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켜면, 화면 위에 파란 점이 뜬다. 내 위치다. 이 점은 머리 위 2만 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는 GPS 위성이 보내준 신호로 찍힌다.
그런데 이 위성은 어떻게 떠 있을까? 그냥 하늘에 가만히 붙어 있는 게 아니다. 지구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타원을 그리며 돈다.
타원. 원이 아니라 타원. 이 한 단어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행성은 타원으로 돈다"는 사실을 인류가 깨닫기까지 2천 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처음 증명한 사람은 눈이 몹시 나빴다.
그의 이름은 요하네스 케플러. 1571년,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이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
케플러의 어린 시절은 영화로 만들면 꽤 슬픈 장면이 많을 것이다.
아버지는 용병이었다. 돈을 벌겠다고 전쟁터에 갔다가, 어느 날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약초를 다루는 여자였는데, 나중에 마녀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한다. 케플러 자신은 네 살 때 천연두에 걸렸다. 목숨은 건졌지만, 시력이 크게 나빠졌다. 손도 굽었다.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에게 시력은 생명이다. 그런데 케플러는 별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망원경을 들여다봐도 흐릿했다.
그렇다면 케플러는 왜 천문학에 빠졌을까? 어린 시절 딱 두 번의 경험이 그를 사로잡았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꼬마 케플러를 언덕 위로 데려갔다. 하늘에 긴 꼬리를 단 혜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홉 살 때는 월식을 봤다. 달이 붉게 물드는 걸 본 소년은 밤하늘에 홀렸다.
눈이 나쁘니까 직접 관측하는 건 포기했다. 대신 케플러는 수학에 매달렸다. 다른 사람이 본 별의 위치를 숫자로 받아서, 그 숫자 속에 숨은 패턴을 찾는 것. 이게 케플러의 방식이었다.
대학에서는 원래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수학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졸업할 때쯤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한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 자리를 제안받았다. 월급은 쥐꼬리만 했다. 학생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가난한 선생님에게는 하나의 확신이 있었다. "하늘의 움직임에는 수학적 질서가 있다." 그는 수업 틈틈이 행성의 궤도를 계산했다. 밤이면 종이 위에 원을 그리고, 숫자를 대입하고, 지우고, 다시 그렸다.
그에게 필요한 건 딱 하나였다. 정확한 관측 데이터. 하늘을 직접 볼 수 없는 케플러에게, 누군가가 관측한 정밀한 숫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숫자를 가진 남자가 유럽에 딱 한 명 있었다.
티코 브라헤. 이 사람은 케플러와 정반대였다.
덴마크 귀족 출신에, 왕에게 섬 하나를 통째로 받아 천문대를 지은 남자다. 코가 결투에서 잘려 금속 코를 붙이고 다녔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성격은 불같고, 파티를 좋아하고, 사슴을 애완동물로 키웠다.
그런데 이 괴짜 귀족에게는 한 가지 엄청난 보물이 있었다. 20년 넘게 맨눈으로(당시에는 망원경이 없었다!) 관측한 행성 위치 데이터. 역사상 가장 정밀한 관측 기록이었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티코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재료를 가진 요리사였다. 하지만 레시피를 만들 수학 실력은 부족했다. 케플러는 최고의 레시피를 만들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재료가 없었다.
1600년, 둘이 만났다. 프라하에서였다. 그런데 이 만남은 로맨틱하지 않았다. 티코는 자기 데이터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보여줬다. 케플러는 속이 타들어 갔다.
티코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자기만의 우주 모델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데이터를 통째로 넘기면 케플러가 다른 결론을 내릴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운명은 급하게 돌아간다. 만남 이듬해인 1601년, 티코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연회에서 과음한 뒤 열흘 만에 사망했다.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케플러는 티코의 조수에서 후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보물 상자가 열렸다. 20년치 관측 데이터가 케플러의 손에 들어왔다.
자,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하늘이 완벽하다고 믿었다. 완벽한 하늘에서 행성은 당연히 완벽한 원을 그리며 돌아야 했다. 플라톤이 그렇게 말했고,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렇게 계산했고, 심지어 케플러가 존경한 코페르니쿠스도 원 궤도를 고수했다.
케플러도 처음에는 원으로 계산했다. 화성의 궤도를 원이라고 가정하고, 티코의 데이터에 맞춰봤다. 거의 맞았다. 거의.
문제는 8분이었다. 여기서 '분'은 시간이 아니라 각도의 단위다. 1도의 60분의 1. 고개를 까딱하는 것보다 훨씬 작은 각도다. 원 궤도로 계산하면, 티코의 관측값과 딱 8분만큼 어긋났다.
8분.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에이, 이 정도면 됐지"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이전 시대의 관측 데이터는 이보다 훨씬 부정확했으니까. 하지만 케플러는 달랐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 8분의 오차를 무시할 수 없다. 티코의 관측이 그만큼 정확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한 문장이 천문학의 역사를 바꿨다. 케플러는 2천 년 된 '완벽한 원' 가설을 버렸다. 그리고 다른 도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달걀을 생각해 보자. 달걀을 옆에서 보면 위아래가 다르지만, 타원은 위아래가 대칭인 달걀 같은 모양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운동장 트랙처럼 길쭉한 원이다. 원에는 중심이 하나인데, 타원에는 초점이 두 개 있다.
케플러는 화성이 타원을 그리며 태양 주위를 돈다는 걸 알아냈다. 그것도 태양은 타원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두 초점 중 하나에 놓여 있었다. 이것이 케플러 제1법칙이다.
쉽게 말해서? 행성은 원이 아니라 찌그러진 원으로 돈다. 태양은 그 찌그러진 원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케플러는 두 번째 패턴도 찾았다.
행성이 태양에 가까울 때는 빨리 달리고, 멀어지면 느려진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내리막에서 빨라지고 오르막에서 느려지는 것처럼. 더 정확하게는, 행성과 태양을 잇는 선이 같은 시간 동안 쓸고 지나가는 면적이 항상 같다. 이것이 케플러 제2법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이다.
그리고 10년 뒤, 케플러는 세 번째 법칙도 발견한다. 태양에서 먼 행성일수록 공전 주기가 길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케플러는 그 관계를 정확한 수식으로 표현했다. 공전 주기의 제곱은 궤도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케플러 제3법칙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운동장 트랙의 바깥 레인에서 달리는 사람은 안쪽 레인 사람보다 오래 걸린다. 당연하다. 그런데 케플러는 "바깥 레인이 얼마나 더 크면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더 걸리는지"를 공식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세 가지 법칙을 완성하는 데 케플러는 거의 20년을 썼다. 수천 페이지의 계산을 손으로 했다. 컴퓨터는커녕 계산기도 없던 시대에.
케플러의 법칙이 그냥 옛날 과학자의 업적으로만 남았을까? 전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한다. 기상 위성이 보내준 데이터다. 이 위성의 궤도는 케플러 법칙으로 계산한다.
차를 타고 출근하며 내비게이션을 켠다. GPS 위성 최소 4개의 신호를 동시에 받아 내 위치를 잡는다. 이 위성들이 지구 주위를 정확히 어떤 경로로 도는지, 그 계산의 기초가 케플러 법칙이다.
2020년, NASA의 화성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가 화성에 착륙했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로켓을 보내려면, 출발할 때 화성이 어디에 있고 도착할 때 어디에 있을지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이 계산? 케플러 법칙이 기초다.
더 놀라운 건 이름이다. NASA는 2009년에 외계행성을 찾기 위한 우주망원경을 쏘아 올렸다. 이름을 케플러 우주망원경이라고 붙였다. 이 망원경은 은퇴할 때까지 2,600개가 넘는 외계행성을 발견했다. 시력이 나빠서 별을 제대로 못 본 그 남자의 이름이, 별을 가장 많이 찾아낸 망원경에 붙은 것이다.
케플러의 진짜 위대함은 법칙 자체가 아니다. 그의 위대함은 태도에 있다.
8분의 오차를 무시하지 않은 것. 2천 년 동안 모두가 믿어온 '완벽한 원'을 버릴 용기를 낸 것. 자기가 바라는 답이 아니라, 데이터가 보여주는 답을 택한 것.
케플러는 우주가 아름다운 수학적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처음에는 행성 궤도가 정다면체와 관련 있다는 영뚱한 이론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터가 틀렸다고 말하면, 자기 이론을 버렸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론이라도.
이것이 과학이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증거가 가리키는 것을 따르는 태도. 케플러는 그 태도를 400년 전에 몸소 보여줬다.
오늘 밤,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자. 행성들이 찌그러진 원을 그리며 조용히 돌고 있다. 눈이 나빴던 한 남자가 숫자로 밝혀낸, 밤하늘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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