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지식이 사라지는 방식은 불길이 번지는 방식과 다르다.
불길은 소란스럽게 사라지지만, 지식은 조용히 희석된다.
스승에서 제자로, 제자에서 그 제자로 넘어가는 사이 한 단어가 바뀌고, 한 문장이 빠지고, 한 세대가 지나면 원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상키야 학파가 처했던 위기가 정확히 그것이었다.
창시자 카필라가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문자가 아니라 말이었다.
그 말이 수백 년을 떠돌며 스승의 입에서 제자의 귀로 전해졌다.
인도 아대륙이 굽타 왕조의 그늘에서 서서히 벗어나던 4~5세기 무렵, 그 구전의 사슬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이슈바라크리슈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는 카리카, 즉 아리아 운율의 시 형식을 골랐다.
산문은 필사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운율을 가진 시는 음절 수가 틀리는 즉시 이상함이 귀에 잡힌다.
운율 자체가 오류를 걸러내는 교정 장치가 된다.
그렇게 탄생한 72편의 시가 『상키야 카리카』다.
그 72행 안에 이슈바라크리슈나는 두 가지 근본 실재를 압정처럼 박아 넣었다.
하나는 푸루샤(Puruṣa), 순수의식.
다른 하나는 프라크리티(Prakṛti), 물질의 원질.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성질이 완전히 달라서 섞이지 않는다.
섞이지 않는데도 접촉이 일어나고, 그 접촉이 우주 전체를 펼쳐 놓는다.
수백 년의 구전이 72행의 시로 못 박히는 순간이었다.
냉장고를 분해해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복잡해 보이는 기계도 부품 목록으로 펼쳐놓으면 의외로 단순한 층위를 가진다.
압축기가 있고, 냉매가 있고, 열교환기가 있다.
각 부품은 이전 부품에 의존하며 순서대로 연결된다.
이슈바라크리슈나가 우주에 한 일이 그것이다.
그는 세계 전체를 타트바(tattva), 즉 '그것임'이라는 뜻의 존재 원리로 분해했다.
총 25개.
시작은 프라크리티다.
프라크리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질로, 세 가지 실(구나, guṇa) — 밝음(사트바), 활동(라자스), 무거움(타마스) — 이 팽팽하게 균형 잡힌 상태다.
균형이 깨지는 순간 첫 번째 전개가 일어난다.
프라크리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마하트(Mahat), 우주 지성이다.
마하트는 자아의식인 아함카라(Ahaṃkāra)를 낳는다.
아함카라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이 열한 개의 감관과 다섯 개의 미세 원소, 그리고 다섯 개의 거친 원소다.
이것을 인과의 사슬로 표현하면 이렇다.
프라크리티 → 마하트 → 아함카라 → (마음·5지각기관·5행위기관) + (5탄마트라) → 5대원소
여기에 푸루샤를 더하면 25가 된다.
푸루샤는 이 사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프라크리티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프라크리티를 낳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전 과정을 지켜보는 증인이다.
이 도표의 영리함은 배열에 있다.
인과 순서대로 늘어세웠기 때문에,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감각은 물질인가 의식인가" 같은 질문에 상키야는 즉각 도표의 어느 칸을 가리키면 됐다.
후대 베단타와 요가 문헌이 이 도표를 반복 인용한 이유가 그것이다.
논쟁의 공용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당연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신은 어디 있는가.
이슈바라크리슈나의 답은 인도 철학사에서 가장 대담한 선언 중 하나다.
이슈바라(Īśvara), 즉 창조신의 존재는 증명할 수 없다.
해탈을 설명하는 데 신의 개입은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위험한 주장이었다.
당시 인도 사상계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정통파(아스티카)와, 부정하는 나스티카 — 불교와 자이나가 여기에 속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자칫 불교와 같은 편으로 분류될 수 있는 도박이었다.
이슈바라크리슈나의 해법은 절묘했다.
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신, 신이 없어도 해탈이 설명된다는 논리적 구조를 세웠다.
구조는 이렇다.
푸루샤는 원래 자유롭다.
그런데 프라크리티와 접촉하면서 스스로를 물질과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진다.
"나는 몸이다", "나는 마음이다"라는 착각.
속박은 쇠사슬이 아니라 오해에서 온다.
해방은 단순하다.
프라크리티가 전개되는 모든 과정을 그저 '목격'하면 된다.
관객이 영화 속 폭발에 실제로 다치지 않듯, 푸루샤가 자신이 순수한 관찰자임을 알아챌 때 속박은 녹는다.
신의 손길이 필요한 구간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슈바라크리슈나는 베다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전통의 외벽은 그대로 두고 내부 구조만 다시 설계한 것이다.
이 전략 덕분에 상키야는 인도 정통 6파 안에 자리를 유지했다.
신 없는 해탈론이, 신을 모시는 전통 안에 살아남은 역설이었다.
4~5세기 인도에서 완성된 텍스트가 어떻게 동아시아 철학의 논쟁 지도에 등장하게 됐는지는, 한 인물의 여정으로 설명된다.
진제(眞諦), 산스크리트 이름으로는 파라마르타(Paramārtha).
6세기 중엽 그는 중국 남조로 건너와 수십 년간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
그가 『상키야 카리카』에 손을 댄 결과물이 『금칠십론(金七十論)』이다.
'황금의 70송'이라는 뜻이다.
(원본은 72행이지만 주석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70이라는 숫자가 제목에 붙었다.)
번역은 단순한 언어 치환이 아니었다.
산스크리트와 한자는 문법 구조 자체가 다르다.
산스크리트는 어미 변화로 관계를 표현하고, 한자는 어순과 문맥으로 의미를 쌓는다.
푸루샤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
프라크리티는 어떤 한자로 표현할 수 있는가.
진제는 이 개념들을 불교 번역 어휘와 때로 겹치게, 때로 구분해가며 중국어로 옮겼다.
이 번역본이 가진 역사적 가치는 나중에야 드러났다.
산스크리트 원본 일부가 산일되면서, 학자들이 원문을 복원하려 할 때 『금칠십론』이 결정적인 대조 자료가 됐다.
번역이 원본의 증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효과가 있었다.
중국의 불교 유식학파는 이 번역을 통해 상키야의 논리를 직접 읽게 됐다.
유식학이 "세계는 마음의 구성물"이라고 주장할 때, 상키야의 "세계는 프라크리티의 전개"와 어디서 갈리고 어디서 닮았는지를 비교하며 자신의 논리를 정교하게 벼렸다.
비판하려면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진제의 번역은 그 앎을 가능하게 한 통로였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물이 꼭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모든 건물이 그 위에 올라서는 기초가 중요하다.
이슈바라크리슈나의 72행은 그런 기초가 됐다.
파탄잘리는 기원이 불분명하지만, 『요가 수트라』를 남긴 사람이다.
그가 요가 철학을 세울 때 25타트바 체계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프라크리티에서 마하트가 나오고, 아함카라가 따라오고, 감관과 원소들이 펼쳐지는 그 설계도를 채택했다.
단 한 가지만 추가했다.
이슈바라, 신.
파탄잘리는 상키야가 비워둔 자리에 신을 채워 넣었다.
수행자가 헌신할 대상, 요가의 목적지.
25타트바 위에 신이라는 26번째 원리가 얹히면서 요가는 유신론적 체계가 됐다.
빌려 쓰되 변형한 것이다.
반대 방향에서 온 사람이 8세기의 샹카라다.
그는 『브라흐마 수트라』에 주석을 달면서 상키야를 조목조목 해체했다.
핵심 공격 지점은 프라크리티 인과론이었다.
상키야는 결과가 이미 원인 안에 잠재해 있다는 이론(사트카리야바다, Satkāryavāda)을 취한다.
요구르트는 이미 우유 안에 있었다.
우유가 변해서 요구르트가 된 것이지, 없던 것이 생긴 것이 아니다.
이 논리로 프라크리티에서 마하트가, 마하트에서 아함카라가 나오는 전개를 설명했다.
샹카라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아드바이타 베단타에서 최종 실재는 오직 하나, 브라흐만(Brahman)이다.
푸루샤도 프라크리티도 궁극적으로는 브라흐만의 현현이다.
이원론은 근본적으로 틀렸다.
반박이 정교할수록 반박 대상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샹카라가 상키야를 길게 논박했다는 사실은, 상키야가 당시 인도 철학계에서 얼마나 강력한 흐름이었는지를 역으로 증명한다.
무시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면 그렇게 공들여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파탄잘리는 상키야의 뼈대를 빌려 요가를 세웠다.
샹카라는 상키야의 이원론을 논박하며 베단타를 세웠다.
찬성으로도 반대로도, 이슈바라크리슈나의 72행은 이후 인도 철학사의 모든 주요 사상이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좌표가 됐다.
5세기의 어느 날, 한 사람이 사라져가는 구전을 붙잡기 위해 72편의 시를 썼다.
그 시는 언어를 넘어 중국으로 건너갔고,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모두의 손을 거쳐 1500년을 살아남았다.
철학의 수명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과 씨름하느냐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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