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어느 도서관이 있다고 치자.
책장마다 저마다 다른 지도를 꽂아 두었는데, 어떤 지도는 서울이 동쪽에 있다 하고, 어떤 지도는 서쪽에 있다 한다.
어떤 지도는 서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서는 이 지도들을 전부 '공식 지도'라고 분류해 놓았다.
기원전 수 세기, 인도의 지적 세계가 정확히 그런 상황이었다.
우파니샤드는 힌두 사상의 핵심 텍스트 묶음이다.
수십 편, 어떤 계산으로는 수백 편에 이르는 이 문헌들은 브라흐만 — 우주의 궁극적 실재 — 에 대해 제각기 다른 선언을 내놓고 있었다.
어떤 우파니샤드는 브라흐만이 형태를 가진다고 했고, 어떤 것은 형태가 없다고 했다.
어떤 문헌은 세계가 브라흐만 그 자체라고 했고, 또 다른 문헌은 브라흐만이 세계를 초월해 있다고 했다.
이 텍스트들 사이에는 조화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조화를 강요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여기서 바다라야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이 모순투성이 문헌들을 버리거나 어느 하나를 정본으로 선택하는 대신,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 텍스트들이 전부 옳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편집 작업이 아니었다.
모순처럼 보이는 발언들이 사실은 하나의 논증 체계 안에서 정합적으로 배치될 수 있음을 보여야 했다.
그 결과물이 브라흐마 수트라다.
수트라(sūtra)는 산스크리트어로 '실'을 뜻한다.
구슬을 꿰는 실.
뜻인즉슨, 수트라는 복잡한 사상들을 연결하는 최소한의 언어적 끈이다.
브라흐마 수트라의 경구들은 실제로 그 이름에 충실하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경구는 이렇다: 'athāto brahma jijñāsā' — '이제 그러므로 브라흐만에 대한 탐구.'
세 단어다.
이 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십 페이지의 주석이 필요하다.
전체 텍스트는 4장 16편 555개의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안에 우파니샤드의 우주론, 해탈론, 수행론이 전부 배치되어 있다.
어느 우파니샤드가 어느 맥락에서 한 발언인지, 그것이 브라흐만의 어떤 측면을 가리키는지, 다른 발언과 어떻게 조화되는지 — 이 모든 것이 경구의 위치와 순서를 통해 구조화되어 있다.
비유하자면, 바다라야나는 수백 편의 악보를 연구한 뒤 그 전체를 관통하는 교향곡의 뼈대를 스케치했다.
그런데 그 스케치는 음표 없이 마디 선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으려면 원래 악보와 뼈대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주석가가 없으면 텍스트는 벙어리가 된다.
바다라야나는 이 점을 알면서도 이렇게 썼다.
이 압축은 단순한 기억술이 아니었다.
당시 지식은 구술로 전승되었고, 경구는 외워서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그 압축의 밀도는, 후대 주석가들에게 엄청난 권력을 부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빈틈이 많은 텍스트는 해석자의 상상력이 더 많이 개입할 여지를 준다.
이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폭발을 일으켰는지는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
브라흐마 수트라 제2장은 분위기가 달라진다.
1장이 우파니샤드 내부의 정합성을 구축하는 작업이었다면, 2장은 바깥을 향해 문을 열고 논쟁을 건다.
상키야 학파는 우주를 두 원리로 설명했다.
의식의 원리인 푸루샤와, 물질의 원리인 프라크리티.
상키야에 따르면 세계는 의식이 없는 프라크리티의 자기 전개로 탄생한다.
브라흐만 같은 의식적 창조주는 필요 없다.
바다라야나는 여기서 날카로운 질문을 꽂는다.
의식이 없는 것이 어떻게 목적 지향적 전개를 할 수 있는가?
프라크리티는 맹목적 물질인데, 그것이 어떻게 질서 있는 우주를 만드는가?
의식 없이는 설계도 없고, 설계 없이는 구조도 없다는 것이다.
바이셰시카 학파의 원자론도 거명된다.
세계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
바다라야나의 반박은 다시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
원자들이 결합하는 규칙은 어디서 오는가?
결합의 질서를 주관하는 의식적 원리 없이 원자들이 우연히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불교의 찰나멸론 — 모든 것은 순간마다 소멸하고 생성된다는 이론 — 과 공(空) 사상도 논박 대상에 오른다.
자이나교의 다원론도 마찬가지다.
이 목록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다라야나는 적들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불렀다.
이것은 당시 인도 철학의 관행에서 꽤 도전적인 태도였다.
상대의 주장을 명명하고, 그 논리적 결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방식.
신비체험이나 권위에 기대는 대신, 논증으로 상대를 꺾으려는 시도.
이 구조 덕분에 베단타는 단순한 신비주의적 선언의 묶음이 아니라, 당대의 다른 철학 체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논증적 전통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제 텍스트가 이상한 일을 시작한다.
같은 555개의 경구를 읽은 세 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셋 모두 자신이 바다라야나의 '원래 의도'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다.
8세기, 샹카라가 먼저 등장한다.
그는 브라흐마 수트라 주석에서 이렇게 읽었다.
브라흐만만이 실재이고, 세계는 환영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성, 나와 너의 구분, 개별 영혼과 신의 구분 — 이 모든 것은 마야, 즉 우주적 착각이다.
물 위에 비친 달이 달이 아니듯, 우리가 보는 다양한 세계는 유일한 실재인 브라흐만의 반영일 뿐이다.
이것이 아드바이타, '불이(不二)일원론'이다.
둘이 없다. 오직 하나만 있다.
11세기, 라마누자가 같은 텍스트를 편다.
그는 샹카라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만약 세계가 환영이라면, 해탈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도 환영이다.
브라흐만과 합일하려는 노력도 환영이다.
이건 자기 모순이다.
라마누자의 읽기에서 개별 영혼과 세계는 브라흐만의 실재하는 속성이다.
몸과 영혼의 관계처럼, 세계는 브라흐만의 '몸'이다.
실재하되, 독립적이지 않다.
이것이 비시슈타드바이타, '한정된 불이론'이다.
13세기, 마드바가 또 같은 책을 집어든다.
마드바는 두 사람 모두 틀렸다고 했다.
브라흐만(신)과 개별 영혼은 영원히 다르다.
세계도 실재한다.
해탈이란 합일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의존과 헌신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드바이타, '이원론'이다.
세 사람은 모두 같은 권위를 인용하면서 서로 다른 우주를 세웠다.
어느 쪽이 바다라야나의 진짜 의도인지는 지금도 논란 중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앞서 말했던 그 극도의 압축, 맥락 없이는 해독이 불가능한 경구들이 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바다라야나의 침묵 — 길고 많은 침묵 — 이 세 명의 거인에게 각자의 세계를 세울 공간을 제공했다.
바다라야나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정 범위가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수백 년에 걸쳐 있다.
전통적으로 그는 마하바라타를 편찬한 뱌사 — 크리슈나 드바이파야나 — 와 동일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
어쩌면 브라흐마 수트라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손을 거친 텍스트일 수도 있다.
이 불확실성은 이상하게도 텍스트의 권위를 약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저자가 희미해질수록 텍스트는 더 커졌다.
베단타 전통에는 세 가지 핵심 정경이 있다.
우파니샤드들,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브라흐마 수트라.
이 셋을 합쳐 프라스타나트라야, '세 출발점'이라 부른다.
우파니샤드가 계시(슈루티)의 권위를, 바가바드 기타가 전통(스므리티)의 권위를 대표한다면, 브라흐마 수트라는 논리(니야야)의 권위를 담당한다.
이 셋 중 하나라도 주석하지 않으면 독립적인 베단타 학파를 세웠다고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샹카라도, 라마누자도, 마드바도 모두 같은 문을 통과해야 했다.
각자 우파니샤드 주석을 썼고, 기타 주석을 썼고, 브라흐마 수트라 주석을 썼다.
출발점은 항상 그 555개의 경구였다.
저자는 사라졌다.
이름은 남아 있지만, 얼굴도, 생몰연대도, 확실한 의도도 없다.
그러나 텍스트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세 단어짜리 경구들이, 2천 년 넘게 이어진 해석의 전쟁 한복판에서, 여전히 출발점으로 서 있다.
수백 편의 모순된 목소리를 하나의 논증 체계 안에 담으려 했던 한 사람의 시도가, 그 압축의 밀도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모순들을 낳았다는 것.
그리고 그 모순들이 인도 철학의 가장 풍요로운 논쟁들을 만들어냈다는 것.
이것이 브라흐마 수트라가 가진 역설적인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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