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솔직히 말해보자. 학교 수업 시간에 창밖을 보며 "이걸 왜 배우지?"라고 생각한 적,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칠판에 뭔가를 적는다. 우리는 받아 적는다. 시험 전에 외운다.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12년 넘게 학교에 다니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머릿속에 넣었다. 그런데 정작 사회에 나오면 "학교에서 배운 게 뭐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불편한 느낌. 100년도 더 전에, 한 미국인 철학자가 정확히 같은 질문을 했다.
그의 이름은 존 듀이(John Dewey).
1890년대 미국 교실을 상상해 보자. 나무 책상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아이들은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선생님이 교과서를 읽는다. 아이들은 따라 읽는다. 질문은 없다. 토론도 없다. 그냥 외운다.
듀이는 이 광경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잠깐, 이건 교육이 아니라 공장이잖아?"
그의 이 한마디가 전 세계 교실을 뒤흔들게 될 줄은, 아마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존 듀이는 1859년, 미국 버몬트주의 작은 마을 벌링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대단한 집안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시골 소년이었다.
그런데 이 소년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책에서 "나무는 이렇게 자란다"고 읽으면, 밖에 나가서 나무를 관찰했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고 배우면, 직접 물을 끓여봤다. 그에게 '아는 것'과 '해본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듀이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점점 하나의 확신을 갖게 된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만 진짜로 배운다.
1896년, 듀이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로 했다. 시카고 대학교에 작은 실험학교를 세운 것이다. 이 학교의 별명은 "듀이 스쿨"이었다.
이 학교는 보통 학교와 완전히 달랠다.
교실에 책상 대신 작업대가 있었다. 아이들은 앉아서 교과서를 읽는 대신, 직접 요리를 했다. 나무를 깎았다. 천을 짰다. 정원을 가꿨다.
"이게 무슨 학교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듀이의 천재적인 설계가 숨어 있었다.
요리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분수를 배웠다. 밀가루 2분의 1컵이 뭔지, 레시피를 두 배로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과서로 배우면 지루한 분수가, 쿠키를 만들면서 배우면 살아있는 지식이 됐다.
나무를 깎으면서 아이들은 기하학을 배웠다. 직각이 뭔지, 왜 삼각형이 튼튼한 구조인지. 의자를 직접 만들어 본 아이는 삼각형의 안정성을 절대 잊지 않는다.
듀이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
공부는 나중에 써먹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공부하는 바로 그 순간이 삶이다. 그러니 그 순간이 살아있어야 한다.
듀이의 철학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경험이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 자전거를 떠올려 보자.
자전거 타는 법을 설명하는 책은 세상에 수백 권이 있다. 무게중심 이론, 자이로스코프 효과, 원심력. 전부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책을 백 번 읽어도 자전거를 탈 수는 없다.
자전거를 타려면? 올라타야 한다. 넘어져야 한다. 무릎이 까져야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된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듀이는 모든 배움이 이와 같다고 말했다.
역사를 배우고 싶으면? 교과서의 연표를 외우는 대신, 그 시대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 민주주의를 배우고 싶으면? 정의를 외우는 대신, 학급 회의에서 직접 의견을 내고 다수결을 경험하라.
듀이가 속한 철학 사조를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어려워 보이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냉장고를 생각해 보자. 냉장고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모두 냉장고를 '안다'. 문을 열고, 음식을 넣고, 차갑게 보관한다. 이 '쓸 수 있는 앎'이 실용주의가 말하는 진짜 지식이다.
반대로, 시험지 위에서만 존재하는 지식은? 듀이의 표현을 빌리면, 그건 "죽은 지식"이다.
듀이는 이런 비유를 즐겨 썼다.
수영을 배우는데 교실 바닥에 엎드려서 팔다리를 젓는 연습만 시킨다면? 웃기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학교 교육의 상당 부분이 정확히 이것이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을 가르치는 것.
듀이가 원한 건 단순했다. 아이들을 물에 넣어주자.
물론 안전하게. 물론 단계적으로. 하지만 반드시, 물에.
듀이의 생각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교육과 민주주의는 같은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보통 민주주의라고 하면 투표를 떠올린다. 선거일에 투표소에 가서 도장을 찍는 것. 하지만 듀이는 고개를 저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결과물이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다."
듀이에게 민주주의란 함께 생각하고, 함께 결정하는 습관이었다.
동아리에서 다음 활동을 정할 때를 떠올려 보자. 누군가 아이디어를 낸다. 다른 사람이 반론을 제기한다. 또 다른 사람이 절충안을 내놓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생각도 못 했던 방향이 나온다.
이 과정. 이게 민주주의다.
그리고 이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게 아니다. 배워야 한다.
듀이는 학교가 바로 이 연습장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아이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부딪히고, 타협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교실에서는 이 능력이 자라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회의는 상사가 결정을 통보하는 자리가 아니다. 팀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서로의 관점에서 배우는 자리다. 듀이의 눈으로 보면, 좋은 회의실은 좋은 교실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듀이는 1916년에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원한다면, 민주적인 교실부터 만들어라."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정치 체제입니다"라고 외우게 하는 것. 이것은 듀이가 보기에 가장 비민주적인 교육이었다. 민주주의를 암기시키다니!
대신, 아이들이 직접 토론하게 하라. 서로 다른 의견 앞에서 불편해지게 하라. 그 불편함을 대화로 풀어가게 하라. 그러면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아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 된다.
존 듀이는 1952년에 세상을 떠났다. 7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듀이의 생각이 지금, 오히려 더 강력하게 살아 돌아오고 있다.
유튜브를 생각해 보자.
기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예전에는 학원에 등록하고, 교재를 사고,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순서대로 배웠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치고 싶은 노래를 검색하고, 바로 따라 친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순간에, 직접 해보면서 배운다.
이것이 정확히 듀이가 말한 "경험을 통한 학습"이다.
코딩 교육도 마찬가지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스크래치(Scratch)라는 프로그램으로 코딩을 배운다. 변수가 뭔지, 반복문이 뭔지 정의부터 외우지 않는다. 대신 고양이 캐릭터를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익힌다. "고양이를 오른쪽으로 10칸 움직여봐." 이렇게 시작하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프로그래밍의 핵심을 체득한다.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라는 공간도 있다.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납땜 도구가 있는 작업실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설계하고 만든다. 로봇을 만들기도 하고, 악기를 만들기도 한다.
듀이가 이 공간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바로 이거야. 내가 100년 전에 말한 게 바로 이거라고."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이라는 교육 방식도 있다. 시험 대신 프로젝트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 하천의 수질을 조사하라"는 과제를 받으면, 학생들은 직접 물을 채취하고, 검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안한다. 과학, 수학, 국어, 사회가 한꺼번에 녹아들어 있다.
교과서에서는 과목이 칼로 자른 듯 나뉘어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문제는 그렇지 않다. 환경 문제를 풀려면 과학도 알아야 하고, 경제도 알아야 하고, 사람의 마음도 이해해야 한다. 듀이는 이걸 100년 전에 꿰뚫어 본 것이다.
오늘날 "이걸 왜 배워요?"라는 질문은 더 이상 반항이 아니다. 그것은 정당한 요구다.
배우는 이유를 모르면서 배우는 것.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다. 개에게 "앉아"를 가르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듀이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것이다.
좋은 교육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이걸 왜 배워요?"라고 물으면, 혼내지 말자. 듀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좋은 질문이야. 그 답을 같이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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