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과일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7세기 무렵 인도의 어느 밤, 왕이거나 왕의 곁에서 학문을 논하던 한 남자가 자신의 황금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접시 위에는 과일이 하나 놓여 있었다.
분명 아까 아내에게 건넸던 바로 그 과일이었다.
중국의 승려 의정(義淨)은 7세기 말 인도를 직접 여행하고 돌아와 『남해기귀내법전』을 남겼다.
그 책 속에 이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왕이 아내에게 과일을 주었다.
아내는 그것을 애인에게 건넸다.
애인은 창녀에게 주었다.
창녀는 그것을 다시 왕에게 바쳤다.
그 순간 왕이 느꼈을 감정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배신감, 수치심, 그리고 어쩌면 삶 전체가 흔들리는 감각.
단순한 불륜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믿었던 관계의 언어—애정, 신뢰, 선물—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순환하고 있었다는 발견이었다.
그날 밤 그는 궁을 나왔다.
숲으로 들어가 승복을 입었다.
그의 이름은 바르트리하리(Bhartṛhari)였다.
의정은 그가 출가와 환속을 일곱 차례 반복했다고 기록했다.
일곱 번.
승복을 입고, 벗고, 다시 입고, 다시 벗고.
이것이 후대의 과장인지 역사적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집 『샤타카트라야(Śatakatrayam)』의 구조 자체가 그 진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300수의 시가 세 권으로 나뉜다.
사랑을 노래한 슈링가라 샤타카, 처세의 지혜를 담은 니티 샤타카, 그리고 욕망을 끊는 이욕(離欲)의 바이라기아 샤타카.
사랑의 시에서 그는 여인의 눈썹 곡선을 보름달에 빗댄다.
이욕의 시에서 그는 똑같은 욕망을 독사에 비유한다.
같은 남자가 썼다.
같은 대상을 두고.
하나는 경이로움으로, 하나는 두려움으로.
욕망이 사라졌다가 돌아오고, 초탈이 완성됐다가 다시 무너지는 이 진동.
그것이 철학자 바르트리하리가 평생 씨름한 문제의 개인적 형태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씨름이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으로 터져 나왔다.
우리는 언어로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언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사과"라는 단어를 먼저 배우고, "빨간"을 배우고, "먹다"를 배운 뒤 그것을 조립해서 "빨간 사과를 먹는다"는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맥락 안에서, 상황 전체 속에서, 어느 순간 단숨에 의미를 파악한다.
분석이 아니라 직관이다.
바르트리하리는 이것이 언어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그의 주저 『바키아파디야(Vākyapadīya)』는 "문장에 관한 논고"라는 뜻이다.
7세기 무렵 완성된 이 책에서 그는 파니니(Pāṇini) 이래 수백 년간 인도 문법학이 전제해온 것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파니니의 전통에서 언어는 벽돌집처럼 쌓인다.
음소들이 모여 형태소가 되고, 형태소가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들이 조립되어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이 의미를 가진다.
가장 작은 단위부터 시작해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바르트리하리는 이 순서가 거꾸로라고 했다.
의미의 최소 단위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 전체라는 것이다.
그가 이 개념에 붙인 이름이 스포타(sphoṭa)였다.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sphuṭ-', 즉 '터져 나온다'는 뜻이다.
문장을 들을 때, 우리는 음소 하나하나를 분석해서 의미를 조립하는 것이 아니다.
a, p, p, l, e 다섯 개의 소리가 순서대로 도착해 우리 안에서 조립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사과'라는 의미 전체가 단숨에 터져 나온다.
벽돌이 아니라 빛이다.
파도가 해안에 닿는 순간처럼,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전체로서 의미가 도달한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학적 주장이 아니었다.
그가 한 걸음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언어는 실재를 반영하는 도구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실재의 형태라고 그는 보았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는 이미 언어 안에 있다.
언어 이전의 순수한 생각이란 없다.
20세기 서양 철학이 '언어적 전회'를 선언하기 약 1,400년 전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정말 위험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반박하려 달려든다.
디그나가(Dignāga)는 5~6세기 무렵 인도 불교 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는 스포타 이론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디그나가의 반론은 날카롭다.
'아포하(apoha)' 이론이라고 불리는 그의 대안에 따르면, 의미는 긍정이 아니라 배제를 통해 성립한다.
"소"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는 것은 '소가 무엇인지' 직접 가리키기 때문이 아니라, '소가 아닌 모든 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의미는 경계선으로 만들어진다.
터져 나오는 전체 같은 것은 없다.
미맘사 학파의 쿠마릴라 바타(Kumārila Bhaṭṭa)와 그의 제자 만다나미슈라 역시 각자의 논서에서 스포타를 논파 대상으로 삼았다.
방향은 조금씩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다.
바르트리하리의 이론을 무너뜨리는 것.
이 집중 공격의 명단 자체가 하나의 증거다.
당대 인도 지성계의 가장 예리한 칼날들이 한 사람의 주장을 향해 겨누어졌다는 것은, 그 주장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무언가였다는 뜻이다.
회피할 수 없는 분기점.
바르트리하리 이후 인도 철학의 언어 논쟁은 그의 문제 설정 위에서 이루어졌다.
찬성이든 반대든, 스포타라는 개념을 거치지 않고 언어를 논할 수 없었다.
체스판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어떤 말인지 알려면, 상대방이 어디를 공격하는지 보면 된다.
1916년,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강의록이 사후 출판되었다.
언어는 실재를 반영하는 투명한 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닫힌 체계라는 주장이었다.
기호는 사물을 가리키지 않는다.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서양 지성계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불렀다.
바르트리하리는 그보다 약 1,400년 전에 같은 방향에서 같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샤브다브라흐만(śabda-brahman)' 개념은 더 나아간다.
샤브다(śabda)는 언어, 브라흐만(brahman)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다.
그 둘이 하나라는 것이 바르트리하리의 주장이었다.
언어가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실재의 본질적 형태라는 것.
20세기에 비트겐슈타인이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썼을 때, 그것은 새로운 발견처럼 읽혔다.
바르트리하리의 관점에서 보면 오래된 진실의 재발견이었다.
1971년, 캐나다의 학자 해럴드 코워드(Harold Coward)가 바르트리하리를 서양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그 이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과의 비교 연구가 이어졌다.
학자들은 두 사람의 사유가 놀랍도록 평행하게 달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오늘도 서양 언어철학 교과서에서 바르트리하리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소쉬르는 있다.
촘스키는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있다.
바르트리하리는 없다.
이것이 단순한 학문적 공백인지, 아니면 어떤 더 큰 이야기의 단면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궁을 나온 남자가 숲속에서 씨름했던 질문—언어는 무엇이고, 의미는 어디서 오는가—은 지금도 여전히 열려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날카로운 대답을 내놓은 사람은, 과일 하나를 내려다보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로 결심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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