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이 전날 밤 궁을 빠져나간다면, 주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샨티데바는 남인도 사우라슈트라의 왕자였다.
즉위를 하루 앞둔 밤, 그는 꿈을 꾸었다.
티베트 전승에 따르면 문수보살이 현몽하여 그 자리를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꿈에서 깬 샨티데바가 한 선택은 간단했다.
왕좌에 앉지 않는 것.
그는 그날 조용히 왕궁을 떠났고, 결국 당시 세계 최대의 불교 교육기관이었던 나란다 대학에 이르렀다.
나란다는 수천 명의 학승이 모여 경전을 외우고, 논쟁하고, 주석을 쓰는 곳이었다.
지식을 갈고닦는 열기 속에서 샨티데바는 방 안으로 사라졌다.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토론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밥은 먹었고, 잠은 잤다.
동료 승려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부슈쿠(Bhusuku)'였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세 가지만 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나란다에서 이 별명이 얼마나 낮잡아 부르는 말이었는지는, 그 별명을 붙인 사람들이 나중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쫓아내기로 했다.
나란다에는 법문을 공개적으로 하다 실패하면 사원에서 추방되는 관례가 있었다.
승려들은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부슈쿠를 강단에 세우면, 아무 말도 못하거나 헛소리만 늘어놓을 것이고, 그러면 쫓아낼 명분이 생긴다.
계획은 치밀했다.
법좌를 평소보다 훨씬 높게 설치했다.
올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게 만든 것이다.
아마도 그 자리에 오르는 순간부터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샨티데바는 올라갔다.
그것도 별 어려움 없이.
법좌에 앉은 그는 수백 명의 학승을 내려다보았다.
조용히 물었다.
이미 알려진 가르침을 듣겠느냐, 아니면 아직 들어본 적 없는 것을 듣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을 것이다.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러 온 사람들이, 선택지를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테니까.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나온 것은 『입보살행론』,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차리아바타라(Bodhicaryāvatāra)였다.
보살이 되는 길을 논한 이 텍스트는 총 열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날 강단에서 구술로 흘러나온 말들이, 훗날 천삼백 년 동안 사람들이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경전이 된다.
그중에서도 후대에 가장 많이 인용된 것은 제6장, 인욕품(忍辱品)이다.
제목은 '참음에 대하여'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내용은 그보다 날카롭다.
분노를 다룬다.
보통 분노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상을 따진다.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 저 상황이 문제다.
하지만 샨티데바는 방향을 틀었다.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분노의 조건을 보라고 했다.
나를 해친 사람도 어떤 조건 아래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조건을 보면, 그 사람에게 분노하는 것은 바람에 화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람이 창문을 깨뜨렸을 때 우리는 바람에 원한을 품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에게는 다르게 반응하는가.
이 논증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인과와 조건을 꿰뚫어 보는 방식으로 분노를 해체한다.
철학적이면서도, 읽다 보면 가슴 어딘가를 건드린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학승들도 그랬을 것이다.
비웃으러 왔다가 조용해지는 것은 인간이 어디서든 반복하는 패턴이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제9장에서 왔다.
반야품, 지혜의 완성을 논하는 장이다.
티베트 역사가 부톤 린첸둡의 기록에 이런 내용이 남아 있다.
샨티데바가 제9장 34번째 게송에 이르렀을 때였다.
"실재하는 것도 실재하지 않는 것도 마음 앞에 머물지 않을 때."
그 순간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천히, 그리고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텍스트의 끝까지, 목소리만 법당을 채웠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상징적 기술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기록이 남겨진 이유는 있다.
어쨌든 그 이후가 문제였다.
학승들은 텍스트를 복원해야 했다.
기억에 의존해서.
그러다 보니 카슈미르에서 복원된 판본과 중인도에서 복원된 판본 사이에 장 수의 차이가 생겼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들었는데, 어디서 기억이 갈렸을까.
아마 사람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지점이 각자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게송 이후를 더 선명하게 기억했고, 어떤 사람은 그 이전을.
기억은 언제나 충격의 크기에 따라 재편된다.
결국 한 사람의 구술이,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살아남았다.
텍스트가 전승된다는 것은 이런 과정이다.
완벽한 복사가 아니라, 각자의 이해가 겹겹이 쌓이는 것.
14대 달라이 라마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텍스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수십 차례 받아왔다.
그때마다 꼽는 책이 있다.
『입보살행론』이다.
그는 이 텍스트를 수십 차례 공개 강해했다.
거대한 강당에, 수만 명의 청중 앞에서.
8세기 이후 이 텍스트는 티베트어로 번역되었고, 이어 중국어와 몽골어로 옮겨졌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이 나왔고, 서구의 윤리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이 텍스트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분노의 조건을 분석하는 샨티데바의 논증은, 현대 인지 심리학이 반추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1300년의 거리가 있지만, 언어가 달라도 같은 지점을 건드린다.
나란다의 학승들은 그를 쫓아내려 강단에 세웠다.
아무것도 못 하는 기생충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퇴출시키려 했다.
그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방 안에서 먹고 자기만 하던 사람이 혼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쫓아내려고 만든 그 자리가, 결국 그 말들이 세상에 나오는 통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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