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오늘 아침, 당신은 몇 번이나 직각을 만났을까?
스마트폰 화면은 직사각형이다. 책상 모서리도 직각이다. 출근길에 본 건물 외벽, 횡단보도의 하얀 줄, 노트북을 열었을 때 화면과 키보드가 이루는 각도. 전부 직각이거나, 직각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내비게이션 앱을 켜보자. "목적지까지 3.2km"라고 뜬다. 이 거리는 어떻게 계산했을까?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공식. 그 공식의 뿌리를 따라 올라가면, 2300년 전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 이름은 유클리드다.
"유클리드? 수학 시간에 들어본 것 같은데..." 맞다. 그런데 대부분 여기서 기억이 끊긴다. 시험에 나왔던 이름. 뭔가 기하학이랑 관련 있는 사람. 그게 전부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람이 한 일을 제대로 알면, 좀 놀랍다. 유클리드는 단순히 삼각형이나 원을 연구한 게 아니다. 그는 '생각하는 방법'을 발명한 사람이다.
기원전 300년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 도시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다. 지중해 무역의 허브이자, 거대한 도서관이 있는 지식의 수도.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유클리드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 그에 대해 알려진 건 놀라울 정도로 적다. 생년월일도 모른다. 얼굴도 모른다. 사생활도 거의 기록이 없다. 확실한 건 딱 하나. 이 사람이 책 한 권을 썼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수학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요리 레시피 모음집 같았다.
"밭의 넓이를 구하려면, 가로에 세로를 곱해라."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이런 걸 점토판에 기록했다. "이렇게 하면 답이 나온다." 끝. 왜 그렇게 하면 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답이 맞으니까 된 거다. 피라미드를 짓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유클리드는 달랐다.
"가로 곱하기 세로가 넓이라고? 왜? 그게 왜 맞는 건데?"
이 질문이 모든 것을 바꿨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유클리드는 꽤 답답한 사람이었을 거다. 답을 알고 있는데 왜 자꾸 '왜'를 묻느냐고. 하지만 유클리드에겐 확신이 있었다. '왜'를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은 모래 위의 성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수학 지식을 모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왜'를 달아주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원론(Elements)》이다.
유클리드의 천재적인 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수학의 모든 건물을 짓기 전에, 먼저 기초 블록을 정했다. 레고를 생각해보자. 수천 가지 모양의 레고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출발점은 몇 가지 기본 블록이다.
유클리드는 물었다. "수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블록은 뭘까? 너무 당연해서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
그가 고른 블록은 딱 다섯 개였다. 수학에서는 이걸 공준(公準) 또는 공리(公理)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출발점으로 삼자고 약속한 당연한 사실'이다.
하나씩 보자. 어렵지 않다.
첫 번째. 점 두 개가 있으면, 그 사이에 직선을 하나 그을 수 있다.
→ 종이에 점 두 개를 찍어보라. 자를 대고 선을 긋는다. 당연하다.
두 번째. 직선은 양쪽으로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 선분의 끝을 잡고 쭉 연장할 수 있다. 역시 당연하다.
세 번째. 점 하나와 거리 하나가 정해지면, 원을 그릴 수 있다.
→ 컴퍼스를 꽂고 돌리면 원이 된다. 당연하다.
네 번째.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 여기서 직각을 재든 저기서 재든, 90도는 90도다. 당연하다.
다섯 번째. 한 직선 위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은 딱 하나뿐이다.
...잠깐. 이것도 당연한가?
처음 네 개는 5초 만에 납득이 간다. 그런데 다섯 번째는 좀 복잡하다. 읽으면 맞는 것 같은데, 왠지 찜찜하다. 유클리드 본인도 그랬다. 그는 이 다섯 번째 공준을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처음 28개 정리를 증명할 때, 앞의 네 공준만 썼다.
이 다섯 번째 공준의 찜찜함. 이것이 2000년 뒤에 수학을 뒤집어놓는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자, 블록 다섯 개가 준비됐다. 이제 유클리드가 한 일은 이렇다.
이 다섯 개 블록을 조합해서, 하나의 사실을 보여준다. 그 사실을 이용해서 다음 사실을 보여준다. 그다음 사실로 또 그다음 사실을.
도미노를 세우는 거다.
첫 번째 도미노(공리)를 밀면, 두 번째 도미노(정리 1)가 쓰러진다. 두 번째가 쓰러지면 세 번째가, 세 번째가 쓰러지면 네 번째가. 이렇게 연쇄적으로, 수백 개의 수학적 진실이 줄줄이 증명된다.
이것이 바로 증명(proof)이다.
예를 들어보자. "삼각형의 세 각을 더하면 180도다." 학교에서 배웠을 거다. 그런데 왜 180도일까? 유클리드는 이렇게 보여줬다.
삼각형 하나를 그린다. 꼭짓점 하나를 지나면서 밑변에 평행한 선을 긋는다. 그러면 엇각이 생긴다. 엇각은 크기가 같다(이건 이미 앞에서 증명했다). 꼭짓점 위의 세 각을 보면, 일직선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일직선은 180도다. 끝.
레시피가 아니다. "삼각형은 180도니까 외워" 가 아니라, "이래서 180도가 될 수밖에 없어"를 보여주는 거다. 차이가 느껴지는가?
유클리드는 이 방식으로 465개의 정리를 증명했다. 《원론》 13권에 담았다. 평면 기하학, 정수론, 입체 기하학까지.
이 책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론》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된 책이다. 2300년 동안. 뉴턴이 읽었다. 아인슈타인이 읽었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읽었다.
링컨 이야기가 재밌다. 그는 변호사였다.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클리드의 《원론》을 독학했다. "증명이 뭔지 모르면, '증명하다'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링컨이 남북전쟁 시기에 보여준 논리적 연설의 뿌리에 유클리드가 있었던 셈이다.
유클리드가 발명한 이 방식 — 당연한 것에서 출발해서, 한 단계씩 논리를 쌓아올리는 방식 — 은 수학을 넘어 퍼져나갔다. 과학의 실험 설계, 법학의 판례 논증,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알고리즘. 전부 "전제 → 추론 → 결론" 이라는 유클리드의 뼈대 위에 서 있다.
자, 아까 찜찜했던 다섯 번째 공준으로 돌아가자.
"한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딱 하나뿐이다."
2000년 동안 수학자들이 이걸 증명하려 했다. 나머지 네 개의 공리로부터 다섯 번째를 유도할 수 있다면, 굳이 공리로 둘 필요가 없으니까. 수학자들의 집요한 도전이 이어졌다. 전부 실패했다.
19세기. 가우스, 보여이, 로바체프스키라는 세 수학자가 거의 동시에 깨달았다.
"이거... 증명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다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다섯 번째 공준이 틀리면 어떻게 될까? 평행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면? 또는 하나도 없다면?
놀랍게도, 수학이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기하학이 태어났다.
비행기를 타본 적 있는가? 인천에서 뉴욕까지 최단 경로를 지도에 그려보면, 직선이 아니라 북극 쪽으로 휘어진 곡선이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다.
지구 표면 위에서 삼각형을 그려보자. 적도 위의 한 점에서 출발해 북극까지 직선(경선)으로 올라간다. 북극에서 90도 꺾어 다른 경선을 따라 적도로 내려온다. 적도를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70도다. 180도가 아니다.
유클리드가 틀린 걸까? 아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평평한 면에서 완벽하게 맞다. 종이 위, 책상 위, 칠판 위. 하지만 구부러진 면에서는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
이것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중력이 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 이걸 수학으로 표현하려면, 휘어진 공간의 기하학이 필요하다. 유클리드의 다섯 번째 공준이 성립하지 않는 세계의 기하학.
당신의 스마트폰에 있는 GPS도 마찬가지다. GPS 위성은 지구 궤도를 돈다. 위성의 시계와 지상의 시계는 상대성이론 때문에 미세하게 다르게 흐른다. 이 차이를 보정하지 않으면 위치가 수 킬로미터씩 틀어진다. 보정하려면 휘어진 시공간의 수학이 필요하다.
유클리드의 체계가 2000년 만에 깨졌을 때, 그것은 유클리드의 패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최고의 승리였다.
왜냐하면, 비유클리드 기하학자들이 사용한 방법 — 공리를 바꿔보고, 그로부터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따져보는 방법 — 이 바로 유클리드가 발명한 방법이었으니까.
유클리드의 진짜 유산은 특정한 정리나 공식이 아니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출발점을 명확히 정하고, 거기서부터 한 걸음씩 논리를 쌓아올리는 사고방식. 이것이야말로 23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의 발명품이다.
다음에 내비게이션을 켤 때, 건물의 직각 모서리를 볼 때, 혹은 누군가와 논쟁을 할 때 생각해보라.
"내 출발점은 뭐지? 그리고 그 출발점은 정말 당연한 건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당신은 유클리드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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