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순례자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낟알이 남는다.
신발에서 떨어진 것들, 보따리 틈새로 빠져나온 것들, 바람에 날려온 것들.
사원 입구의 돌바닥 위에 흩어진 그 낟알들을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손으로 긁어모았다.
사람들은 그를 카나다(Kanāda)라고 불렀다.
'kana'는 알갱이, 'ada'는 먹는 자.
이름 자체가 그의 삶이었다.
기원전 6세기에서 2세기 사이, 인도 북서부 어딘가에 살았던 이 철학자는 순례자들이 버린 곡식 낟알을 주워 끼니를 해결했다.
전승은 그 모습을 조금도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냥 배가 고팠고, 낟알이 있었고, 그것을 주웠다.
그런데 그 낟알을 줍다가 그는 이상한 생각에 빠졌다.
이것을 반으로 쪼개면 더 작아진다.
그 반을 또 쪼개면 더 작아진다.
그렇다면 영원히 쪼갤 수 있을까?
아니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가 있을까?
먹다 남긴 밥풀 하나에서 시작된 이 질문이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긴 여정 중 하나를 열었다.
당시 인도에는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넘쳐났다.
신이 만들었다거나, 환영이라거나, 업(業)의 결과라거나.
각각의 이야기는 풍요롭고 아름다웠지만, 하나같이 이야기였다.
카나다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가 남긴 《바이셰시카 수트라(Vaiśeṣika Sūtra)》는 짧은 경구들의 집합이다.
화려한 신화도, 감동적인 서사도 없다.
대신 이런 질문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
그의 답은 여섯 범주였다.
실체(dravya)는 땅·물·불·공기·에테르·시간·공간·자아·마음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성질(guṇa)은 빨갛다, 무겁다, 뜨겁다처럼 실체에 딸려 있는 속성이다.
운동(karma)은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실체가 하는 행위다.
보편(sāmānya)은 "소"라는 개념처럼 여러 개체를 묶는 공통된 무언가다.
특수(viśeṣa)는 그 반대로, 이 소와 저 소를 개별적으로 구분해주는 차이다.
마지막으로 내속(samavāya)은 성질이 실체 속에 "깃들어" 있는 관계 자체다.
지금 읽으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기원전 수백 년의 텍스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신의 의지나 운명이 아닌 범주적 논리로 세계를 해부하려 한 시도.
세상이 왜 있는지가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묻는 태도.
그 전환이 이미 이 수트라에 들어 있었다.
이제 그 질문으로 돌아가자.
낟알을 쪼개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가.
카나다의 대답은 단호했다.
끝이 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마지막 단위가 존재한다.
그는 그것을 파라마누(paramāṇu)라고 불렀다.
'parama'는 궁극의, 'aṇu'는 작은 것.
궁극의 작은 것.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파라마누는 하나의 종류가 아니다.
흙에는 흙의 파라마누가, 물에는 물의 파라마누가, 불에는 불의 파라마누가, 공기에는 공기의 파라마누가 있다.
각각은 고유한 성질을 가지며, 영원하고, 파괴할 수 없고,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카나다는 이 부분에서 구체적인 조합론을 제시했다.
두 개의 파라마누가 결합하면 드비야누카(dvyaṇuka)가 된다.
세 개의 드비야누카가 모이면 트리야누카(tryaṇuka)가 된다.
바로 이 트리야누카 단계부터 비로소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질이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해보면 이렇다.
원자 두 개가 결합하면 이원자 분자, 세 개의 이원자 분자가 결합하면 감지 가능한 물질.
물론 현대 화학의 구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기본 단위가 결합해 보이는 세계를 만든다는 논리의 뼈대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가 이 결론에 도달한 방법은 실험이 아니었다.
관찰과 논리였다.
낟알을 쪼개고, 쪼개면 어떻게 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유의 힘.
도구 없이, 실험실 없이, 오직 생각의 일관성으로 도달한 곳이었다.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원전 460~370년 무렵, 그리스 아브데라의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만물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을 아토모스(atomos), 즉 '쪼갤 수 없는 것'이라고 불렀다.
서양 과학사는 이것을 원자론의 기원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카나다의 파라마누 이론은 데모크리토스보다 최소 한 세기 앞서 존재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다.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의 언어로 같은 질문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데모크리토스는 알아도 카나다는 잘 모르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텍스트가 전달되는 경로가 달랐다.
《바이셰시카 수트라》는 산스크리트 구전 전통 안에서 살아남았다.
제자가 스승에게서 외우고, 그 제자가 다시 제자에게 전하는 방식이었다.
그 텍스트가 유럽 학자들의 손에 닿아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그 전까지 서양 과학사의 계보는 그리스에서 시작해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흐르는 하나의 선이었다.
인도의 강은 그 지도에 없었다.
역사는 종종 누가 먼저냐보다 누구의 이야기가 먼저 번역됐느냐에 따라 기억된다.
그것은 지성의 위계가 아니라 정보의 우연이었다.
카나다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이론은 살아남았다.
6세기 무렵, 철학자 프라샤스타파다(Praśastapāda)는 《파다르타다르마상그라하(Padārthadharmasaṃgraha)》를 썼다.
카나다의 원자론을 단순히 요약한 것이 아니라 훨씬 정교하게 다듬었다.
파라마누가 어떤 조건에서 결합하는지, 그 결합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해체되는지까지 논했다.
10세기에는 우다야나(Udayana)가 등장했다.
그는 바이셰시카의 논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했다.
원자들이 스스로 결합한다면 그 결합을 이끄는 초월적 원리가 있어야 한다는 논증이었다.
원자론이 신 존재 증명의 근거로 쓰이는 순간이었다.
카나다가 낟알을 줍다 떠올린 질문이 논리학·형이상학·신학을 거쳐 흐르는 동안 그리스에서는 원자론이 에피쿠로스에게 전해졌고, 로마에서는 루크레티우스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썼으며, 중세를 지나 근대 화학이 원자를 다시 발견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강이 같은 바다를 향해 흘렀다.
현대 인도에서 카나다의 이름은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인도 과학기술부는 그의 이름을 과학사 기념 프로그램에 포함시켰고, 그를 원자 과학의 선구자로 재평가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카나다 자신이 아마 이 모든 것에 개의치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그는 인정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순례자들의 낟알을 줍는 사람에게 명예는 아마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낟알을 쪼갤 때 끝이 있는가 없는가, 그 하나의 질문이었다.
세계 최초의 원자론자는 먹을 것을 찾다가 우주의 구조를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는 배가 고팠고, 손가락 사이의 낟알 하나를 보았고,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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