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열여섯 살 소년 벤카타라만은 그날 오후 갑자기 죽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다.
열이 나지도 않았고, 어딘가 다친 것도 없었다.
그냥 알았다.
지금, 이 방에서, 죽는다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순간 병원을 찾거나 가족을 부른다.
소년은 바닥에 누웠다.
두 팔을 몸 옆에 붙이고, 두 다리를 뻣뻣하게 펴고, 숨을 멈췄다.
그리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몸이 굳는다.
체온이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몸은 죽어가는데,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겁에 질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거기 있었다.
소년은 한참 뒤 일어났다.
그리고 학교에도, 가족에게도, 이전처럼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확인해버린 사람에게, 그 이후의 일들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벤카타라만은 형의 숙제를 베끼다 멈췄다.
메모지에 한 줄을 적었다.
"나는 아루나찰라를 찾아 떠난다. 이런 짓이 무슨 소용인가."
삼촌의 서랍에서 여비를 빌렸다.
세 루피.
기차표를 끊고 남은 돈은 티루반나말라이 역에 도착하자마자 버렸다.
무게를 줄이는 것처럼, 혹은 돌아올 이유를 없애는 것처럼.
아루나찰라는 남인도의 붉은 화강암 산이다.
타밀 지방 사람들은 이 산 자체를 신으로 여긴다.
소년은 그 산 아래 큰 사원으로 들어갔고, 사원 지하의 감실 — 돌로 둘러싸인 좁고 어두운 방 — 에 앉았다.
며칠이 흘렀다.
벌레가 다리를 물었다.
파고들었다.
피가 났다.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한 수행자가 그를 발견하고 끌어올렸다.
햇빛 아래로 데려왔을 때, 소년의 다리에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얼굴은 멀쩡했다.
오히려 평온했다.
그 이후로도 그는 오랫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넘어갔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관심사는 그 산이었다.
1898년, 알라감말은 아들을 데리러 왔다.
마두라이에서 티루반나말라이까지, 그 먼 길을 왔다.
비루팍샤 동굴 앞에 서서 울었다.
며칠을 울었다.
"집에 가자. 어미가 있잖니. 돌아오면 된다."
아들은 침묵했다.
주변 제자들이 난처했다.
어머니가 저렇게 우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
그들이 라마나에게 종이와 붓을 건넸다.
말하기 싫으면 써달라고.
그는 썼다.
"조물주가 각 영혼의 운명을 정했으며, 어떤 인간의 의지로도 바꿀 수 없다."
어머니는 그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갔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평범한 비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년 뒤, 알라감말은 스스로 산으로 돌아왔다.
아들을 데리러가 아니라, 아들 곁에 머물기 위해.
그리고 거기서 여생을 마쳤다.
아들을 설득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결국 아들 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1931년, 영국 저널리스트 폴 브런턴이 아쉬람에 도착했다.
그는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신비주의자들을 인터뷰하는 중이었다.
뱀을 부리는 사람도 만났고, 불 위를 걷는 사람도 봤다.
그런 감각적 볼거리를 찾던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곳이 여기였다.
라마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
브런턴이 질문을 꺼냈다.
"해방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습니까?"
라마나가 답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십시오."
브런턴이 다시 물었다.
라마나가 되받았다.
"지금 그 질문을 하고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브런턴은 이 만남을 책으로 썼다.
《비밀 인도의 탐색》.
이 책이 유럽에서 출간되자 서구권에서 라마나를 처음으로 접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후 아쉬람에는 낯선 방문객들이 늘어났다.
심리학자 칼 융이 왔다.
소설 《인간의 굴레》를 쓴 작가 서머싯 몸이 왔다.
라마나가 바뀐 것은 없었다.
여전히 산을 떠나지 않았고, 가르침을 쓰는 것보다 침묵을 더 자주 택했다.
단지 이 자리가 이제 좁아진 것이다.
그가 던진 질문 — "나는 누구인가" — 은 답을 주는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하는 행위 자체를 거꾸로 돌려 질문하는 자에게 향하게 하는, 일종의 거울이었다.
1949년, 왼팔에 육종이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혹이었다.
의사들이 절제했다.
다시 자랐다.
다시 잘랐다.
또 자랐다.
마드라스의 큰 병원으로 옮기면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라마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 몸에 무슨 일이 생기든, 아루나찰라를 떠날 이유가 없다."
네 차례 수술이 아쉬람 안에서 이루어졌다.
팔의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제자들은 그가 고통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통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고통 안에 있지 않다고도 했다.
1950년 4월 14일 저녁.
제자들이 창문 너머로 아루나찰라 위를 바라보았을 때, 하늘을 가로지르는 밝은 별똥별을 보았다.
남쪽 방향으로 느리고 선명하게.
방 안에서는 그 순간 숨이 멈췄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런 뜻이었다.
"나를 어디서 찾겠느냐. 나는 여기 있다."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해본 열여섯 살 소년은, 일흔의 나이에 그 연기를 실제로 마쳤다.
그리고 끝내 산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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