했어요.
그런데 그 노예가 처방 속 셀러리 씨의 양을 다섯 배로 잘못 맞췄어요.
약이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켰어요.
그렇게 이븐 시나는 세상을 떠났어요.
향년 57세였어요.
600년 동안 유럽 의사들이 베낀 그 책의 저자가, 자기 책의 처방을 제대로 받지 못해 죽었어요.
세계 최고의 셰프가 자기 레시피로 만든 요리에 식중독으로 쓰러진 것과 같았어요.
그의 책은 이후로도 수백 년을 더 살아남아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어요.
그가 스스로를 구하는 것만 빼고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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